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은형의 느낌의 세계] 성당 음악회에서 마주친 ‘기적’
50명이 오면 어쩌나 했다고 했다. 음악회를 주최한 르 보야즈 보칼레 앙상블 지휘자의 말이었다. 음악회에 가던 우리의 우려이기도 했다. 바흐와 헨델을 듣자고 토요일 오후에 경기도 외곽의 성당에 몇 명이나 올지 말이다. 그런데… 4km를 남겨두고부터 심상치 않았다. 성당으로 가는 길이 꽉 막혀 있었다. 2km 전에는 더 문제였다. 좌회전 신호는 네 대의 차가 지나가면 바뀌었다. 어마어마하게 넓은 주차장이 다 차서 차들은 언덕으로 올라가야 했다. 차에 사이드브레이크를 채우고 간신히 내려올 수 있었다. 성당으로 향하는 구불구불 이어지는 행렬을 보니 대중교통으로 온 사람도 많은 듯했다. 나는 이런 대규모 행렬을 본 적이 없었다.
공연은 대성황이었다. 헨델로 시작해 바흐와 비발디를 거쳐 헨델로 끝났는데 관객들의 박수가 끊이지 않았다. 나처럼 그들의 마음에도 연주하는 이들의 마음이 전해졌던 거다. 지휘자는 여기 와주신 분들 덕분이라고 했다. 건축과 미술과 사진과 음악을 사랑하시는 분들임을 안다고도 했다. 서울에서 오신 분도 있고, 충청도에서, 경상도에서 오신 분도 있다고 했다. 라이프치히 성 토마스 성당에서 바흐가, 런던 웨스트민스터 사원에서 헨델이, 베네치아 산마르코 성당에서 비발디가 연주되는 것처럼 이곳 남양성모성지에서도 이렇게 계속 종교음악이 울려 퍼져야 한다고 했다.
박수는 계속되었다. 열렬한 박수를 들으며 우레 같은 박수 소리가 이것이구나 싶었다. 내내 종교음악을 들으셨으니 앙코르 곡으로는 갑남을녀가 나오는 세속 음악을 준비했다는 말에 객석의 웃음이 터졌다. 나 역시 웃었다. 뜨끔해서 더 그랬다. 나는 세속 음악이 좋다고, 경건한 바흐는 지겹다고 친구에게 말했던 게 떠올랐던 것이다. 발랄한 선율에 맞추어 연주자들이 오페레타처럼 연기까지 하는 걸 보며 역시 종교는 세속 없이 존재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발랄한 세속 음악이 끝나고 또 한 곡의 앙코르. 다시 장중한 종교음악이 연주되고 음악회는 끝이 났다. 한 시간 예정이라고 했는데 거의 두 시간이 지나 있었다.
이 모든 게 기적이라고 지휘자는 말했다. 기적이라니. 나는 이런 말을 일상에서 들어본 적이 없었다. 기적에 대해 생각하며 마리오 보타가 건축해 유명해진 성당 주위를 계속해서 배회했다. 언덕에 일렬로 주차된 차의 정황을 살필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차를 두고 멀리 갈 수 없어서 본당 근처를 여러 번 오갔다. 계단을 오르락내리락하고 성당의 후면부에서 전면부로 크게 돌았다. 그 덕에 성당의 특이한 점들이 보였다. 계단은 휘어져 있었고, 대칭으로 된 종탑 사이에 매달린 여섯 개의 종은 아래로 내려갈수록 커졌다. 그렇게 오가면서 성당의 신부가 신도들 사이에서 걷는 걸 보기도 했다.
이곳이 궁금해져 산 신부의 책을 펴자마자 기적이라는 말이 있었다. 이름 없는 이들의 순교지로 잘 알려지지 않았던 남양성지가 신자와 예비 신자, 종교가 없는 익명의 수많은 사람들이 찾아오는 곳으로 바뀐 것은 기적이라며. 얼마 전, 아는 분이 남양성모성지에 기도를 하러 갔다 온 것이 떠올랐다. 병을 앓고 계신 그분의 기도는 아마 병을 낫게 해달라는 것일 테다. 기적에 대해 말했을지도 모른다. 그분이 남양성모성지에 갔던 날은 내가 갔던 날보다 인파가 적었겠지만 그곳으로 향하던 사람의 마음은 비슷했을 것이다. 나처럼 종교에 무심한 자와 냉담자와 신실한 신도가 있었을 것이고 또 무언가를 열렬히 비는 사람이 있었을 것이다. 대체 무엇이 사람들을 여기로 향하게 했을까?
“사람들에게는 힘들고 지칠 때 5분만 상상해도 기분이 좋아지고 마음이 편해지는 장소가 있다.(…) 나는 남양성모성지를 순례하는 사람들에게 남양이 그런 곳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위로가 필요한 사람에게는 위로가 되어 주고, 휴식이 필요한 사람은 쉬어갈 수 있는 장소…”라며 성당을 아름다운 공간으로 만들고자 함은 이곳에 오게 될 모든 사람을 존중하고 사랑하는 하나의 방식이라고 이상각 신부는 썼다. 33년이라고 했다. 성지 개발에 뜻을 세우고, 주변 땅을 조금씩 사들이고, 돈을 모으고, 마리오 보타를 만나고, 건축안이 변경되고, 지금에 이르기까지. 땅 한 평 값으로 10만 원을 보내온 신도들이 있어 그렇게 되었다는 신부는 책의 제목을 ‘이루어지소서’라고 붙였다. 믿음과 기적이라는 생소한 단어에 대해 생각한 날이었다. 나같이 냉담한 자에게도 빛을 드리우려고 종교와 예술이 있는 거라고 생각한 날이기도 했다. 성당에 돌아다니는 빛을 오래 본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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