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철호의플랫폼정부] 설익은 정책, 뭐가 그리 조급할까

2024. 6. 12. 2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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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령 운전자를 대상으로 '조건부 운전면허' 발급, 국가통합인증마크(KC) 없는 해외 일부 품목의 직접구매 금지 등 최근 연달아 정부가 발표한 정책들이 시작도 전에 비판받고 며칠 만에 철회되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정부의 정책 과정에 무언가 문제가 있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정부가 고위당정회의를 정례화하고 정책단계 초기부터 국민의 시각에서 살펴보자는 것 등을 해결 방안으로 제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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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 발표·철회 반복, 국민 혼란·정부 불신 불러
기획·설계·실행 전반적인 과정서 혁신 서둘러야
고령 운전자를 대상으로 ‘조건부 운전면허’ 발급, 국가통합인증마크(KC) 없는 해외 일부 품목의 직접구매 금지 등 최근 연달아 정부가 발표한 정책들이 시작도 전에 비판받고 며칠 만에 철회되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정부의 정책 과정에 무언가 문제가 있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앞에서 발표한 정책을 황급히 거둬들이는 것을 보고서도 또다시 다른 정책을 조급하게 발표하는 것은 무언가 결과를 빨리 만들고 싶은 심리가 작용했을 거다. 애자일(agile) 정부를 구축하겠다는 대통령실의 의욕인지, 윗사람의 질책 때문인지, 담당자의 개인적 욕심이나 열정 때문인지 아니면 진정으로 국민의 고통을 덜어주려는 충정에서 비롯된 것인지 모른다. 무슨 이유든지 설익은 정책 제시로 국민의 혼란은 더 커지고 결과적으로 정부에 대한 불신을 증폭시킨다면 그런 행위를 즉시 멈추고 문제를 파악한 후 원인을 밝혀 해결해야 한다.

정부가 고위당정회의를 정례화하고 정책단계 초기부터 국민의 시각에서 살펴보자는 것 등을 해결 방안으로 제시하였다.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정부가 제시한 방안이 원인을 제대로 짚은 후 만들어진 해결 방안인지 선뜻 믿기가 망설여진다. 무조건 국민의 시각에서 접근하면 문제가 없을 것이라는 안이한 생각이 더 큰 문제로 보인다. 설령 시각 조정이 되더라도 정책 시스템과 담당자의 역량이나 자세가 그대로라면 그 효과는 일시적이며 보여주기식으로 그칠 가능성이 높다.

정책 기획 때부터 의무적으로 고려하는 국민 시각은 말 그대로 시각에 불과하다. 정책을 담당하는 공무원 스스로가 정책 설계 단계부터 자동으로 국민의 입장에서 정책문제를 바라보고 다양한 대안을 개발하며 현장에서 실현 가능한 최종안을 선택하는 일련의 과정이 몸속에 스며들어 있어야 한다. 기계적인 탁상행정에 물들어 있는 공무원들에게 기대하기 힘든 부분이다.

대통령실도 ‘레드팀(Red Team)’ 기능을 강화할 모양새다. 일리는 있으나 레드팀을 모든 정책 사안에 적용할 필요는 없다. 케네디 대통령 때 미국의 쿠바 침공이 실패한 후 만들어진 레드팀은 말 그대로 중대한 국가 사안을 논의할 때 그 빛이 난다. 오히려 일상적인 정책 과정에서 짚어 봐야 할 사항을 체계화하는 것이 더 효과가 있을 것이다. 과거 정부에서 활용했던 ‘정책품질관리제도’의 체크리스트도 한 예가 될 수 있다.

무엇보다도 모든 사회문제를 정부가 주도하려는 생각부터 고쳐야 한다. 정부가 앞장서서 국가 발전을 이끌던 이른바 발전국가 시대의 정부 역할을 개인주의와 공동체주의가 얽혀 있는 디지털 시대에서도 적용하려고 하니 사사건건 돌아가지 않는 것이다. 국민 개개인의 의식 수준과 가치관이 변했다는 점을 진중하게 살펴서 정부가 굳이 나서지 않고 개인의 선택과 판단 그리고 이에 따른 책임을 감당하도록 하는 새로운 사회적 문제 해결 방식을 챙겨보길 바란다.

정책은 대응 시간에 따라 성공 여부가 달라진다. 뇌졸중 환자에겐 시간이 생명이듯이 신속히 대응하고 처리해야 할 정책 현안은 그렇게 해야 한다.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과 같은 국가적 위기 상황이나 자연재해가 발생한 경우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정책문제는 반드시 고려해야 할 절차를 무시할 정도로 시급성을 요하지는 않는다. 주어진 가능한 시간 틀 내에서 신속하게 진행은 하되 짚어야 할 부분은 꼼꼼히 확인하는 자세가 정부 문화로 정착하고 공무원들의 일하는 자세로 내면화되어야 한다. 디지털 기술로 옷만 입혔다고 정부가 바뀌는 것이 아니다. 관료제 문화를 혁파하는 정부혁신을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이유이다.

오철호 숭실대 교수·행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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