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저출생 예산 47조 중 절반이 무관, 전면 재조정 검토를

조선일보 2024. 6. 13. 0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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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앤 윌리엄스 캘리포니아대 명예교수가 작년 EBS와의 인터뷰에서 한국의 합계 출산율(2022년 0.78명)을 전해 듣고 놀라고 있다. /EBS

한국개발연구원(KDI) 분석 결과 지난해 저출생 대응 예산으로 47조원을 썼지만 그중 절반은 저출생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과제에 투입된 것으로 나타났다. 18년간 380조원이라는 천문학적인 예산을 저출생 대응에 쏟아부었다는데 그 실상도 이와 비슷할 것이다.

저출생 예산으로 잡힌 항목들을 보면 기가 막힐 정도다. 학교 단열 성능 개선, 태양열 설비 설치를 지원하는 그린스마트스쿨, 청소년 스마트폰 중독 예방, 웹툰 창작·교육 공간 조성, 관광 사업체 창업 지원, 청년의 자산 형성을 지원하는 청년내일채움공제 사업 등이 어떻게 저출생 예산이라고 할 수 있나. 상당수는 각 부처에서 예산을 더 따내기 위해 저출생 사업이라는 꼬리표를 붙인 결과일 것이다. 더구나 나머지 저출생 예산의 절반에 육박하는 21조4000억원이 주거 지원 예산이었다. 주거 지원은 저출생과 관련이 없다고 할 수는 없지만 연결 고리가 약해 국제 비교에서 기준으로 삼는 OECD의 ‘가족 지출’에도 들어가지 않는다.

엉뚱한 항목까지 저출생 예산으로 잡는 보여주기식 예산 편성은 오히려 예산 착시효과를 일으켜 저출생 정책의 효과를 떨어뜨리는 핵심 요인 중 하나로 지적되고 있다. 저출생 예산이 부풀려져 있어서 정비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 지 10년도 넘었는데, 아직도 이런 식이다.

저출생과 직결된 예산 중에서도 양육 분야에 87.2%(20조5000억원)가 집중된 반면 정작 효과가 크고 부모들의 요구가 많은 일·가정 양립 분야는 8.5%(2조원)만 지원하고 있는 것도 문제다. 한국은행은 지난해 12월 각 저출생 대책에 대한 출산율 제고 효과를 구체적인 숫자로 제시하는 보고서를 냈다. 한국의 육아휴직 실제 이용 시간(10주)이 OECD 평균(61주)으로 늘면 출산율이 0.096명 늘 것이라고 한다. 실효성 있는 저출생 대책은 실효성 있는 예산의 편성과 집행으로부터 시작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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