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와 자유, 중국에 넘겨줄 수 없는 가치 [아시아 민주주의의 오늘 ②]

타이완은 아시아뿐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민주주의가 가장 발전된 나라 중 하나로 평가받는다. 〈이코노미스트〉가 매년 발표하는 국가별 민주주의 지수에서, 타이완은 지난해 세계 10위를 기록했다. 한국은 22위다. 이런 나라가, 중국으로부터 끊임없는 무력 침공 위협을 받고 있다. 지난 5월23~24일, 중국 인민해방군은 타이완을 에워싸고 대규모 군사훈련을 펼쳤다.
중국 측은 이 무력시위가 지난 5월20일 라이칭더 신임 총통(민주진보당)의 취임사에 대한 ‘처벌’이라고 공공연하게 밝혔다. 유사시 타이완을 이른바 “죽음의 섬”으로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라이 총통은 취임사에서 “타이완은 민주주의와 자유를 양보하지 않는다. 중국의 위협에 맞서 국가 수호의 결심을 보여줘야 한다”라고 말했다. 중국 측은 라이 총통의 발언을 ‘하나의 중국을 거부하는’ ‘타이완의 주권(독립) 선언’으로 봤다.
2014년 봄 해바라기 운동(타이완 학생들과 사회운동 세력이 23일간 입법원을 점거한 사건)을 주도한 타이완 민주화 운동가들은 중국-타이완 관계를 어떻게 보고 있을까? 지난 5월14~18일 광주에서 열린 ‘2024 광주민주포럼’에 참여한 ‘타이완 민주실험실’ 부집행장 포유쳉 씨를 만났다. 민주실험실은, 디지털 공간에서 중국 측이 전파하는 가짜뉴스 및 친중 이데올로기를 연구하고 대응함으로써 타이완 민주주의를 유지·강화하기 위해 설립된 단체다.
지난 1월의 타이완 선거(총통 및 입법위원 선거 동시 시행) 결과를 어떻게 평가하나.
민주진보당(민진당)의 아슬아슬한 승리였다. 민진당의 라이칭더 후보가 총통(한국이라면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했지만, 입법위원(국회) 선거에선 과반수를 얻지 못했다(총 의석수 113석 중에서 국민당 52석, 민진당 51석, 민중당 8석, 무소속 2석).
타이완 정치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는 무엇인가. 중국 문제인가?
‘해바라기 운동 이후 만들어온 타이완의 활력적 민주주의를 어떻게 유지하고 발전시키느냐’가 가장 중요한 의제다. 또한 타이완이 인도·태평양 지역의 주권국가로 널리 인정받고 지역 안보에서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발전시켜야 한다. 타이완-중국 관계의 경우, 타이완은 중국과의 협력을 결코 거부하지 않는다. 다만 중국의 압박과 억압하에서는 협력이란 개념 자체가 성립할 수 없다.
2014년 해바라기 운동의 발단 역시 중국과의 ‘협력’ 문제였던 것으로 안다. 당시 국민당 정부가 양안서비스무역협정(CSSTA:타이완과 중국 간 금융, 의료, 관광, 문화, 통신 등 서비스 산업 시장을 상호 개방하는 협정)을 강행했기 때문이다. 이번 1월 선거에서도 CSSTA가 주요 의제였다.
CSSTA가 비준되면 중국의 서비스 산업과 인력이 밀려 들어와 타이완 시민들의 일자리를 위협할 가능성이 컸다. 중국의 음식점, 미용실, 관광업체 등이 타이완에 문을 열면 타이완 시민들이 운영하는 소규모 서비스 업소들이 퇴출될 수 있다. 더욱이 중국 노동자들의 임금은 타이완의 1/3~1/4 정도다. 당시 국민당 정부는 ‘낙수 효과’를 믿었던 것 같다. 중국의 자본과 노동이 유입되면 타이완 기업들이 더 부유해지면서 그 부(富)가 ‘밑’으로 흘러넘칠 것으로 봤다. 거짓말이다. 각국에 초대형 기업들과 초부유층이 있지만, 그 나라들의 민초에게 흘러내리는 부(富)는 미미하지 않던가? 더욱이 국민당 정부는 타이완 시민들에게 엄청난 영향을 미치게 될 그 협정을 민주적 절차 없이 너무 급하게 밀어붙였다. 불과 2주 동안 공청회를 16회나 강행하더니, 입법원에서도 토론 없이 30초 만에 통과시키려 했다. 이런 시도를 보면서 대다수 타이완 시민들이 걱정한 것은 CSSTA 자체가 아니었다. 국민당 정부가 중국과의 통일 관련 법률도 CSSTA처럼 민주적 절차를 생략하고 삽시간에 밀어붙일지 모른다고 우려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국민당의 완전한 이름은 ‘중국국민당’이다. 1919년 창당되어 혁명과 대일(對日) 항전, 내전 시기의 중국을 대외적으로 사실상 대표한 ‘중화민국’의 집권당이었다. 중국공산당과 벌인 내전에서 패배해 타이완으로 쫓겨났다. 이후 1990년대의 민주화 시기까지 계엄령으로 타이완을 일당 통치했다. 그 과정에서 발생한 반정부 봉기를 참혹하게 진압하기도 했다(1947년 2·28 사건). 이 사건에서 2만8000여 명이 학살당한 것으로 추정된다. 국민당은 타이완으로 옮겨온 초기엔 강력한 반공주의를 내세웠지만, ‘중화민국’의 정통성을 자임하는 정당인 만큼 민주화 이후엔 중국과의 협력 및 점진적 통일을 지향하는 경향이 있다.
해바라기 운동과 타이완 민주 세력의 목표는 중국으로부터 경제적 독립, 그리고 중국과 협력(혹은 통일)이 심화되는 경우 파괴될 위험이 있는 타이완 민주주의를 지키는 것인가.
해바라기 운동이 단지 ‘중국과의 경제협력 반대’를 목표로 삼았던 것은 아니다. 그 운동은 타이완의 언론 자유 억압, 젊은 세대에 대한 착취적 임금 등을 타파해 정의를 확립하기 위함이었다. 국민당이 너무 친중 성향이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들은 중국의 지배하에서 타이완 경제를 더욱 높은 수준으로 끌어올릴 수 있다고 믿었다. 상당수 국민당 사람들은 여전히 ‘일국양제(중국의 주권하에서 사회주의와 자본주의가 공존하는 시스템)’가 작동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타이완이 중국의 세력권 내에 들어가도 지금의 민주주의를 계속 유지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국민당의 인식은 지극히 ‘나이브(순진무구)’하다. 우리는 그런 믿음이 완전한 허구라는 점을 알고 있다. 홍콩과 중국의 많은 도시에서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지켜봤기 때문이다.
해바라기 운동은 타이완 민주주의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
터닝 포인트였다. 타이완 시민들은 해바라기 운동을 겪으며 시위가 평화적으로 수행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젊은 세대들은 정치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이 사건 이전의 타이완 시민들에게 민주주의는 ‘4년마다 투표하는 것’에 불과했다. 그러나 지금의 시민들은 선거 이전이나 이후에도 민주주의를 위해 할 일이 많다는 것을 알고 있다. 동의하지 않는 법안에 대해 반대 청원에 서명하거나 항의 시위에 나서거나 정치인에게 직접 따질 수 있게 되었다. 중국에 대한 입장도 변했다. 해바라기 운동 이전에 국민당은 친중국, 민진당은 친독립으로 갈라졌다. 그러나 지금은 양당이 단지 통일이나 독립이 아니라 타이완의 주권(sovereignty)에 대해 논의한다.
중국은 타이완 무력 병합에 실제로 나설까.
중국은 무력 병합을 언제나 시도할 수 있었다. 앞으로 강행할지도 모른다. 중국은 지난 30년 동안 타이완에 지속적으로 그런 위협을 가해왔다. 팬데믹 이후엔 조금 더 두려움을 느끼고 있다. 중국의 경제난 때문에 대중적 불만을 타이완 공격으로 돌릴 가능성이 좀 더 높아진 것 같다. ‘폭탄’은 언제든 터질 수 있다. 오늘이나 다음 달이 아니라도 말이다.
라이칭더 총통은 대중국 관계를 어떻게 펼쳐나갈까.
중국에 대한 지나친 경제적 의존에서 탈피하려 할 것이다. 중국뿐 아니라 동남아시아 국가들(인도, 말레이시아, 필리핀, 타이 등), 오스트레일리아, 캐나다 등과의 무역 관계를 더 강화하려고 시도할 것으로 보인다.

민진당 정부는 독립을 선언할까.
그럴 가능성은 거의 없다. 민진당은 국제사회에서 ‘트러블 메이커’가 되기를 원하지 않는다. 중국은 ‘타이완이 독립을 추진하면서 지역의 안보를 해친다’는 등 타이완에게 오명을 뒤집어씌우려고 시도해왔다. 타이완은 그동안 스스로 말썽을 일으키지 않는 동시에 중국이야말로 ‘트러블 메이커’란 사실을 드러내려 했다. 중국에 민주혁명이라도 일어나면 그 틈에 타이완이 독립을 선언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민진당 정부가 당장 그런 위험한 선택을 할 것 같진 않다.
2024 광주민주포럼에 참여한 이유는?
한국인들은 광주민주화운동과 기념사업이 타이완의 ‘이행기 정의(Transitional Justice)’에 거대한 영향력을 미쳐왔다는 사실을 잘 모르는 것 같다. 타이완에서도 국민당 정부가 잔혹한 대량 학살(2·28 사건)을 자행한 바 있다. 나의 할아버지도 희생자 중 한 명이다. 타이완의 어떤 사람들은 ‘이행기 정의’에 대해 ‘서구적 가치일 뿐’이라고 주장한다. 그럴 때 우리는 광주항쟁과 이에 대한 진상규명 작업을 사례로 들며, ‘이행기 정의’가 아시아 국가인 한국에서도 실현되고 있다고 반박한다. 〈택시운전사〉 같은 한국 영화들도 타이완에서 엄청난 관심을 끌었다. 타이완의 젊은 활동가들은 민주주의가 얼마나 중요한 가치인지 문화적 장치로 시민들에게 알릴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타이완 민주 진영은 동성결혼 허용 같은 젠더 및 인권 관련 의제에서 국제적으로도 첨단적 행보를 보여왔는데.
동성결혼 허용은 지난 8년 동안 민진당이 성취한 가장 큰 성과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다만 민진당이 지난 입법의회 선거에서 과반 의석수를 얻지 못한 이유 중 하나로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민진당은 옳은 일을 했다.
이종태 기자 peeke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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