외연은 넓히고 내부엔 긴장감…정용진號 ‘100일’의 변화
수시로 계열사 대표와 현안 토론, 인적쇄신 속도
CJ와 ‘사촌동맹’ 진두지휘, 과감한 결단 눈길
1분기 실적 선방, SSG닷컴 리스크도 해소
정 회장만의 색채 중요, 지속 혁신·도전 기대
[이데일리 김정유 기자] 화려하진 않지만 차근차근 내실을 다지고 있다. 역량이 부족한 부분은 외부와의 협력을 통해 보완하고 강점을 지닌 부분은 쇄신을 통해 더 갈고 닦는 중이다. 정용진 회장 체제 100일을 맞는 ‘뉴(New) 신세계’의 조용하지만 의미 있는 변화다.
정 회장은 지난 3월 9일 그룹 회장으로 공식 취임한 후 100일간 사업적 외연을 넓히는 동시에 내부엔 긴장감을 부여하며 체질개선에 속도를 내고 있다. 격변하고 있는 유통시장 속에서 정 회장만의 과감한 시도와 혁신으로 온·오프라인 경쟁력을 모두 갖춘 신세계를 구축할 수 있을지 재계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
12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정 회장은 오는 15일 회장 취임 100일을 맞는다. 18년 만에 승진한 정 회장은 최근 100일간 외부 노출을 삼가며 경영에 매진하고 있다. 회장 취임 후 공식석상에서 모습을 보인 것은 3월 20일 상공의 날 기념식, 4월 1일 고 조석래 효성그룹 명예회장 빈소, 5월 23일 중소기업인대회 등 세 차례에 불과하다.
지난해 부회장 시절 그룹 경영전략실 개편 이후 경영을 진두지휘했지만 회장 취임 이후에는 계열사 사업장 방문 등도 자제하면서 더 강도 높게 현안을 챙기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신세계그룹 고위 관계자는 “회장 취임 이후 수시로 계열사 대표를 만나면서 직접 경영 현안들을 챙기고 있다”며 “해당 현안들에 대해 단순히 보고받는 수준이 아니라 계열사 대표들과 치열하게 토론하는 등 꼼꼼하게 경영 전반을 보고 있다”고 말했다.
정 회장은 실제 최근 오전 9시에 출근해 오후 9시까지 하루 12시간 이상을 경영에 몰두하고 있다. 과거 좋아했던 골프장에 발길도 끊고 자주 즐겼던 사회관계망서비스(SNS) 활동도 중단했다.
지난해 11월 비상경영을 선언했던 정 회장은 당시에도 “스스로 변화하지 않고 변화를 요구만 한다면 뒤따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스스로 변화한 모습을 보이면서 구성원들의 변화를 촉구하는 모습이다.
달라진 정 회장의 행보에 신세계그룹 내부에서도 긴장감이 높아지고 있다. 특히 경영진을 향한 채찍이 더 매서워졌다. 시기와 상관없이 성과 중심으로 임원들의 수시 인사도 예고했다. 지난 3월 재무 악화에 빠진 신세계건설 대표를 전격 경질한 것이 대표적 사례다.
과거엔 계열사 대표들의 실적이 부진하더라도 정기인사 때까지 기다려주는 관행이었지만 앞으로는 철저한 성과 중심으로 즉시 인사 조처하겠다는 취지다. 이 과정에 정량적 지표를 강화한 새로운 핵심성과지표(KPI)를 적용하는 등 느슨했던 조직 문화에 고삐를 죄고 있다.
정 회장의 올해 경영 키워드는 ‘수익성 강화’다. 지난해 주력 계열사인 이마트(139480)가 사상 첫 적자를 기록하는 등 그룹 실적이 전반적으로 부진했다. 정 회장은 “비효율을 걷어내고 이를 고객 가치 실현에 투자해 그룹 전체의 성장 크기를 키워야 한다”고 거듭 주문해왔던 것으로 전해졌다.
대표적인 작업이 내달 1일로 마무리하는 이마트와 이마트에브리데이의 합병이다. 오프라인 유통사업간 비효율을 없애고 시너지를 확대하는 전략이다. 이마트 입장에서 상품 매입 규모를 키워 원가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고 함께 물류센터를 이용하는 등 효율성을 확대할 수 있다.
경쟁력이 다소 부족했던 이커머스 사업에서도 효율적인 변신을 시도 중이다. CJ그룹과의 전략적 제휴(MOU)를 통해서다. SSG닷컴·G마켓에 CJ대한통운(000120)의 물류 인프라를 결합해 쿠팡이나 중국 이커머스 등에 대응해 이커머스 사업의 경쟁력을 끌어올리겠다는 골자다. 이에 따라 G마켓도 다음 달부터 쿠팡처럼 ‘익일(내일)배송’을 시작할 것으로 보인다.
신세계와 CJ그룹의 협력은 CJ대한통운과 신세계그룹 계열사의 실무진간 협의에서 시작했지만 정 회장에게 보고가 올라간 뒤 그룹간 양해각서(MOU) 체결로 이어졌다. 외사촌형인 이재현 CJ그룹 회장과의 ‘사촌동맹’을 정 회장이 이끈 셈이다. 실제 이번 MOU엔 SSG닷컴 물류센터 일부를 CJ대한통운에 이관하는 건도 담겼는데 이는 총수인 정 회장의 결단이 없었다면 이뤄지지 못했을 가능성이 크다는 게 재계의 중론이다.
정 회장은 SSG닷컴을 둘러싼 위협요소도 해소했다. 실적 부진으로 SSG닷컴의 기업공개(IPO)가 지연되자 1조원을 투자한 어피너티에쿼티파트너스·BRV캐피탈 등 재무적 투자자(FI)들이 투자금 회수를 요구했지만 최근 지분 30%를 제 3자에 되팔기로 하면서 갈등을 잠재웠다. 신세계 측은 이미 외부 투자자들과 협의를 진행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실적·주가 회복은 과제
문제는 실적과 주가다. 다행히 정 회장 취임 후인 올 1분기 실적은 선방했다. 올 1분기 연결기준 이마트의 영업이익은 471억원으로 전년동기대비 245% 늘었고 매출액도 7조2067억원으로 1% 증가했다. 주력인 오프라인 유통에서 수익성을 대폭 개선한 결과다.
다만 2021년 19만원대를 기록했던 주가가 최근 6만원대까지 무너지면서 힘을 쓰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2011년 상장 이후 최저 수준에 머물고 있다. 이커머스 중심으로 재편된 유통시장의 영향이 크겠지만 그럼에도 정 회장은 신세계그룹의 수장으로서 주가를 적극 부양해야 하는 숙제가 있다. 정 회장의 과감하고 신선한 시도가 필요한 이유다.
재계 한 관계자는 “이명희 회장이 총괄회장이 된 이후 앞으로 정 회장 체제로의 그룹 개편이 점차 속도를 낼 것”이라며 “이 총괄회장의 그룹 내 영향력은 강하지만 정 회장은 자신만의 색채를 더 뚜렷하게 보여주기 위한 지속적인 혁신과 도전을 시도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김정유 (thec98@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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