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순덕 칼럼]제왕적 당대표 이재명의 ‘여의도 독재’
DJ때 한나라당, 총리·장관 해임-입법독주
‘다수의 횡포를 부린 오만한 야당’ 심판 받아
이재명은 대선 패배 이회창의 길로 갈 건가
더불어민주당이 잘해서 총선에서 압승했다고 믿는다면 착각이다. 민주당 싱크탱크인 민주연구원도 인정한 바다.
지난달 발표한 정책브리핑 ‘22대 총선 평가와 과제’에 따르면 총선 승패를 가른 핵심 요인으로 첫손에 꼽힌 것이 ‘윤석열 정부의 무능, 무책임, 무도한 불통 국정운영에 대한 국민의 심판 의지’였다. 이재명 대표가 앞장섰던 ‘야당의 선거 리더십과 메시지 전략의 완승’은 그다음이다.
특히 “분노한 유권자는 ‘분노를 해소할 대안을 가진 정당’ 아닌 ‘분노를 표시할 도구가 되는 정당’에 투표하는 경향이 있다”는 한상익 수석연구원의 분석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즉, 민주당은 집권당의 대안으로 국민의 지지를 받은 게 아니라 현 정부 심판의 도구로 선택됐을 뿐이라는 지적이다.
다 지난 총선 분석을 굳이 되풀이하는 이유는 이 대표가 거대한 착각에 빠져 있는 듯해서다. 자신의 리더십 덕분에 민주당이 압승했다고 믿는 게 분명하다. 당 대표 연임이 없는 민주당 관례를 깨고 연임의 군불을 때더니 기어이 자신만을 위한 당헌당규 개정에 철판 깔고 나섰다.
민주당 최고위에 이어 당무위가 12일 ‘부정부패 혐의로 기소된 당직자 직무정지 규정’ 삭제를 의결했다. 검찰이 같은 날 쌍방울그룹 대북송금 의혹과 관련해 이재명을 제3자 뇌물 등 혐의로 기소한 데 딱 맞춘 맞춤형이다. 이 사건 1심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이재명 경기도지사 방북 비용 지급이 아니라면 김성태 전 쌍방울 회장이 위험을 감수하고 300만 달러라는 거액을 북한에 지급할 아무런 이유가 없다”고 밝힌 바 있다.
물론 이재명은 혐의를 부인한다. 그렇게 당당하면 대표직 내려놓고 재판받으라고 권하고 싶다. 심지어 이 조항은 2015년 문재인 당대표 시절 국민 눈높이에 따라 부패(혐의) 정치인이 당 요직 근처에도 못 가게 만든 개혁 조치였다. 민주당은 이걸 삭제하고도 모자라 이재명의 대선 출마 꽃길을 위해 대선 1년 전 당 대표 사퇴 규정도 바꿔버렸다. 이재명이 당 대표 연임까지 하면서 지방선거 공천까지 제 손으로 할 수 있게 만든 것이다. 그러고도 박찬대 원내대표에 따르면 ‘너무나 착한’ 이재명은 국회의장단과 18개 상임위원회 위원장 선출도 일방적으로 몰아붙이고는 자신을 기소한 검사 탄핵, 특검까지 독려하는 모양새다.
지금 이재명은 급한 것이다. 2022년 대선 직후 한국갤럽 여론조사 결과 이재명 후보에게 투표하지 않은 이유로 신뢰성 부족·거짓말(19%), 도덕성 부족(11%)이 1, 2위였다. 그런데도 민주당은 국가로 치면 개헌이라 할 수 있는 당헌당규까지 개정해선 그 이재명을 내세워 실패의 길로 또다시 가는 형국이다.
다수 의석 믿고 설치는 ‘집권야당’이란 말은 전에도 있었다. 김대중(DJ) 대통령 시절 그러니까 지금의 국힘이 한나라당 때다. 국무총리 장관 해임안·탄핵 공세에 양곡법, 간호법 등 입법 독주도 다반사였다. 2000년 총선에서 승리한 데 이어 2002년 재보선도 압승해 헌정사상 처음 야당이 단독 과반을 차지하자 정보와 권력이 이회창 총재에게 몰렸다. 제왕적 총재를 넘어 ‘밤의 대통령’ 소리까지 들었을 정도다. 대선이 다가오자 ‘이회창 대세론’이 자리 잡은 것은 물론이다.
그러나 우리 국민이 가장 싫어하는 것이 권력자의 오만이다. 제왕적 대통령도 그렇지만 제왕적 총재, 당 대표 역시 마찬가지다. 2002년 장상 총리 후보자의 임명동의안이 부결되자 “분명 여당의 패배인데도 한나라당은 다수의 횡포를 부린 오만한 야당으로 비쳐졌다”고 이회창은 2017년 회고록에 적었다. “정치에서 강자는 오만하게 비쳐지고 약자는 동정받게 마련이지만 약자가 정면승부로 역경을 헤치고 일어설 때 국민은 갈채를 보낸다”고도 썼다. 그때 그 약자가 노무현 대통령이다. 이회창은 1997년에 이어 2002년 대선에서도 패했다. 그리고 최근 정연욱 국민의힘 의원을 만난 이회창은 이재명의 민주당이 브레이크 없는 벤츠처럼 입법 폭주할 가능성을 우려했다.
지금은 ‘여의도 대통령’ 이재명이 하늘을 쓰고 도리질하지만 국민의 인내심은 길지도 깊지도 않다. DJ가 어렵게 키우고 지켜온 민주주의적 관례를, 심지어 제3자 뇌물 혐의를 받는 이재명이 깬 것을 국민이 언제까지 인내할지 알 수 없다. 이재명은 3년 뒤 대선을 내다보지만 국민은 매번 선거 때마다 가장 오만한 권력자를 심판하는 추세다. 차라리 이재명이 겸허하게 당 대표직을 내려놓고 순결무구함을 입증받는다면, 민주당이 이재명 1인 아닌 국민을 위해 뛰는 모습을 보여준다면, 오히려 이재명과 민주당을 새롭게 봐줄 수 있을 것 같다.
김순덕 칼럼니스트 yur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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