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 여인의 백옥같은 얼굴은 결핵 때문… 21세기는 ‘잠복 결핵’이 문제
미국인 부모에게서 태어나 유럽에서 활동한 존 싱어 사전트(1856~1925년)는 시대를 선도한 초상화 화가로 불린다. 그가 1884년에 그린 <마담 X의 초상>은 큰 화제를 낳았다. 모델은 프랑스 은행가의 젊은 아내 피에르 고트로다. 그녀는 파리 사교계의 명사로, 불륜 소문이 끊이질 않았다. 당시에는 화가들이 유명인 초상화를 서로 그리려고 했는데, 이 그림도 사전트 요청으로 이뤄졌다.
여성은 보석으로 장식된 끈이 달린 검정 드레스를 입고 우아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검은색의 드레스와 창백한 살색이 대비된다. 여성의 얼굴이 유난히 희멀건 이유는 당대에 널리 퍼졌던 결핵 때문이다. 결핵 감염으로 체내 산소가 모자란 핏기 없는 얼굴과 사교계 유명인으로서 거만한 표정이 절묘하게 교차한다.
19세기 파리 사망자의 4분의 1이 결핵 때문이었다. 당대 오페라나 문학에 나오는 비련의 주인공은 죄다 결핵으로 죽는 설정이었다. 19세기 결핵균을 규명하고, 20세기 항생제가 등장하면서 인류는 결핵 공포에서 벗어나기 시작했다.
결핵 왕국으로 불리던 한국은 한 해 신규 환자 수가 2011년 최고치(약 4만명)를 찍고 12년째 감소 중이다. 그래도 작년에 1만9540명이 발생했다. 감염자 열 명 중 여섯이 65세 이상 고령자다. 요즘은 젊은 층 신규 감염보다는 예전에 결핵을 앓고 지나갔던 고령층이 면역력이 떨어지면서 다시 발병하는 잠복 결핵 감염이 문제다.
잠복 결핵이란 결핵균이 몸 안으로 들어왔지만 활동하지 않아, 결핵으로 발병하지 않은 상태를 말한다. 이런 상태의 사람으로부터 결핵 전염 가능성은 없다. 하지만 이들의 10%에서는 나중에 결핵이 발생한다. 잠복 결핵 여부는 혈액 검사와 피부반응 검사로 알 수 있다. 질병관리청은 “잠복 결핵 양성자가 3~4개월 결핵 약을 복용하면 83%에서 결핵이 예방된다”며 “치료비는 국가에서 무상으로 제공한다”고 말했다. 한국인 3명 중 1명은 잠복 결핵 양성자로 추정되고 있다. 마담X의 창백한 얼굴 교훈. 화려함에 취하지 말고, 숨어 있는 세균을 조심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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