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시각] 연구원 출신 의원의 갸우뚱 행보
더불어민주당 황정아 의원실에 25개 정부출연연구기관(출연연) 업무 보고 지시에 대해 지난 11일 물었다. 돌아온 첫마디는 “그런 이야기를 어떤 출연연에서 하던가요?”라는 물음이었다. 국정 감사 때처럼 자료를 요구해 힘들었다는 출연연 실무진의 의견에 대해서는 “따로 자료를 요청한 적이 없다”며 “어차피 출연연에서 추진하고 있던 것에 대해 물었을 뿐”이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의원실의 이어진 반문은 “그럼 일을 하지 말라는 거냐.” 문득 의원실이 출연연을 대하는 자세를 엿본 듯한 느낌이 들었다.
출연연 실무진들의 반응이 ‘일을 하지 말라’는 뜻일 리가 있나. 아무리 평소에 만들어 둔 현안 자료라도 의원실에 보고하기 위해서는 한 번 더 손봐야 하는데다 의원실이 추진하고 있는 사안에 대해 기관의 의견을 물었다면 준비할 자료가 훨씬 많아진다. 황 의원이 업무 보고 지시를 내린 이후 25개 기관 관련 부서는 일상 업무를 멈추고 보고 준비에 매달렸다고 한다. 한국천문연구원 책임연구원 출신인 황 의원이 이런 업무 보고 요청을 받은 출연연에 어떤 일이 벌어졌을지 모를 리가 없다.
연구 현장의 목소리를 듣고자 하는 황 의원의 의지는 당연히 평가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문제가 된 것은 방식이다. 황 의원은 기본적인 업무 파악은 자료를 통해 먼저 하고 현장을 방문하거나 실무자를 불러 궁금한 점을 물어보는 기존의 관례를 깼다. 굳이 실무자가 아닌 부원장이 의원실을 직접 찾아오도록 한 이유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별다른 설명은 없었다고 한다.
이런 의원실의 요구에 반기를 든 부원장도 있다. 한 출연연 부원장은 “부원장을 맡고 있던 지난 3년간 의견을 듣기 위한 간담회나 회의는 있었어도 ‘보고’를 요청받은 적은 없었다”며 “조직에 누를 끼치면 안 되기에 (의원실이) 보고를 강제할 경우 조직을 떠날 예정”이라고 했다.
카이스트 물리학 박사인 황 의원은 과학계 인재로 민주당에 입당한 후 과학계 대변인을 자처해왔다. 그런데 지난달 정부가 과학기술 R&D 예비타당성조사 폐지를 발표하자 과학계의 입장과는 다른 소리를 냈다. 현장 연구자들의 의견을 반영한 절차나 방식, 내용을 개선하기 위한 정밀한 검토가 필요하다는 것이었지 무턱대고 폐지만 하라는 뜻이 아니라는 것이다. ‘기술 패권’ 시대에 기동성 있는 대응을 위해, R&D 예타 폐지는 과학계의 오랜 숙원이었다. 과학계 대변인을 자처해왔던 황 의원의 평소 발언을 떠올리면,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드는 발언이었다. 연구 현장에서의 마음을 잊지 않는 태도와 실질적인 도움이 될 의정 활동이 황의원에게 주어진 숙제 아닐까. 과학계의 간절한 희망도 그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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