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석희의 영화 같은 하루] [175] Is that so terrible to be useful?
1950년 만주, 일사불란하게 기차에서 내린 소위 중국인 ‘전범’들은 공산당 군인들의 지시에 따라 기차역 대합실로 들어간다. “대화 중 적발되면 엄벌에 처할 것이다(Those caught talking will be severely punished).” 군인들은 전범들이 소통하지 못하도록 엄포를 놓는다. 그때 한 사람이 누군가를 보고 무릎을 꿇으며 외친다. “황상을 뵈옵니다(Your Majesty).” 그러자 옆 사람이 서둘러 일으키며 화를 낸다. “실성했어요? 이러다 다 죽어요(Are you mad? They could kill us all).” 중국 최후의 황제 푸이의 일생을 그린 영화 ‘마지막 황제(The Last Emperor∙1988∙사진)’는 이렇게 시작한다.
세 살에 황제로 즉위했으나 평생 꼭두각시의 삶을 살았던 푸이는 어린 시절의 대부분을 자금성에 갇혀 지낸다. 푸이는 답답한 마음에 자기의 개인 교사인 레지널드 존스턴에게 묻는다. “태부, 내가 아직도 황제요?(High Tutor, am I still the emperor?)” 존스턴이 답한다. “자금성 안에선 황제시지만 밖에선 아니십니다.(You will always be the emperor inside the Forbidden City, but not outside).” 어린 푸이는 존스턴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지만 자금성 밖은 총통이 다스리는 공화국이다.
이렇게 여러 권력의 꼭두각시로 평생을 살던 푸이는 결국 전범으로 푸순 전범수용소에 갇히고 만다. 수용소에 갇혀 자기 죄를 써내라는 요구에 결국 포기한 듯 모든 죄를 자백하며 소장에게 울부짖는 푸이. “왜 날 가만두지 않습니까?(Why can you not leave me alone?)” 내가 당신에게 유용하기에 이러는 거냐며 울먹인다. 소장이 말한다. “유용해지는 게 그리도 끔찍한가?(Is that so terrible to be useful?)” 평생 무력감에 시달리며 유용해지고픈 욕망을 좇았던 푸이는 비로소 유용한 인물이 됐지만 그 씁쓸함에 고개를 떨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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