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보리, 10개월 만에 北 인권 논의…"대기근 이래 최악"(종합)
중·러 "국제안보와 무관" 반대…15개국 중 12개국 지지
황준국 대사 "인권과 핵무기는 북한 체제의 쌍두마차"
[워싱턴=뉴시스] 이윤희 특파원 =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가 12일(현지시각) 10개월 만에 북한 인권 문제를 공식 의제로 채택하고 공개 논의를 진행했다.
중국과 러시아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이사국들의 압도적 찬성으로 회의가 개최됐고, 한국을 비롯한 대다수 이사국들이 북한의 악화된 인권 상황이 핵무기 개발과 연관돼 있음을 지적했다.
유엔 안보리는 이날 오전 10시부터 미국 뉴욕 유엔 본부에서 북한 인권 브리핑 공식회의를 진행했다.
안보리가 북한 인권 문제를 공식 의제로 다루는 것은 지난해 8월 이후 10개월 만이다.
특히 이번 회의는 유엔 북한인권조사위원회(COI)의 북한 인권 보고서 발표 10주년에 이뤄졌다. 6월 한달간 안보리 의장국을 맡은 한국이 회의를 주재한 점도 특징이다.
회의 시작에 앞서 중국과 러시아가 반대 의사를 밝히며 의제 채택을 위한 절차투표를 요구했다. 북한 인권은 국제 평화와 안보 문제를 다루는 안보리 논의 사항이 아니라는 것이다.
겅솽 주유엔 중국 부대사는 "현재 북한 인권 상황은 국제 평화와 안보에 관련이 없다"며 "안보리가 북한 인권 문제에 개입하는 것은 한반도 긴장 완화에 도움이 되지 않고 반대로 적대감과 대결을 가중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바실리 네벤자 주유엔 러시아대사도 "오늘날 국제사회는 소수 국가들이 유엔 안보리를 지정학적 의제 추진을 위한 도구로 악용하려는 부끄러운 상황을 다시 한 번 목도하고 있다"며 북한 인권 문제는 국제 평화와 무관하다고 반발했다.
반면 미국과 영국은 북한 인권 상황이 대량살상무기(WMD) 개발 등으로 이어져 세계 평화와 안보에 직결되는 문제라고 주장했다. 토마스 그린필드 주유엔 미국대사는 "북한 인권 상황은 10년전 COI가 기념비적인 보고서를 발표한 이후 더욱 악화됐다"고 지적했다.
이에 의장국인 한국은 의제 채택 여부를 표결에 부쳤는데 15개 이사국 중 12개국이 찬성해 회의가 개최됐다. 중국과 러시아가 반대표를 던졌고, 모잠비크는 기권했다.
안보리는 2014~2017년 북한 인권 회의를 공개회의에서 다룰 때에도 절차투표를 거쳤지만, 이때와 비교해서도 가장 많은 찬성표가 나온 것이라고 유엔대표부는 설명했다.
회의에서는 볼커 튀르크 유엔인권최고대표가 발표자로 나서 "북한의 인권 상황은 군사력 증강을 포함한 한반도 평화와 안보에 대한 고려와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다"며 거주이전 제한, 표현의 자유 억압, 빈곤한 경제상황 등으로 북한 주민들이 고통받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서 발표에 나선 엘리자베스 살몬 유엔 북한인권특별보고관은 "군사력을 위한 노동력 착취가 만연하고 결과적으로 근본적인 자유와 인권에 대한 보호는 간과되는 경우가 많다"며 "지난 4년간 국경 통제를 돌이켜보면 인권 상황은 부인할 수 없을 정도로 악화됐다. 우리는 아마도 1990년대말 재앙적인 대기근 이래 가장 최악의 인도주의적 위기에 직면해 있다"고 경고했다.
이날 회의에는 평양 김일성대 출신으로 유명한 김금혁 전 국가보훈부 장관정책보좌관도 직접 증언에 나섰다.
김 전 보좌관은 베이징에서 유학하다 탈북하게 된 경위를 직접 설명하며 "북한 주민들이 자유를 누리고 기본권을 보장받으며 풍요롭고 행복한 삶을 살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호소했다.
이날 회의를 주재한 황준국 유엔대사는 "최근 우리는 북한이 핵 정책에서 더욱 공격적으로 변하고, 튀르크 대표가 강조한 것처럼 정보, 문화와의 전쟁에서 더욱 극단적으로 변하고 있는 것을 목격했다"며 "북한 정권은 주민들을 어둠에 가두고, 핵무기와 잔혹한 통제로 외부세계 빛을 없애려 노력한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하지만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다. 단지 빛을 더욱 부각할 뿐이다"고 말했다.
또한 황 대사는 "북한은 핵무기와 인권침해가 이끄는 쌍두마차라고 할 수 있다"며 "만약 인권 침해가 중단된다면 핵무기 개발도 중단될 것이다. 이것이 우리가 북한 인권 상황을 국제 평화와 안보 관점에서 바라봐야하는 이유"라고 강조했다.
북한은 이날 회의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당사국인 만큼 참석이 가능했지만, 별도 참석 신청을 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한편 한국 등 57개국과 유럽연합(EU)은 이날 안보리 회의 시작에 앞선 약식회견에서 북한 인권상황에 대한 우려를 함께 표명했다.
대표로 발언에 나선 황 대사는 "그간 우리는 북한의 지독한 인권 및 인도적 상황이 무기개발과 동전의 양면처럼 긴밀히 연계돼 있음을 목격해왔다"며 "북한은 주민 복지를 희생하면서 유엔 안보리 결의를 위반해 희소한 자원을 핵무기와 미사일 개발에 전용하고 있으며, 인권 유린에 정치적 면제를 누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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