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정과 선함이 있던 그 마을로 돌아가고 싶다
“이 시집이 내 인생에 없었더라면 어딘가 텅 비어 있었을 것이다. 오랜만에 쓴, 사심이 들어가지 않은 깨끗한 시다.”
‘섬진강 시인’ 김용택(76)이 5일 신작 시집 ‘그때가 배고프지 않은 지금이었으면’(마음산책)을 펴냈다. 인터뷰를 요청하자 “마음이 뜨거울 때 해야겠다”며 전북 임실 진메마을에서 한달음에 달려왔다.
“어떤 마을이 하나 나타나버린 거예요. 우리가 지나쳐 왔고, 우리가 버렸던, 다시 돌아갈 수 없는 그런 마을.” 그가 시집을 들어 보이며 말했다. 진메마을에서 나고 자란 시인 김용택이 마을 사람들에게 바치는 헌사 같은 시집이다. 서춘 할아버지, 암재 할머니, 아롱이 양반, 일촌 어른 등 옛날 옛적 마을에 살았던 사람들의 얼굴이 어른거린다.
평생 깔끔하고 깨끗한 시를 좇았다. 이번 시집은 유난히 맑다. 시인이 말하는 ‘사심’이란 ‘과잉된 감정’이다. 개인적인 감정이 시에 넘쳐 흐르는 ‘삿됨’을 늘 경계해 왔다. “내가 욕심을 안 부렸나, 상업성과 약간 야합하지 않았나, 많이 팔려고 애쓰지 않았나…. 시인으로서 갖지 말아야 할 마음들이 시에 있어요. 그래서 시집을 내놓고 나면 총체적으로 괴롭죠. 그런데 이 시집이 나온 다음에는 괴로운 마음이 없고 그저 너무 좋았어요.”
표제작이자 시집의 제목인 ‘그때가 배고프지 않은 지금이었으면’에는 시인의 염원을 담았다. ‘동네 사람들이/ 크게 다치거나/ 큰일을 당하면/ 어머니는 늘 이렇게 말씀하셨다./ 남의 일 같지 않다./ 다 내 일이다….’(‘공부’) “비록 그때는 배고팠지만 인간을 고귀하게 생각하고 소중하게 여기는 인정, 아름다움, 선함이 있었는데 지금은 다 사라졌지요. 거칠고, 흉포하고, 무섭잖아요.
시인은 “이제 너무 멀리 와버렸다. 돌아갈 수 없게 돼버렸다. 그 누구도 돌아가려 하지 않는다”며 착잡해 했다. 그가 불러낸 마을의 맑은 이미지가 먹먹함을 자아내는 건 이 때문이다. 그와 부인은 책으로 묶여 나온 시집을 식탁 앞에서 번갈아 읽으며 함께 조금 울었다. ‘사는 일이 바람 같구나. 나도 어느 날 훌쩍 그들을 따라갈 것이다. (중략) 나도 그 마을에 들어가 그때는 시 안 쓰고 그냥 암쇠 양반처럼 해와 달이 시키는 대로 농사일하면서 근면 성실하게 살고 싶다….’(‘그때가 배고프지 않은 지금이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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