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할 오늘] 주민 삶의 아카이브가 된 리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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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서양 끝자락 케이프코드 마을 프로빈스타운도 크고 작은 바람이 사시사철 불어오는 곳이다.
증오-배척의 떠세에 밀려나 그곳에 닿은 이들을 맨 먼저 맞이한 것도 거친 모래바람이었다.
더는 밀려날 곳 없는 땅끝이어서 그들은 그 바람을 아예 품었고, 가슴에 담은 바람 한 자락씩을 깃발이나 리본에 담아 자신들이 귀하게 가꿔온 마을 곳곳에 존재의 기척을 내듯 매달곤 했다.
주민들은 그 리본들을 P타운의 모순과 갈등, 화합과 희망의 시각적 상징이라 여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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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서)기도의 기본(prayer's ribbon)은 아메리카 원주민 전통 의식과 티베트 불교 등의 여러 문화권의 종교 의례에서 유래됐다고 알려져 있다. 기도와 염원이 초월자의 숨결인 바람을 타고 시공간을 넘어 통하리라는 바람.
대서양 끝자락 케이프코드 마을 프로빈스타운도 크고 작은 바람이 사시사철 불어오는 곳이다. 증오-배척의 떠세에 밀려나 그곳에 닿은 이들을 맨 먼저 맞이한 것도 거친 모래바람이었다. 더는 밀려날 곳 없는 땅끝이어서 그들은 그 바람을 아예 품었고, 가슴에 담은 바람 한 자락씩을 깃발이나 리본에 담아 자신들이 귀하게 가꿔온 마을 곳곳에 존재의 기척을 내듯 매달곤 했다.
1988년 여름, 마을의 게이 예술가 제이 크리츨리와 그의 연인이던 무용수 월터 매클레인이 지역 보건기금을 마련하기 위한 ‘생명을 위한 수영(Swim for Life)’ 행사를 열었다. 병원은커녕 보건소도 자동차로 한 시간은 나가야 갈 수 있는 곳이었고, 당시는 AIDS 공포가 한창이던 때였다. 지금도 대체로 가난하지만 당시 P타운은 매사추세츠주 내에서 1인당 소득이 가장 낮고 실업률이 가장 높은 곳이었다. 수영대회 참가자들이 늘어나면서 성대한 마을잔치로 자리 잡자 그들은 1993년 비영리 자치단체 ‘P타운 커뮤니티 콤팩트(compact)’를 설립했다.
행사 때면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주민들은 수영 구간인 롱포인트에서 선박 정박지까지 부둣길을 따라 기도의 리본을 달았다. 응원과 염원, 사별한 연인이나 가족 친지에 대한 그리움의 메시지. 주민들은 그 리본들을 P타운의 모순과 갈등, 화합과 희망의 시각적 상징이라 여겼다. 그 행사는 지금도 매년 피서객들이 떠난 뒤 한적해진 늦여름-가을 초입에 연다.
올랜도 참사 애도의 리본도, AIDS의 날(12월 1일) 리본도 그렇게 시작돼 P타운의 종교와 같은 문화가 됐다. 주민들은 리본에 적힌 문구들이 P타운의 삶의 아카이브라 여긴다.
최윤필 기자 proos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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