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포럼] ‘이재명 민주당’의 퇴행
‘사당화’ 논란 증폭·당내 반발 확산
‘개딸’에 휘둘리면 중도 표심 이반
“설탕만 먹다가 이빨 다 썩을 수도”
한국 정치에서 ‘당권·대권 분리’는 정당 개혁의 중대한 진전이다. 정당을 쥐락펴락하던 제왕적 총재의 폐해를 극복하려는 대표적인 조치가 ‘당권·대권 분리’다.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 계열 정당 모두 2000년대 초반부터 이 규정을 도입하기 시작했다. 2002년 1월, 16대 대선을 준비 중이던 이회창 한나라당 총재는 대선 이후 당권과 대권을 분리하겠다고 선언했다. 한나라당은 그해 3월 대선 후보의 당대표 겸직을 금지했다.
민주당의 퇴행적 조치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부정부패 연루자에 대한 직무 정지 규정(당헌 80조)도 없앴다. 민주당이 이 대표 1인을 위한 사당화의 길을 걸은 지는 이미 오래됐다. 2022년에는 당헌을 개정해 이 대표가 기소되더라도 대표직을 유지할 수 있는 안전장치를 마련했다. 이 대표는 당시 당헌을 개정한 덕에 기소 이후에도 당대표직을 유지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번에는 이 대표의 대선 가도에 생길 수 있는 시비를 원천 차단하기 위해 스스로 도덕적 기준을 더 낮춰버렸다.
이 대표가 2021년 11월20일 “‘민주당의 이재명’이 아니라 ‘이재명의 민주당’을 만들겠다”고 할 때부터 께름칙하긴 했다. 그래도 이 대표가 설마 4·10 총선 공천에서 비명(비이재명)계 의원만 골라 배제하고 당헌·당규까지 입맛에 맞게 뜯어고칠 줄은 몰랐다. 당헌·당규는 당연히 시대 변화를 반영해야 하지만, 당의 쇄신과 국민 지지를 얻기 위한 노력이어야 한다. 특정인의 입지 강화를 위한 도구가 되어서는 안 된다.
민주당은 국회의장 후보·원내대표 경선에 권리당원 표심 20%를 반영하는 개정안도 통과시켰다. 국회의장은 특정 정당·정파가 아닌 국회를 대표하는 입법부 수장이다. 국회의장 후보 경선에 특정 정당의 당원이 참여하면 국회의장은 독립적인 위치에서 여야를 아우르는 데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다. 국회의장 선거까지 당원을 참여시켜 대의민주주의 정신을 거슬러선 곤란하다.
민주당이 정권 탈환을 꿈꾼다면 ‘개딸(개혁의 딸들)’로 대표되는 강경 지지층 입맛에 맞는 행보를 고집해서는 안 된다. 민주당에 지금 필요한 것은 중도 확장이다. 국민 전체를 바라보고 균형 잡힌 정책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이 대표가 특정 진영의 대표라는 이미지가 굳어지면 중도층 지지를 얻기 힘들게 된다. 소수 여당으로 전락해 무기력증에 빠진 국민의힘과 최근 정당 지지율이 비슷하다는 사실은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당헌·당규를 손대는 것에 대해 시중 여론이 싸늘하고, 당내 우려와 반발도 적지 않다. 우상호 전 의원은 “이 대표 연임부터 말리고 싶다”고 했다. 김동연 경기도지사는 당헌·당규 개정을 “소탐대실”이라고 직격했다. 원조 친명(친이재명)계 핵심으로 꼽히는 김영진 의원마저 비판의 목소리를 냈다. 김 의원은 “이 대표만을 위해서 민주당이 존재하는 건 아니다”라고 일갈했다. 김 의원의 쓴소리에 이 대표는 귀를 기울여야 한다. “설탕만 먹다가 이빨이 다 썩을 수 있다.”
박창억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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