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용 감독이 '원더랜드'로 던진 질문[TF인터뷰]
'만추' 이후 13년 만의 신작
"여러 케이스가 어우러지면서 영화가 풍성해지길 바랐어요"
김 감독은 '원더랜드'가 스크린에 걸린 지난 5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에 있는 카페에서 <더팩트>와 만났다. '만추'(2011) 이후 약 13년 만에 국내 관객들과 만나게 된 그는 "걱정되고 염려되기도 하지만 오랜 시간 잡고 있던 프로젝트가 개봉했다는 것 자체에 기쁜 마음이 더 큰 것 같아요. 내일 되면 또 어떨지 모르겠지만요"라고 개봉한 소감을 전했다.
작품은 죽은 사람을 인공지능으로 복원하는 영상통화 서비스 '원더랜드'를 통해 사랑하는 사람과 다시 만나는 이야기를 그린다.
"주변에 놓친 사람들이 보고 싶을 때가 있잖아요. 이런 식으로 만나면 좋을지 아닐지 궁금했어요. 기술이 발전하면서 점점 헤어지지 못하는 세상이 됐잖아요. 만남과 헤어짐의 경계가 불분명해지는 시대가 되니까 죽은 사람도 화상통화로 만나는 것도 스스로가 믿으면 믿을 수 있겠더라고요. 이런 믿음과 관계의 이야기를 기술로 풀어내면 좋을 것 같았죠."
무엇보다 '원더랜드'는 AI라는 신선한 소재 위에 배우 탕웨이 수지 박보검 정유미 최우식이라는 화려한 캐스팅 라인업을 구축하면서 제작 단계부터 많은 기대를 모았다. 하지만 코로나19로 인해 개봉 시기가 밀리면서 AI가 더 이상 낯설지 않게 느껴지고 있는 지금 시점에 세상에 나오게 돼 아쉬움을 더했다. 그러나 이날 김 감독은 이와 관련해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예전에 제 동생이 'SF 인공지능과 함께하는 사람들의 일상에 누가 관심을 갖겠냐'고 했거든요. 그런데 지금은 인공지능과 함께 사는 일상에 보다 더 관심이 생긴 것 같아요. 예전에는 인공지능을 극복하는 상대라고 생각했다면 이제는 삶의 일부가 됐잖아요. 그런 점에서 관객들을 더 설득하려고 하지 않아도 쉽게 받아들이겠다고 생각했죠. 사실 이렇게 긍정적인 것만 생각하려고 애쓰고 있어요(웃음)."
"13년 전 ('만추' 때) 기억은 잘 나지 않는데 감독과 배우의 관계였고 외국인이다 보니까 어려웠던 것 같아요. 이후 함께 생활했는데도 신기할 정도로 일상과 세트장에서의 느낌이 달라요. 카메라 앞에 있을 때 확 달라지는 점이 재밌었어요. 그동안 탕웨이의 작품을 많이 봤는데 영화 안의 캐릭터로만 보여요. 물론 '아 저 부분은 캐릭터가 아니라 본인 성격 같은데'라는 것도 있지만요. 영화를 보면서 일상을 나누는 사람으로 연결되지 않는 편이에요."
또한 김 감독은 수지 박보검 정유미 최우식을 향해 각별한 애정을 드러냈다. 그는 수지와 박보검을 언급하면서 "이런 사랑스러운 피조물이 있나 싶을 정도"라고 솔직하게 말해 웃음을 안겼고 정유미와 최우식에 관해 "두 배우는 우리의 이야기를 땅에 딱 붙어있을 수 있게 해줬어요. 관객들이 지루하게 볼 수 있는 부분을 사랑스럽게 만들어줬죠"라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정인(수지 분)과 태주(박보검 분)가 진짜 서로 사랑하는 사람처럼 느껴지길 바랐거든요. 두 배우가 한다고 했을 때 너무 좋았죠. 또 만날 때마다 리허설도 많이 하고 사진도 계속 찍었어요. 화면에 잡히지 않아도 상대가 연기할 때 현장에 나와서 계속 몰입할 수 있도록 도와줬고요. 연출자 입장에서 너무 잘 어울리는 두 배우가 그렇게 서로를 배려하면서 연기하니까 너무 행복했어요."
1~2명의 이야기를 깊게 다루는 것과 지금처럼 여러 케이스를 다 넣는 것을 두고 고민을 거듭했다는 그는 "이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도 많을 걸 알지만 이번 작품은 여러 사람들의 합이 모여야 좋을 것 같았어요"라며 "AI로 인해 피폐해진 사람과 현실을 극복하고 행복함을 느끼는 사람 등을 통해 이야기를 중립적으로 다뤄보고 싶었죠"라고 설명했다.
"'정인이는 살아 돌아온 태주를 어떻게 받아들일까. 왜 기계보다 인간을 더 못 받아들일까' '바이리의 엄마는 죽은 딸의 사진을 아무렇지 않게 보지만 AI는 왜 마주하지 못할까' 등 받아들이는 것에 관하여 여러 케이스를 다루면 각 캐릭터가 서로 시너지를 낼 거라고 생각했어요. 물론 1~2명의 이야기를 깊게 다루면 또 다른 장점이 있겠지만 여러 케이스가 어우러져서 영화가 풍성해지길 바랐어요. 구조가 가지는 장단점이 있지만 저는 장점에만 집중했죠."
이날 김 감독은 <더팩트>와 만나기 전 실시간으로 스코어를 체크하고 있었다. 13년 만에 신작을 선보이게 된 만큼 말로 다 설명할 수 없는 설렘과 부담을 동시에 안고 있던 그는 "너무 오랜만에 영화를 개봉하게 돼서 이 스코어가 무엇을 의미하고 있는지 모르겠더라고요. 적은 것도 많은 것도 아니라고 하던데요"라고 솔직하게 말하면서도 끝까지 작품 홍보를 잊지 않았다.
"무언가가 남는 영화가 됐으면 좋겠어요. 엄청 스펙터클한 건 아니지만 극 중 캐릭터들의 사연이 누군가에게 한 번씩은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저는 '원더랜드'를 보고 이야기가 꼬리의 꼬리를 물면서 처음 받아들였던 이야기가 다른 각도로도 보이고 확장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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