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시 탄 보이스피싱범, 32년 근무 ‘전직 경찰’ 기사가 잡았다
지난 10일 오후 3시 30분. 대구에서 택시를 모는 김상오(62)씨는 경북 예천으로 가자는 장거리 손님을 태웠다. 승객은 30대 남성 A씨. 그는 택시에 탑승한 뒤 줄곧 휴대전화를 쳐다보면서 안절부절못하는 모습이었다. 출발한 지 30분이 지나자 A씨는 돌연 행선지를 바꿨다.
“기사님, 예천 말고 안동에 ○○교회로 가 주세요.” A씨는 휴대전화에 떠 있는 메시지를 그대로 읽는 듯 이런 주문을 했다. A씨는 그 뒤에도 좌불안석인 양 가만히 앉아 있지 못하고 허둥댔다.
룸미러로 이런 모습을 지켜보던 기사 김상오씨는 ○○교회에 도착한 뒤에도 차를 이동시키지 않고 A씨 모습을 계속 살폈다. 손님이었던 A씨는 휴대전화로 ○○교회 전경을 찍더니 어디론가 사진을 전송하는 모습이었다.
김상오씨는 직감했다. A씨가 ‘보이스피싱 현금 수거책’일 것으로 판단해 곧바로 112에 신고했다. “택시기사인데 대구에서 태워 온 손님이 보이스피싱 수거책 같다. 지켜보고 있을테니 빨리 출동해 달라.” 김상오씨는 경찰이 도착할 때까지 차분하게 승객 A씨 인상착의와 현장 상황을 112신고 접수요원에게 설명했다.
그 때 한 50대 남성이 ○○교회에 나타났다. 그는 큰 가죽가방에서 쇼핑백을 꺼내 A씨에게 전달했다. 이런 상황도 김상오씨는 실시간으로 경찰에 바로 알렸다. 쇼핑백을 건네받은 A씨가 교회를 떠나려는 찰나 출동한 경찰이 그를 붙잡았다. 쇼핑백 안에는 현금 5000만원이 들어 있었다. 돈을 전달한 사람은 보이스피싱 피해자였다.
현금 수거책 A씨를 검거하는 데 공을 세운 택시기사 김상오씨는 전직 경찰이다. 1990년도에 경찰에 입문해 2년 전 퇴직한 32년 차 베테랑이었다. 경북경찰청은 “신고뿐만 아니라 추격, 검거에 이르기까지 김상오씨의 종횡무진 맹활약이 눈에 띄는 사례”라고 했다. 경북경찰청장이 김상오씨에게 직접 감사장과 신고보상금을 전달했다.
김상오씨는 “비록 범인을 직접 검거한 건 아니지만 현직에 있는 후배들과 힘을 합해 범죄로부터 누군가의 소중한 재산을 지키는데 기여할 수 있어 오랜만에 가슴 뛰는 순간이었다”라며 “몸은 퇴직했지만 마음은 아직 청년 경찰 인가 보다”라고 소감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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