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대 두 지도자의 승부수... 英·佛, 조기 총선 ‘격랑’
세계 40여 국가가 대선·총선 등을 치르는 ‘수퍼 선거의 해’인 올해 당초 계획에 없던 빅 이벤트 두 건이 추가됐다. 프랑스(30일)와 영국(7월 4일)이 조기 총선을 치르기로 한 것이다.
서유럽을 대표하는 양대 민주주의 국가에서 정치적 위기에 몰린 40대 젊은 지도자가 난국 타개를 위해 ‘의회 해산’이라는 초강력 승부수를 던졌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 선거 결과에 따라 글로벌 정세까지 요동칠 수 있다는 점에서 국제사회의 시선이 두 나라로 쏠리고 있다.
◇佛 마크롱 “6월 30일 조기 총선”
에마뉘엘 마크롱(47) 프랑스 대통령이 던진 조기 총선 승부수로 프랑스 정계에 일대 격랑이 일고 있다. 마크롱은 지난 9일까지 진행된 유럽의회 선거에서 극우 성향인 국민연합(RN)에 크게 패한 후 조기 총선을 치르겠다고 밝혔다. 3주 만에 치러지는 급한 총선을 계기로 의회를 장악하기 위해 여당인 르네상스, 유럽의회 선거에서 높은 지지율을 확인한 극우, 힘을 합쳐 대세를 장악하려는 좌파가 일제히 연대와 분열을 거듭하며 합종연횡에 뛰어든 모양새다. 다만 이번 총선을 통해 원내 제1당이 바뀌고 이에 따라 총리가 교체되더라도 마크롱 대통령은 2027년까지 임기를 유지한다.
마크롱이 속한 르네상스당은 중도 우파 성향이다. 연금 개혁을 밀어붙이며 민심을 잃었고 불법 이주자 대처도 미흡했다는 평가를 받으며 지지율이 하락했다. 여당은 좌파 정당들과 최근 득세하는 극우 정당 모두와 세를 겨뤄야 하는 상황에 처했다.
좌파와 극우는 각각의 ‘아군’을 찾아 힘을 모으면서 의회를 장악하고 내각에도 영향력을 끼치려 하고 있다. 프랑스는 의원내각제·대통령제가 섞인 ‘이원 집정부제’이기 때문에 총선에서 이기는 당이 총리를 맡는다. 총리가 장관 명단을 만들어 대통령에게 인준을 요청하며 그 과정에 다수당이 큰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다.
가장 먼저 거국적인 연합에 합의한 곳은 좌파 4당이다. 정파적으로 반대쪽에 있는 극우 국민연합(RN)은 또 다른 극우당 ‘르콩케트’ 및 우파 공화당과 협력을 모색 중이다. 마크롱의 르네상스 역시 총선 승리를 위해 공화당에 손을 내밀고 있다. 공화당은 그 과정에 극우와 중도 사이를 오가며 극심한 내분에 휩싸인 상황이다.
일찌감치 ‘단결’에 성공한 좌파 측은 4개 정당이 연합했다. 극좌 ‘굴복하지 않는 프랑스(LFI)’와 사회당·녹색당· 공산당 등 네 개 좌파 정당이 11일 정당 연합 ‘인민 전선’을 구축하고 각 선거구에 단일 통합 후보를 내겠다고 공식 발표했다. 이들은 2022년 총선 때도 연대했었다.
유럽의회 선거에서 크게 이겨 기세가 오른 RN은 다른 극우 및 우파 정당과 손잡고 외연 확대를 타진하고 있다. RN의 조르당 바르델라 대표와 실질적 리더 마린 르펜 원내대표는 10일 극우 성향 ‘르콩케트’의 마리옹 마레샬 선거 캠페인 대표를 만나 극우 연합 구성 가능성을 논의했다. 양측의 대화는 그러나 일단 불발된 것으로 보인다고 프랑스 일간 르피가로가 전했다.
RN과 르네상스 어느 쪽과도 연대가 가능한 우파 공화당은 정작 분열에 빠졌다. 공화당의 에리크 시오티 대표가 11일 “RN과 제휴를 추진하겠다”고 전격 발표하자 당내에선 “RN과 연대는 절대 받아들일 수 없다”는 반발이 나왔다. 공화당은 샤를 드골이 창당해 자크 시라크, 니콜라 사르코지 등을 배출하며 현대 프랑스 정치를 이끌어 온 정당이지만 2017년 이후 마크롱의 중도 우파에 밀려 원내 제4당으로 몰락했다. 아무리 세가 약해졌더라도 극우와 연대할 수는 없다는 의견이 나오는 상황이다. 일부에선 여당인 르네상스와 연대하자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르네상스 혼자만의 힘으로는 총선 승리가 불가능한 마크롱 대통령은 12일 기자회견을 열어 “나는 극우 르펜에게 권력을 넘겨주고 싶지 않다”고 호소했다. 그러면서 연금 개혁 보완과 원전 추가 건설 등의 총선 공약을 발표했다. 그는 “공화국의 가치를 지키기 위해 좌우 양극단에 반대하는 모든 세력이 집권 르네상스를 중심으로 뭉쳐야 한다”고 주장했다.
◇극우로의 민심 이반… ‘국민연합’ 34% 지지율 1위
프랑스 극우정당 돌풍은 유럽의회 선거에 이어 조기 총선에서도 불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10일 여론조사업체 해리스인터랙티브 조사에서 극우 국민연합(RN) 후보에게 투표하겠다고 답한 이의 비율은 34%로, 유럽의회 선거 득표율(31.5%)을 앞섰다. 좌파 4당 연합 ‘국민 전선’에 투표하겠다는 응답이 25%로 뒤를 이었다.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의 집권 르네상스에 투표하겠다는 이는 19%에 불과했지만, 유럽의회 선거 득표율(14.6%)보다는 높게 나와 여당에 희망을 줬다. 다만 1차 투표에서 RN이 다수 지역구에서 1위를 차지하더라도 바로 과반에 성공하기는 쉽지 않은 구도여서, 2차 투표에서 좌파와 중도우파가 연합해 ‘반(反)극우 전선’을 꾸리면 충분히 승산이 있다는 전망도 나온. 프랑스여론연구소(IFOP) 실시 여론조사에서도 RN 36%, 좌파 연합 25%, 르네상스 18% 순이었다.
◇英 수낙 “7월 4일 선거” 깜짝 발표
다음 달 4일 총선을 앞둔 영국은 본격적인 ‘선거 모드’에 돌입했다. 지난달 22일 리시 수낙 총리가 “조기 총선을 치르겠다”고 깜짝 발표를 한 지 약 3주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집권 보수당과 이에 맞서는 제1야당 노동당은 준비했다는 듯이 선거 공약을 쏟아내고 있다.
노동당 지지율은 44%로 지지율이 역대 최저인 보수당(23%)의 약 2배 수준을 기록 중이다. 훨씬 유리한 고지를 점령하고 있다. 지난 14년간 장기 집권해 온 보수당의 실정(失政)에 대한 ‘심판론’이 여론을 지배하는 상황이다. 영국의 낮은 성장률과 물가 급등, 의료 시스템 개혁 실패, 이민자 급증 등의 사회문제에 보수당이 오락가락하는 행보를 보이며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다는 평가가 많다. 무리한 브렉시트(2020년 영국의 EU 탈퇴)도 타격을 줬다. 영국 국민의 57%가 ‘(보수당이 주도한) 브렉시트는 잘못된 선택’이라는 의견을 갖고 있다.
지난달 2일 지방선거에서 보수당은 직선 광역 단체장 11석 중 한 석만 얻어 열 곳에서 승리한 노동당에 참패했다. 불리한 구도를 뒤집고자 수낙 총리가 원래 10~11월쯤으로 예상되던 총선을 훨씬 앞당기는 ‘조기 총선’ 카드를 꺼내 들었지만 돌아선 민심은 돌아오지 않고 있다.
다급해진 보수당은 의무 복무제 부활, 감세 등의 공약을 쏟아내고 있다. 호국(護國)과 ‘작은 정부’라는 전형적 보수의 가치를 선호하는 정통 지지층에 호소하겠다는 전략이다. 수낙 총리는 11일 ‘보수당 총선 정책 공약 발표’ 행사를 열어 재집권 시 2030년까지 연간 170억파운드(약 30조원)로 감세 규모를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파격적 공약에도 보수당은 이미 10년 넘는 집권 기간에 오락가락하는 정책으로 민심을 잃어 지지율 반등이 어렵다는 분석이 나온다. ‘집토끼’인 강성 보수 지지층은 놓쳤고 ‘산토끼’인 중도층은 더 멀리 도망갔다는 것이다. 이코노미스트는 “(보수당은) 지난 몇 년간 엄격한 재정 규율을 주장하다가 무분별한 감세 정책을 내놓았고, 스스로 ‘탄소 제로’를 위한 법안을 만들더니 이젠 친환경주의자들을 공격하는 등 모순적 행보를 보여 왔다. 새 정책에 대한 신뢰도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전했다. 극우 포퓰리즘 성향 정치인 나이절 패라지가 이끄는 영국개혁당이 지지율 10%를 넘어서며 보수층의 표를 깎아 먹는 것도 악재다.
지지율이 높아지며 유력한 차기 총리로 거론되는 노동당의 키어 스타머 대표는 과격한 좌파 성향 정책 대신 ‘국가 정상화’라는, 중도에 가까운 상식적 공약을 내세우며 유동층(流動層) 포섭 노선을 취하고 있다. 증세는 하겠지만 물가 안정을 위해 공공 지출 규정을 엄격히 지키고, 국경 안보본부 신설로 불법 이민을 막겠다고 밝혔다. ‘돈 뿌리기’라고 비난받는 과도한 복지, 이주민에게 지나치게 관대한 정책은 멀리해 실용적이고 실력 있는 진보당 이미지를 구축하려고 노력하는 모습이다.
지난 4일 펼쳐진 수낙 총리와 스타머 대표의 1차 TV 토론은 이 같은 구도를 명확히 보여줬다는 평가를 받는다. 스타머 대표가 ‘정권 심판론’을 부각했지만, 수낙 총리는 노동당의 ‘증세 논란’을 집요하게 파고들었다. 수낙 총리는 “세금 인상은 노동당의 DNA에 있는 것이어서, 여러분의 일·자동차·연금 등 모든 것에 세금을 부과할 것”이라고 공격했다. 스타머 대표는 이에 “보수당에 5년을 더 주면 방화범에게 성냥을 되돌려주는 꼴”이라고 받아쳤다.
◇노동당, 보수당 지지율의 2배… 극우정당도 뜬다
리시 수낙 총리가 조기 총선 승부수를 던졌지만, 보수당은 각종 여론조사에서 노동당과의 큰 격차를 좁히지 못하고 있다. BBC 여론조사 종합에 따르면 11일 기준 노동당이 약 44% 지지율로 보수당(23%)에 더블 스코어로 앞섰다. 극우 정당 영국개혁당(14%)·중도 자유민주당(10%)·녹색당(6%)·스코틀랜드국민당(3%) 순이었다. 우파에서 좌파로 정권 교체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지만, 극우 정치 세력도 힘을 키우는 모습이다.
나이절 패라지가 이끄는 영국개혁당은 만년 한 자릿수 지지율을 끌어올려 지난해 말 자유민주당을 추월한 뒤 보수당마저 위협하고 있다. 영국개혁당이 보수당에 실망한 보수층의 표심을 파고든 결과라는 분석이 나온다. 더타임스 여론조사에서 2019년 총선에서 보수당을 찍은 유권자 44%가 이민 문제에서 패라지를 가장 신뢰한다고 응답했다 수낙은 21%에 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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