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층 아파트 엘리베이터 멈추자...일상이 다 멈췄다
배달 안오고 환자 구급차 옮기는데 1시간

“아파트 13층에 사는 응급 환자를 구급차까지 옮기는 데 1시간이나 걸렸어요.”
12일 오후 인천 중구의 한 아파트에서 만난 최모(73) 할머니는 이날 새벽에 있었던 일을 떠올리며 눈물을 찔끔했다. 옆집에 사는 70대 할머니가 “숨이 막힌다”고 해 119에 신고했는데, 아파트 엘리베이터가 멈춰선 탓에 구조대가 출동하고서도 구급차까지 옮기는 데 1시간이 걸렸다고 한다.
최씨는 “관리사무소에 잠깐만 엘리베이터를 운행해줄 수 없냐고 물었지만 벌금을 내야 해 안 된다고 하더라”며 “폐에 물이 차서 중환자실에서 치료 중이라고 하는데 남의 일 같지 않아 마음이 아프다”고 했다.
인천 중구 항동 7가에 있는 이 아파트는 지은 지 34년 된 낡은 아파트다. 8개 동에 629가구 1440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지난 5일 오후부터 아파트 단지의 엘리베이터 24대가 전부 멈춰 서면서 주민들의 일상도 완전히 달라졌다. 아파트 단지 엘리베이터는 정기적으로 한국승강기안전공단의 정밀안전검사를 받아야 하는데 최근 불합격 판정이 나와 운행할 수 없게 된 것이다. 보완 조치를 한 뒤 검사를 통과해야 엘리베이터를 다시 운행할 수 있다. 운행하다 적발되면 3년 이하의 징역이나 3000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해진다.
아파트 관리사무소 관계자는 “최근 몇 년간 누수 문제 때문에 골치가 아파 엘리베이터에 신경을 못 썼다”며 “지난달 엘리베이터 보수 공사 업체를 선정했지만 부품 수급이 늦어지면서 엘리베이터가 다시 가동하려면 적어도 석 달 정도 걸릴 것 같다”고 했다. 주민들 입장에서는 석 달 이상 사실상 고립된 생활을 해야 하는 셈이다.
그동안 고층 아파트의 엘리베이터가 고장 나 며칠씩 멈춰선 적은 있지만 이같이 장기간 ‘올스톱’된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이 아파트는 특히 65세 이상 노인이 많이 산다. 아파트 주민 3명 중 1명(30%)이 65세 이상 노인이다. 장애인도 87명 살고 있다.
노인들은 병원 오가는 일이 걱정이다. 병원 가려다 오히려 병을 얻는 일도 있다. 이 아파트 12층에 산다는 80대 이모 할머니는 “10층에 사는 노인은 계단을 오르내리다 무릎을 다쳤고, 또 다른 노인은 허리를 삐끗하기도 했다”며 “엘리베이터가 멈춘 뒤 그런 분들이 여럿 있다”고 말했다.
아파트 1층 입구에는 택배 상자가 어지럽게 쌓여 있었다. 배달 기사마저 배달을 포기해 1층 바닥에 던져둔 것이다. 아파트 입구에서 만난 택배 기사는 “원래는 택배 여러 개를 엘리베이터에 싣고 꼭대기 층까지 올라간 뒤 한층 한층 내려오며 배달을 하는데 상자를 지고 올라갈 수도 없고 죄송하지만 방법이 없다”며 “우리도 물건이 잘 전달될지 걱정”이라고 했다.
배달 음식도 끊겼다. 배달 플랫폼이 발달해 어디서든 클릭 몇 번으로 음식을 시켜 먹을 수 있는 세상이지만 이곳은 예외다.
이 아파트 7층에 사는 40대 최모씨는 “라이더들이 걸어서 못 올라온다고 해 치킨 하나 시켜 먹으려면 1층까지 내려가서 직접 받아와야 한다”며 “요즘에는 동네 가게에 소문이 나 주소를 얘기하면 아예 배달을 거부하거나 그냥 1층에 두고 간다”고 했다.
주민들은 “엘리베이터 하나 멈춰섰을 뿐인데 생지옥이 따로 없다”며 원성을 쏟아냈다. 주민 김모씨는 “관리사무소가 지난 5일 오후 방송 한 번 하더니 바로 엘리베이터 운행을 멈췄다”며 “좀 더 미리 공지를 했다면 라면이라도 사뒀을 텐데 화가 난다”고 했다. 그는 “당장은 집에 먹을 게 있지만 상황이 길어지면 쌀 같은 무거운 식재료는 어떻게 할지 막막하다”고 했다.
또 다른 주민은 “주민 불편은 생각지도 않는 융통성 없는 승강기안전공단도 문제”라고 했다. 이에 공단 측은 “규정에 따라 유예 기간을 줬는데도 합격 기준을 맞추지 못해 불합격 판정을 할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지방자치단체도 문제 해결에 나섰다. 인천 중구 관계자는 “매일 고령인 기초생활수급자와 장애인 주민에게 전화를 걸어 안부를 확인하고 있다”며 “공단과도 협의하고 있다”고 했다.
관리사무소 관계자는 “앞으로는 위급한 환자가 발생할 경우 구청에 알리고 임시로 엘리베이터를 운행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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