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교육 도서가 음란 도서? 경기교육청, 시대에 역행"
시민단체들이 성교육 도서를 '음란 도서'로 보고 일선 학교에 공문을 내려 폐기하도록 유도한 경기도교육청을 향해 "시대에 역행하는 반교육적 행위"라며 규탄했다.
차별금지법제정연대와 전국교직원노동조합 경기지부를 비롯한 인권단체와 교육단체는 12일 경기도 수원시에 위치한 경기도교육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교육 현장에서 평등과 자유를 제거하려는 시도는 절대 용납될 수 없다"며 시정을 요구했다.
경기지역 초·중·고등학교에서 지난해 3월부터 1년간 성교육 도서 총 2528권이 폐기됐다. 이는 지난해 11월 경기도교육청이 각 학교에 "부적절한 논란 내용이 포함된 도서에 대해 협의해 조치하라"는 두 차례의 공문을 발송하고, 2024년 2월에도 '(폐기)처리된 도서 집계 목록'을 제출하라는 공문을 보낸 결과다.
이날 기자회견에 참여한 단체들은 "경기도교육청은 성교육 도서에 대한 처리 결과에 '제적 및 폐기'와 '열람 제한' 단 두 가지만을 기재하도록 해놓고도, 성교육 도서에 대한 폐기를 압박한 것이 아니며 각 학교에서 자체 판단한 내용이라고 발뺌하고 있다"며 "부끄러움은 왜 시민들만의 몫이어야 하는가를 묻지 않을 수 없다"고 지적했다.
단체들은 "폐기된 성교육 도서의 규모에 경기도민뿐만 아니라 대다수 시민들은 황당함을 감출 길이 없다"며 "성에 대한 학생들의 구체적인 인식과 실태에 기반해서 성교육을 강화하고 확대해도 모자란 시기에 성교육 도서를 폐기하도록 종용한 경기도교육청의 행위는 말 그대로 '시대에 역행하는 반교육적 행위'"라고 지적했다.
이어 "더 참담한 것은 지금의 사태가 성교육 도서를 '유해 도서' 혹은 '음란 도서'라고 낙인찍는 일부 보수단체의 극단적인 민원에 경기도교육청이 적극 동조한 결과라는 점"이라며 "성에 대한 불합리한 편견, 소수자에 대한 차별과 혐오를 불식시키기 위해 노력해야 할 교육청은 오히려 그러한 편견과 혐오를 조장하고 교육현장에서 보장되어야 할 주체들의 권리를 훼손하고 있는 것"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이들은 "성교육 도서에 대한 경기도교육청의 폐기 압박은 학생의 교육받을 권리를 심각하게 침해한다"며 "헌법과 교육기본법, 경기도 학생인권조례에 따라 교육 현장에서 학생은 누구나 차별과 편견 없이 교육을 받을 수 있어야 하며, 이는 교육의 기회를 균등하게 보장받고 차별 없이 교육에 참여할 권리뿐만 아니라 교육 내용에 있어서도 어떠한 차별과 편견이 담기지 않는 내용을 교육받을 권리를 포함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학교 도서관의 성교육 도서는 정규 교육과정 외에도 학생들이 자신의 몸과 주체성에 대한 긍정과 인정, 타인과 평등하고 안전하게 관계 맺는 방식,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차별과 혐오가 아니라 다름을 존중하고 공존할 수 있는 다양성과 포용의 가치 등을 학습하는 중요한 통로"라고 설명했다.
이어 "경기도교육청의 행위는 학생의 권리와 동시에 교사 및 사서교사의 노동권 또한 심각하게 저해한다"며 "집요하고 부당한 민원과 압박으로부터 교사를 보호하고, 교사가 학교 도서관 장서에 전문성을 가지고 학생들의 수준과 조건에 따라 필요한 배움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지원하는 역할에 힘쓸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바로 교육청의 책임이지만 경기도 교육청은 차별과 편견이 없도록 다양성을 확보하는 방안을 찾기보다 손쉬운 검열을 택함으로써 교사가 안전하고 존엄하게 노동할 권리 또한 침해했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경기도교육청이 차별적이고 부당한 민원을 이유로 학교 도서관에서 정당한 이유 없이 성교육 도서가 폐기 및 열람 제한되지 않도록 지침을 마련하고, 학생 및 교사의 권리를 보장하는 등 필요한 모든 조치를 다 할 것을 강력하게 요구한다"며 "지금이라도 부끄러움의 몫을 깨닫고 시정에 나서는 것이 경기도교육청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책임"이라고 촉구했다.
단체들은 아울러 572명의 공동진정인들과 함께 국가인권위원회에 차별 시정을 요구하는 진정을 제기하기로 했다.
[서어리 기자(naeori@press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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