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랏빛 융단 넘실대는 곳…향기에 취해 풍광에 반해

조봉권 기자 2024. 6. 13.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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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마저 보랏빛, 전남 신안 퍼플섬

- 걸어서 둘러볼 수 있는 안좌·반월·박지도
- 지붕·도로·식당 그릇까지 보라색 뒤덮여
- 라벤더 7만 본으로 꾸며진 정원서 찰칵
- 조성 중인 ‘노랑섬’도 인증샷 명소 예약

천사대교를 건너던 때부터 ‘다른 세계’로 들어서는 느낌이 왔다. 바다 한가운데 7.22㎞ 직선 주로를 자동차는 물새가 날듯 달렸다. 전남 신안군에는 섬이 1004개 있다. 거기서 착안해 다리 이름을 ‘천사대교’로 지었다. 압해도와 암태도를 잇는 이 다리를 짓는 데 9년이 걸렸다. 이 다리를 놓을 때 아마 천사도 힘을 좀 보탰지 싶다.

퍼플섬은 안좌·박지·반월도에 걸쳐 조성됐다. 사진은 박지도 바닷가 라벤더 정원. 언덕을 보랏빛으로 물들인 라벤더꽃은 7월까지 간다. 8~11월에는 보랏빛 아스타꽃이 섬 다른 쪽에 핀다.


암태도에 들어서니 저 유명한 공공미술 작품 ‘암태도 동백 파마머리 벽화’(기동삼거리 벽화)가 반겼다. 이 그림이 이토록 수더분한 마을 교차로에 있었구나 싶어 약간 놀랐다. 그런 감회도 잠시. 퍼플섬(Purple Island)이 조성된, 안좌도의 남쪽 박지도·반월도까지 가려니 예상보다는 길이 멀다. 한창 달리다 운전하던 일행은 차를 멈췄다. “잠깐만예 …. 저기 뭐꼬? 왜 노랗지?” 정말이었다. 언덕 하나가 통째로 노란 빛이었다. ‘옐로우 아일랜드(Yellow Island)’라는 표지도 보였다.

알아보니, 이곳은 암태도와 안좌도 사이 팔금도였다. 보라색 퍼플섬이 큰 인기를 끌면서 ‘색깔 마케팅’에 자신감이 생긴 신안군이 이번에는 노란색을 활용해 다시 한번 새로운 관광자원을 만들려고 노란색 식물을 언덕 가득 심은 듯했다. 지난달 초순 취재 당시 이 노란 언덕은 조성 작업이 여전히 진행 중인 상태로 보였다. 여기서 멀지 않은 곳에 신안 출신 큰 미술가 김환기(1913~1974) 선생의 고택이 있다.

▮살짝 화려한 느낌의 편안함

바다 위에 놓인 보라색 다리인 퍼플교를 관광객이 건너고 있다.


안좌도 남쪽을 향해 달리다가 도로 바닥과 건물 지붕이 보라색으로 된 동네를 통과했다. 밝은 색조 보라색이 점점 늘어나는 기분이다. 신기했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 전남 신안군청이 펴낸 자료를 통해 퍼플섬에 관해 조금 더 알아보자.

“한 번에 섬 3곳을 걸어서 여행할 수 있는 이색 명소가 있다. 마을 지붕부터 도로, 휴지통, 식당 그릇까지 보랏빛 일색인 전남 신안군 퍼플섬이다. 퍼플섬은 안좌도 부속 섬인 반월도와 박지도를 통틀어 부르는 명칭이다. 보라색 옷이나 신발 모자(우산 포함) 등을 착용하면 입장료(어른 5000원, 청소년 3000원, 어린이 1000원)가 면제된다.” 박지매표소에서 관광기념품으로 나와 있는 1만2000원 짜리 우산(역시 모두 보라색이다)을 샀더니 따로 입장료를 받지 않았다. 왜? 보라색이니까!.

“안좌도와 반월도, 박지도 는 바다를 가로지르는 보라색 해상보행교로 이어진다. 안좌-반월 간 문브릿지 380m, 반월-박지 간 퍼플교 915m, 박지-안좌 간 퍼플교 547m다. 섬 관광을 생략하고 보행교만 따라 걸어도 족히 30분은 걸린다. 문브릿지는 배가 지날 때 부잔교가 열리는 전천후 교량이다.” 우리는 먼저 박지-안좌 간 547m 퍼플교를 건넜다. 푸른 바다 위로 쭉 뻗은 보라색 다리라니! 날은 맑고 바람은 조금 세게 불었다. 다리 입구에서 본 ‘1004섬 공영버스’도 보랏빛이다. 뭐랄까? 묘하고 편했다. 자극성 없는, 약간은 화려한 편안함.

▮섬 반대쪽에 자리한 라벤더 정원

퍼플섬에 가까워지자 도로 바닥도 지붕도 보랏빛을 띤 마을이 나왔다.


박지-안좌 간 퍼플교를 건너 박지도에 들어섰다. ‘박지리(배기마을)’라고 쓴 표석이 서 있고 그 곁에 보라색 길 안내 표지판이 있다. ‘900년의 우물 가는 길(왼쪽 화살표)’ ‘라벤더정원 가는 길 1.6㎞’(왼쪽 화살표) ‘바람의 언덕 가는 길 1.8㎞’(왼쪽 화살표). 왼쪽으로 안내하는 화살표가 많았지만, 우리는 일단 오른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그리로 가면 915m 길이 반월-박지 간 퍼플교를 곧장 걸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뒤에 알게 됐지만, 오른쪽으로 방향을 잡은 건 행운이었다.

반월-박지 간 915m 퍼플교 입구에서 서성거리다가 다리 건너기를 포기하고 박지도를 오른쪽 방향으로 한 바퀴 돌아보기로 했다. 좋은 결정이었다. ‘해안꽃길’을 따라 박지도를 걸어서 일주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박지리(배기마을) 표석 앞에서 ‘라벤더정원’을 향해 왼쪽 방향으로 곧장 가서 숲길 쪽으로 들어섰다면 어쩌면 놓쳤을 풍광이다. 바닷가 쪽으로 딱 붙은 해안꽃길을 걷다 보니 저 멀리 신안 다도해 경치가 한눈에 흡족하게 들어왔다.

길은 외길이었다. 그냥 따라 걷기만 하면 됐다. 산뜻한 보라색으로 치장한 박지마을 호텔·식당 앞을 지나 무인 카페 앞을 거쳐 보라색 지붕을 이고 선 섬집 여러 채 사이를 통과해 언덕으로 올라서자 그곳에 라벤더정원이 있었다. 박지리(배기마을) 표석 앞에서 왼쪽으로 가든 오른쪽으로 방향을 잡든, 섬 정반대 편의 라벤더 정원까지는 각각 1.5~2㎞쯤 걸어가면 된다. 이렇게 보면 퍼플섬의 한 축인 박지도(박지리) 전체 둘레길은 4㎞ 안팎 돼 보였다.

▮라벤더꽃은 7월까지 피어 있고

안좌도 닿기 직전 팔금도에는 노란색을 강조한 ‘옐로 아일랜드’가 조성되고 있었다.


라벤더 정원은 아름다웠다. 밝은 계통 보랏빛으로 짠 융단을 깔아놓은 듯했다. 눈을 조금만 들면 바다가 넘실댔고 저 멀리 섬이 곳곳에 박혀 있었다. 이곳에는 ‘프렌치 라벤더꽃/ 5~7월/7만 본’이라고 쓴 안내판이 여행객을 반겼다. 이 많은 보랏빛 꽃이 7월까지 간다는 뜻이다. 오다가 본 다른 장소의 안내판에는 ‘아스타꽃/ 8~11월/ 32만 본’이라고 써 놓았다. 그러니까 퍼플섬은 보랏빛 꽃의 향연을 연중 오랜 기간 볼 수 있게 꽃을 다양하게, 여러 장소에, 넓게 심어서 가꾸고 있다.

박지-안좌 간 퍼플교를 건너 박지도에 들어선 뒤 바로 박지-반월 간 퍼플교를 걷는 관광객도 많았는데, 그렇게 하지 않고 박지리의 라벤더정원을 찾아오는 여행객도 꽤 많았다. 만약 바다 위로 난 퍼플교 세 개를 건너는 것으로 퍼플섬 탐방을 끝낸다면, 좀 단조로울 수 있을 것 같았다. 마음이 부드럽고 시원하게 열리는 라벤더정원은 안 가보면 아쉬울 명소다. 다만 라벤더꽃이 7월까지만 핀다는 사실은 기억하자.

명물은 또 하나 있다. 라벤더정원에서 박지리(배기마을) 표석까지 이어지는 1.6㎞ 구간 숲길이다. 때 묻지 않고 청정한, 섬의 이야기와 섬사람의 숨결을 오랜 세월 간직한 숲길에서 마음은 또 한 번 평화로워졌다. 신안군 관광 자료는 이렇게 명기했다. “2021년 유엔세계관광기구(UNWTO)가 선정한 ‘세계 최우수 관광 마을’에 퍼플섬은 들었다. 같은 해 한국관광공사는 퍼플섬에 ‘한국관광의 별’ 본상을 수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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