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과 오늘]평범한 악인
묵직한 파장을 일으키는 영화가 있다. <존 오브 인터레스트(The Zone of Interest)>. 유대계 영국인 조너선 글레이저가 감독·각본을 맡았다. 10여년 전 한국에도 출판된 <런던 필즈(London Fields)>의 저자 마틴 에이미스의 동명 소설이 원작이다.
영화의 주인공 루돌프 회스는 나치 장교다. 아내 헤트비히를 포함한 가족들과 함께 아우슈비츠 수용소 옆 사택에 거주한다. 이들의 집에는 아름답게 꾸민 정원과 온실, 수영장까지 딸려 있다. 그들 스스로 ‘낙원’이라 부르는 그곳에서 지인들과 평화롭게 커피를 마시며 담소를 나누거나 파티를 연다.
사택 맞은편 수용소는 죽음의 공간이다. 유대인을 실어 나르는 기차가 멈추고 나면 고통스러운 비명이 지축을 흔들고 검은 재가 하늘을 덮는다. 형용할 수 없는 공포와 끔찍한 살육이 이어지는 ‘지옥’이다.
낙원과 지옥을 구분하는 건 담장이다. 한쪽은 경험적·주관적 자기 인식의 세계에 매몰된 채 살아가는 루돌프와 식솔들의 영역이다. 이들은 자신들의 낙원을 유지하기 위해 담장 너머 다른 한쪽에서 벌어지는 참상을 철저히 회피한다. 죄책감도 없다. 포로들로부터 몰수한 옷과 보석 등을 착복하고 대량학살을 계획하면서도 이탈리아 여행을 회상하며 낄낄거린다. 다른 자들도 마찬가지다. 타인의 고통에 무감각, 무관심하다. 새로운 소각장 설계차 루돌프 회스의 집을 방문한 사람들은 희생자들의 시신을 적재물이라 부를 만큼 생명, 인권에 관한 윤리적 관념 따윈 없다. 안락한 생활 뒤 가려진 수용소의 실상은 그저 ‘남의 일’일 뿐이다. 실존의 배타성이 일상화되고 당연하게 행하는 것들이 ‘악’이 될 수 있음을 외면한 채 그것이 정상인 양 생활한다. ‘비인간화’의 익숙함이다.
영화는 아우슈비츠에서 자행된 나치의 유대인 학살(홀로코스트)을 다룬다. 하지만 기존 영화와는 달리 명시적 폭력은 보여주지 않는다. 대신 날카로운 절규와 고함, 총소리 등이 영화 내내 관람자들의 귀를 후빈다. 2022년 파리 폭동의 비명을 비롯해 1년간 전 세계에서 수집한 고통의 소리를 활용했다고 한다.
<존 오브 인터레스트>는 미술의 관점에서도 돋보인다. 영화 시작 전후의 암전과 괴이한 사운드는 보이지 않는 시각화이자 상상력을 자극하는 현대미술의 한 방식과 같다. 루돌프의 시가 담배 연기와 수용소의 굴뚝 연기, 풀숲에 나뒹구는 사과와 폴란드 소녀가 노역장에 몰래 숨겨놓는 사과 등은 침묵하는 악과 행동하는 선을 드러내는 미적 장치다. 특히 검정과 더불어 영화 중간 등장하는 하얗고 붉은 색은 영화 속 루돌프의 아들이 차고 있는 ‘하켄크로이츠’를 떠오르게 하는 한편, 예술에서 느낄 수 있는 감정적 동요를 불러오는 조형요소다.
동요 끝에는 성찰을 토대로 한 질문이 놓여 있다. 여전히 지구촌 곳곳에서 비극이 벌어지고 있음에도 자신만의 높은 담장을 쌓으며 악의 동조자로 지내는 것은 아닌지, 헤트비히가 그러했듯 우리 또한 울창하게 자라는 포도나무를 심어 무언가를 분류하거나 보지 않으려는 평범한 악인은 아닌지 등이다.
질문은 특정 장르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모든 예술에 유효하다. 미술 역시 사회 전반의 문제와 대면하고 현실의 삶에 참여를 할 때 비로소 가치를 지닌다. 감독이 이 영화를 통해 “우리가 (악행에) 어떻게 저항할 수 있을까”를 묻듯, 미술 또한 동시대 숱한 억압에 저항해야 옳다. 그것이 미술의 역할이자 존재의 이유다. 누군가의 취향 만족을 위해 영혼을 파는 것이 아니라.
홍경한 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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