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 관광객이 지갑을 안 연다… 면세점이 ‘미운 오리 새끼’된 이유

석남준 기자 2024. 6. 13. 0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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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 업체, 해외 사업 확대로 활로 뚫어

1월 88만881명. 2월 103만244명. 3월 149만1748명.

올해 1분기 한국을 찾은 외국인 관광객 수다. 2020년 코로나 팬데믹 이후 분기 기준 최대 규모의 외국인이 방문했다. 3월만 보면 코로나 이전인 2019년 3월 관광객 수의 97.1% 수준이다.

외국인 관광객 증가에도 국내 면세점 업계의 표정은 어둡다. 외국인들이 좀처럼 면세점에서 지갑을 열지 않기 때문이다. 3월 외국인이 면세점에서 쓴 금액은 9326억원이었다. 2019년 3월(1조8330억원)의 절반 수준에 불과하다. 코로나 팬데믹만 끝나면 실적이 회복될 것으로 기대했던 면세점 업계의 위기가 계속되고 있다. 주요 면세점마다 적자에 허덕이거나, 수익성이 크게 악화했다. 한때 면세 사업 특허권을 따기 위해 재벌 기업이 총출동할 정도로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불렸던 면세점이 ‘미운 오리 새끼’가 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국내 면세점들이 중국인 관광객에게만 의존했던 과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쇼핑보다 한국 문화를 즐기려는 외국인들의 관광 트렌드나 유통 채널 다양화 같은 변화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그래픽=백형선

◇내·외국인 모두 면세점 ‘외면’

코로나 이전 국내 면세점은 ‘단일 매장 매출 4조원 돌파’ ‘온라인 매출 3조원 돌파’ 등 세계 최초, 최대 기록을 자랑했다. 2019년에도 총 24조8586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그러나 2020년 코로나가 터지면서 매출이 15조원대로 폭락했다. 코로나가 끝나면 실적이 회복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다.

실상은 달랐다. 지난해 1~4월 한국을 찾은 외국인은 260만3028명이었다. 이들은 면세점에서 3조4815억원을 썼다. 올해 1~4월 방한 외국인은 486만5670명으로 급증했다. 하지만 올해 외국인이 면세점에서 쓴 돈은 3조9197억원이었다. 작년보다 86% 많은 외국인이 한국을 찾았는데, 같은 기간 면세점 외국인 매출은 약 12% 늘어나는 데 그쳤다.

내국인의 면세점 소비도 줄고 있다. 2019년 4월 내국인 238만5130명이 국내 면세점에서 3378억원을 썼다. 해외여행 수요가 사실상 코로나 이전으로 돌아간 올해 4월 면세점을 찾은 내국인은 153만9456명에 불과했다. 이들이 쇼핑한 금액도 코로나 이전보다 눈에 띄게 줄어든 2555억원이었다. 면세 업계 관계자는 “고환율이 지속되면서 한국인들도 국내 면세점을 이용하는 대신 일본 등 해외로 나가 쇼핑하는 경향이 뚜렷하다”고 말했다.

◇“쇼핑보다 문화” 달라진 여행 트렌드

지난 2015년 국내에서 ‘면세점 대전’이 벌어졌다. 정부가 서울 시내 면세점 3곳을 신설하기로 결정하자, 7개 대기업이 사업권 입찰에 뛰어들었다. 같은 해 특허 기간이 끝나는 서울 시내 면세점 사업권을 두고도 대기업 간 경쟁이 치열했다. 면세점 유치에 사활을 걸고 대기업 오너들이 전면에 나서는 이례적인 모습도 목격됐다. 중국인 단체 관광객이 국내 면세점에서 명품과 화장품을 쓸어담던 시절로 면세점 유치는 ‘현금 자판기’를 확보하는 것이라는 인식이 있었다.

10년도 채 되지 않아 국내 면세점 영업 환경은 완전히 바뀌었다. ‘큰손’이던 중국인 단체 관광객은 자취를 감췄다. 그 자리를 개별 관광객이 채우고 있지만, 한국으로 여행 오는 목적이 달라졌다. 이전에는 쇼핑을 하러 왔는데, 요즘 관광객들은 ‘한류’와 ‘K컬처’로 대표되는 문화를 즐기기 위해 한국을 찾는다. 지난달 한국문화관광연구원이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외국인이 선호하는 국내 쇼핑 장소는 로드숍, 백화점, 대형 쇼핑몰, 시내 면세점 순이었다. 외국인들에게 인기를 끄는 대표적인 로드숍 ‘올리브영’은 올해 1분기 외국인 매출이 전년 동기 대비 263% 증가했다. 국적별로 중국인(673%) 매출이 가장 많이 늘었다. 면세점을 운영하는 한 대기업 관계자는 “백화점, 대형 마트, 식품 업체들이 생존을 위해 발버둥칠 때 면세점은 중국인 단체 관광객만 바라보고 혁신을 시도하지 않은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면세점 업계, 사업 전략 재편해야”

국내 면세점들은 대책 마련에 고심하고 있다. 면세점에만 있는 단독 브랜드를 유치하고, 고객 체험 공간을 늘리는 식이다. 롯데면세점은 최근 비상 경영 체제에 돌입, 희망퇴직 등 인력 구조 조정까지 검토하고 있다. 이와 함께 지난 1월 싱가포르 창이국제공항에 대규모 점포를 내는 등 해외 사업 비중을 확대한다는 계획이다.

신세계면세점은 개별 관광객 유치를 위해 캐세이퍼시픽, 남방항공 등과 제휴해 쇼핑 금액에 따라 마일리지를 적립해주는 서비스를 확대하고 있다. 면세 업계 관계자는 “현재의 위기 상황을 차분하게 바라보고 다양한 변화를 할 수 있도록 사업전략을 재편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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