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광 그 후 - 다시 찾은 미래] 11. 현실이 된 태백 경제 도미노

최현정 2024. 6. 13. 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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쏟아지는 실직 광부 “일할 곳 없어…산업역군서 골칫덩이로”
도·시 고용위기지역 신청 등 대책 고심
당장 따로 편성된 예산 없어 지원 못해
지게차·용접 훈련 지원에도 미래 암담
1989년 석탄산업 합리화 ‘탄광촌 몰락’
1988년 11만5000여명서 3분의1 잔류
장성광업소 폐광땐 3만명 붕괴 불보듯
20년 전 장성중앙시장 호황 뒤로하고
발길끊긴 상가, 지역 공동화 현실로
40여년 장사한 상인도 상권 붕괴 체감

일자리를 잃게 된 젊은 광부와 지역 주민들은 대책 없는 상황에 한숨을 내쉬고 있다. 이미 태백 장성중앙시장을 중심으로 폐광지역 상권은 몰락하고 있어 공동화 현상으로 마을이 사라지는 것은 아닐까 하는 불안함이 엄습하고 있다.

▲ 지난 10일 찾은 태백 장성중앙시장 상가. 오후 6시가 되기 전인데도 손님이 없어 상가들이 대부분 문을 닫았다.

■ 현실로 다가온 광부들의 실직

젊은 광부들은 일하고 싶다. 강원도와 태백시가 고용위기지역 지정 신청 등 대책 마련에 나섰지만 당장 마련된 예산이 없어 현재 퇴직을 앞둔 광부들을 위한 지원은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

광부들은 전업교육을 받고 싶다고 했지만 시는 이들을 위해 따로 편성된 예산이 없어 지원이 어렵다고 했다. 태백시 관계자는 “직접적인 지원은 광해광업공단에서 주로 나가고 있고, 저희는 추후 창업이나 취직 등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고용위기지역 지정 신청을 해둔 상태”라며 “현재 별도로 시에서 직접적으로 금액이 나간다거나 지원하는 사항은 없다”고 말했다. 이에 장성광업소 노동조합이 태백고용복지센터에 도움을 청해 지난달 7일부터 장성광업소 근로자 96명이 지게차 훈련을, 20명이 용접 훈련을 받고 있다. 고용노동부의 직업훈련 프로그램을 활용, 태백고용노동센터에서 한국폴리텍대학 강릉캠퍼스와 협력해 전업교육이 성사될 수 있도록 했다.

그러나 광부들의 고민은 여전하다. 아직까지 키워야 할 자녀들이 있기에 일을 더 해야 하는데 이것만으로 먹고 살 수 있을지 확신이 서지 않기 때문이다.

현재 지역에 마땅한 일자리도 없어 이곳을 떠나야 하나 하는 고민도 들지만 부모와 형제들이 모두 살고 있는 고향 땅을 떠나고 싶지 않다.

장성광업소에서 21년간 일해온 임영식(59)씨는 “부모님이 계신 곳이니 다들 태백을 떠나고 싶지 않은 마음은 똑같을 것이다. 그래서 일자리가 간절하다”며 “고용이 되면 우리도 마음 놓고 태백을 안 떠나고 싶은데 이제와서 다들 우왕좌왕하니까 갈 길을 못 찾겠다”고 말했다.

막장에서 17년간 채탄·굴진 일을 해온 최인출(53)씨도 “먹고 살아야 한다고 하면 어쩔 수 없겠지만 폐광 대책비를 받아 도시로 나간다해도 전세도 얻기 어려운 형편”이라며 “일자리만 마련되면 당연히 이곳에서 살고 싶다. 한번 더 열정을 쏟을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주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렇다보니 당장 실직을 눈앞에 둔 광부들은 지역에 뭐라도 들어와주었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하다. 18년간 채탄 일을 해온 편재준(55)씨는 “핵폐기물이든 뭐든 다른 지역에서 반대하는 것 뭐라도 들어왔으면 하는 바람도 있다”고 말했다.

정부와 지자체에 대한 원망의 소리도 나온다.

장익환(56)씨는 “내가 2004년 입사할 때부터 벌써 장성광업소가 문을 닫는다는 이야기가 나왔다”며 “벌써 20년이나 됐는데 그동안 도나 시는 무얼 했냐. 설마 문을 닫겠나 하는 안일한 마음으로 오다보니 대책 없이 여기까지 온 게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임영식(59)씨도 “우리들 평균 연령이 57세 정도인데 아직 젊은 사람도 많다. 폐광이 되면 일자리가 없어지는 거고 공동화 현상이 일어난다는 건 불보듯 뻔한 일인데 정부나 지자체나 너무 안일하지 않았나 싶다”고 말했다. 김영문(47)씨 역시 “한창 일할 때는 우리보고 산업역군이라고 치켜세우더니 폐광이 다가오자 이제는 ‘골칫덩이’ 취급을 한다”며 “정부가 너무 안일한 생각으로이 국면을 대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돈 몇 푼만 쥐어주면 다 된다는 식”이라고 했다. 김씨는 “정부에서 방산업체 몇 곳에 ‘태백으로 옮기면 적극 지원하겠다’고 나서야 한다”고 했다.

■ 인구 3만명 붕괴 위기

태백은 이미 1989년 시행된 석탄산업 합리화 정책으로 시련을 겪은 곳이다. 비경제탄광을 폐광하고 경제성 있는 탄광만 집중 육성하겠다는 취지로 시행된 석탄산업 합리화 정책은 태백, 정선, 영월, 삼척 등 도내 탄광촌의 몰락을 가져왔다. 1988년까지 인구 11만 5175명이었던 태백시의 인구는 현재 3만 8272명(24년 4월 기준)으로 3분의 1도 채 남지 않게 됐다. 그러나 장성광업소가 이달 말 폐광하게 되면 3만명 선도 무너지지 않을까 하는 불안함은 현실이 되고 있다.

강원도가 기본구상으로 실시한 ‘탄광지역 폐광 대응 연구용역’ 결과에 따르면, 장성광업소 폐광이 이뤄질 경우 지역사회의 피해액이 3조 3000억원에 달하고, 지역내총생산(GRDP)이 13.6% 감소할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또 현재까지 장성광업소에 남은 직원 416명을 포함해 총 876명이 실직할 것으로 예상돼 인구 유출은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이에 강원도와 태백시는 지난달 31일 정부에 태백시를 고용위기지역으로 지정해줄 것을 신청, 현장실사와 함께 고용정책심의회 의결을 거쳐 지정 여부가 결정될 예정이다. 고용위기지역은 고용이 악화하거나 급격한 고용 감소가 확실시 되는 지역을 말한다.

기초자치단체 신청에 따라 국가가 지정해 특별 지원하는 지역으로 최초 2년 지정 후, 1년 범위 내 3회 연장이 가능하다. 태백시가 고용위기지역으로 지정되면 최대 연 300억 규모로 근로자 생계부담 완화, 직업훈련 확대, 지역 맞춤형 일자리 창출 등 단기 지원이 이뤄질 수 있다.

고용위기지역으로 지정이 되면 시는 곧바로 산업위기대응 특별지정 지정에도 나설 계획이다. 이는 특정산업 위기의 대규모 휴업, 실직, 경기침체가 우려되는 지역으로, 선정되면 1조 5000억원의 장기적인 지원이 가능해진다.

■ 장성중앙시장 상권 붕괴

장성광업소 폐광은 상권 몰락으로도 이어지고 있다. 지난 10일 오후 5시 30분쯤 기자가 직접 장성중앙시장을 찾았으나 오후 6시가 되기 전인데도 문을 닫은 곳이 많았다.

20년 전만 해도 발 디딜 틈 조차 없었다는 이곳은 이제 1시간에 1명도 다니지 않는 곳이 돼 버렸다. 김양호 장성중앙시장 조합장은 “10년 전부터 개구리가 탕에서 죽어가듯 상권이 점점 무너지더니 3~4년 전부터 70% 정도 꺾인 것 같고, 6월이 되니까 완전히 무너져서 막다른 길에 왔다. 특히 요 2~3달 사이에 배로 느껴진다”며 “광업소 문을 닫는다고 하니까 젊은 사람들이 떠날 준비를 해서 그런 건지 공동화 현상이 현실로 다가온 게 피부로 느껴진다”고 말했다.

45년째 이곳 상가에서 잡화점을 운영해왔다는 장모(77)씨도 “오늘 돈 3만원 구경했다. 몇 개월 전부터 광업소 문을 닫는다고 하니까 사람들이 아예 안 온다”며 “젊은 사람이 있어야 뭐가 되는데 노인들은 장보기도 어렵지 않겠나. 걱정이 크지만 앞으로 안되도 이보다 안될까 싶다”고 말했다. 40년 넘게 시장에서 옷가게를 운영해온 황모(80)씨도 “우리만 그런 게 아니라 주변 옷가게도 다 문을 닫았다”며 “광업소 문을 닫는 것도 대책을 세워놓고 닫아야 하는데 그런게 전혀 없이 닫아서 우리도 너무 힘들다”고 말했다.

최현정 hjchoi@kad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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