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읽기] ‘고립주의’ 미국, 돌아온 ‘정글’…한반도 해법은
지난 10년 새 이상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미군이 분쟁지역에서 갑자기 철수하는가 하면, 군사개입이 필요해 보이는 국면에서도 변죽만 울릴 뿐이다. 자유무역의 메카인 줄 알았던 미국이 보호주의 정책을 편다. 심지어 국경에 장벽을 쌓고, 특정국가에 관세폭탄을 퍼붓기도 한다.
우리가 알던 미국이 아니다. 한 때 규제없이 무한정 수입해 주던 나라. 분쟁지역마다 군사력을 투입해 ‘힘으로’ 정리하던 나라. 그런 미국이 ‘아메리칸 퍼스트’를 외친다. 자국 이익부터 챙기겠다는 얘기를 노골적으로 하고 있다.
미국이 왜 이런 행보를 보일까. 우리는 1989년 12월 냉전 종식에 이어 1991년 12월 구소련 해체라는 역사적 사건을 목도했다. 냉전에서 미국이 승리한 후 이른바 ‘세계화 시대’가 시작됐다. 미국이 주도하는 자유 평화 번영의 시대가 활짝 열릴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거품이 가득 낀 미국 경제가 2008년 9월 돌연 무너졌다. 리먼 브라더스가 파산하고, 서브프라임 모기지를 매개로 한 부동산 시장이 붕괴했다. 미국인들은 미국이 더 이상 세상사에 관여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았다. 왜 분쟁지역마다 개입해 재정을 탕진하고, 미국 젊은이들이 해외에서 피를 흘려야 하느냐는 것이다.
미국인들은 2001년 이미 ‘9·11사태’를 겪었다. 미국 경제의 상징과도 같은 무역센터가 무너져내렸다. 이때부터 ‘고립주의’ 미국의 출현이 예고되고 있었다.
2009년 당선된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이런 여론을 충실히 따랐다. 시리아에서 발생한 이슬람국가(IS) 사태 당시 학살과 테러에도 미군은 개입하지 않았다. 급기야 2021년 아프가니스탄에서 미군이 철수해 탈레반에 정권을 넘겨주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미국의 패권은 바닥에 떨어졌다. 더 이상 미국을 신뢰할 수 없다는 의구심이 팽배해졌다. 미국의 군사 불개입을 확신한 러시아는 마침내 2020년 2월 우크라이나를 침공했다. 그 사이 ‘화약고’ 중동에서도 전쟁이 발발했다. 이스라엘이 하마스를 침공했다. 세계는 ‘힘의 논리’가 지배하는 ‘정글의 시대’로 돌변했다.
‘금융 위기’ 이후 미국의 한계를 간파한 중국 역시 정글에 뛰어들었다. 시진핑 주석 집권 후 힘을 축적한 중국. ‘힘 빠진 패권국’ 미국에 도전장을 내민 것이다. 아시아권역이 첫 무대다. 대만과 남중국해를 둘러싸고 미국과 대치하고 있다. 두 나라는 관세폭탄을 주고받으며 총성 없는 경제 전쟁도 벌이고 있다.
2017년 취임한 도날드 트럼프 대통령은 이런 흐름을 철저히 이용해 당시 대선에서 승리했다. 그는 재임 중 수입품에 대한 관세 폭탄, 이슬람교도 입국 금지, 국경 폐쇄 등 쇄국정책을 서슴지 않았다. 심지어 동맹국에 미군 주둔비 대폭 증액을 요구하고, 무기를 강매했다. 미국은 ‘세계의 경찰’이 아니라 ‘보안업체’로 전락했다는 평가를 듣기에 이르렀다.
2021년 취임한 조 바이든 대통령은 자유주의 질서를 지키기 위해 나름 몸부림쳤다. 느슨해진 동맹국을 단단히 엮기 위한 노력을 기울였다. 하지만 미국인들이 세상사 개입에 관심없다는 사실을 바이든 대통령 역시 모르지 않는다. 그는 결국 중국 전기차 관세를 25%에서 100%로 무려 4배나 올리는 법안에 서명했다.
이제 우리는 미국의 실체를 정확히 들여다 봐야한다. ‘자유주의 수호’라는 명분으로 세상사에 개입하던 그 나라가 아니라는 것이다.
오는 11월 트럼프와 바이든 두 사람이 리턴매치에 나선다. 두 후보 간 첫 토론회가 오는 27일 열린다는 뉴스가 전해졌다. 본격 레이스에 들어간다는 얘기다. 분명한 것은 누가 되든 미국이 옛 모습으로 돌아가지 않는다는 것이다. 트럼프가 된다면 좀 더 피곤하겠지만.
그렇다면 우리는 정글로 변한 세계 무대에서 어떤 ‘폼’을 잡아야 하나. 힘의 균형이 유동적인데다 한반도를 둘러싼 구도도 간단치 않다. 더구나 중국 러시아는 물론 북한까지 핵을 보유하고 있다. 우리도 핵을 갖는 게 답일까. 복잡한 고차방정식이 우리 앞에 주어졌다. 국가가 존재하는 이유는 국민의 안전을 보장하는 데 있다. 용산은 물론 여야 정치권이 정쟁을 접고 그 해법을 찾는데 머리를 맞대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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