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지대는 없다… 한반도 전역이 ‘돌발성 강진’ 진원지로
12일 호남에서 발생한 ‘부안 지진’은 우리나라 전역이 강진(强震)의 피해 지역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그동안은 ‘불의 고리’와 가까운 일본 해역과 인접한 영남권에서만 나타나는 줄 알았던 현상이 호남권까지 확대된 셈이다.
한반도 내륙에 규모 4.5 이상 강진이 발생한 것은 2018년 2월 ‘포항 지진’(규모 4.6) 이후 6년 만이다. 전북 부안 일대는 지진이 발생해도 강력하진 않았던 곳이다. 기상청에 따르면, 1978년 이후 부안 내륙과 해역에 총 40회 지진이 발생했고 이 중 ‘규모 3.0 이상 4.0 미만’은 9차례 있었다. 단지 흔들림을 느끼는 정도의 지진만 났던 곳에서 갑자기 규모 4.8의 강력한 지진이 발생한 것이다.
부안 지진은 한반도에서 역대 가장 강력했던 2016년 경주 지진(규모 5.8)과 발생 원인이 같았다. 이번 부안 지진은 ‘주향이동단층’으로 발생한 것으로 분석됐다. 땅 속 두 판이 서로 반대 방향으로 수평 이동하면서 뒤틀렸다는 것이다. 단층 이동은 크게 ‘정단층’ ‘역단층’ ‘주향이동단층’으로 나뉜다. 이 중 주향이동단층은 보통 15~20㎞ 수직 절단면을 만든다. 하프마라톤 코스 길이만큼 땅이 갑자기 뒤틀리고 어긋나면서, 땅을 거세게 흔들었다는 뜻이다.
경주에서 2016년(규모 5.8)과 작년(규모 4.0) 발생한 지진도 ‘주향이동단층’이 원인이었다. 일반적으로 주향이동단층은 판이 위아래로 흔들리는 정단층, 역단층 지진에 비해선 피해가 작을 수 있지만 건물 구조나 주거지와 거리 등이 주요 변수로 작용한다. 2017년 경북 포항 지진은 ‘역단층성 주향이동단층 지진’으로, 역단층과 주향이동단층이 동시에 발생했다. 판이 수직 방향과 수평 방향으로 크게 흔들리면서 피해가 커졌다. 일각에선 충남 부여군에서 전북 부안군까지 분포하는 것으로 추정되는 ‘함열단층’을 이번 지진의 원인으로 지목했다. 그러나 기상청은 “함열단층과 이번 지진 진원과의 거리가 20km가량 떨어져 있어 함열단층일 가능성은 매우 낮다”고 했다.
부안 지진은 부안군청에서 4㎞ 떨어진 지점에서 발생했다. 이 일대 시민들이 체감하는 지진의 위력이 컸던 이유다. 또 한반도 지진은 대부분 진원의 깊이가 10㎞ 정도인데 이번에는 8㎞ 정도로 얕아서 실제 느끼는 진동의 크기가 여느 지진보다 컸던 영향도 있었다.
우리나라에서 호남권, 특히 전북은 ‘강진 안전지대’로 분류됐던 곳이다. 호남권에선 규모 4.0 이상 지진이 1994년, 2003년, 2013년 세 차례 전남 신안군 흑산면 인근 해역에서만 발생했다. 이마저도 흑산면에서 100㎞ 내외로 멀리 떨어진 곳에서 발생해 주민들에게 미치는 영향은 크지 않았다. 전북은 내륙과 해역 모두 4.0 이상 지진이 없었다. 그런데 이번 부안 지진으로 안전지대 하나가 또 사라지게 됐다.
문제는 이런 돌발성 강진이 우리나라 전역에서 나타날 수 있다는 점이다. 현재 규모 4.8 이상 큰 지진이 발생하지 않은 곳은 전국적으로 수도권과 강원도만 남게 됐다. 영남권에선 2016년 ‘경주 지진’과 2017년 ‘포항 지진’(규모 5.4) 등이 있었고, 충청권도 1978년 충남 홍성에서 규모 5.0의 큰 지진이 발생한 바 있다.
한반도 아래 단층 구조에 대한 연구는 적어도 2036년까지 시간이 필요한 상황이다. 우리나라는 2016년 경주 지진을 계기로 지진에 대한 경각심이 생겼고, 이듬해 기상청 안에 지진화산국이라는 전담 조직을 만들어 한반도 단층 구조를 조사하고 있다. 이때 시작된 ‘한반도 단층 구조선의 조사 및 평가 기술 개발’ 사업은 현재 영남권(한반도 동남부)을 대상으로 한 1단계 조사만 마친 상황이다. 영남권 조사에서는 지진을 유발하는 활성 단층이 14개 확인됐다. 2026년까지 한반도 중서부(수도권)와 중남부(충청권) 단층을 조사하는 2단계 조사가 현재 진행 중이다. 3단계(호남권)와 4단계(강원권) 조사까지 완료되는 시점은 2036년으로 예상된다. 그때까지 한반도 전역의 정확한 단층 정보 파악은 어려운 처지다.
한편 학계에선 한반도에서 발생할 수 있는 최대 규모 지진을 ‘규모 6.5~7.0′까지 보고 있다. 규모 7.0은 우리나라에서 역대 가장 강했던 2016년 9월 ‘경주 지진’(규모 5.8) 보다 63배 강하다.
☞부안 지진의 원인 ‘주향이동단층’
땅속 두 판이 서로 반대 방향으로 수평 이동하면서 뒤틀리는 현상. 땅이 길이 15~20㎞가량 쪼개져 강한 지진을 유발한다. 단층 이동은 두 판이 멀어지면서 비교적 완만한 계단 모양의 층이 생기는 ‘정단층’과, 두 판이 가까워지면서 충돌해 한쪽 판 위로 다른 판이 밀려 올라가는 ‘역단층’, 좌우로 흔들리는 ‘주향이동단층’까지 크게 세 가지로 나뉜다.
☞진원과 진앙
진원(震源)은 땅의 붕괴가 시작돼 최초로 지진파가 발생한 지하의 특정 지점을 뜻한다. 이 진원에서 수직으로 선을 그어 지표상에 찍은 점이 진앙(震央)이다. 지진이 발생하면 진앙으로 ‘발생 위치’를, 진원으로 ‘발생 깊이’를 각각 표시해 알리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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