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표의 과학 한 귀퉁이]굶어야 커지는 것
살이 찌는 것과 늙는 일 사이에 공통점이 있을까? 있다. 지난 5월 나고야 의과대학 나카무라 박사 연구팀은 나이가 들면서 시상하부 신경의 섬모 길이가 짧아지고 살이 찔 가능성이 커진다는 연구 결과를 ‘세포 대사’에 발표했다. 신경세포 표면에 곶처럼 튀어나온 섬모는 길이가 줄면 포만 신호가 와도 제대로 반응하지 못한다. 섬모가 짧아지면서 포만 신호 수용체가 정박할 자리가 줄어들기 때문이다. 실험에 따르면 위와 장에서 그만 먹으라는 신호를 보내도 이 수용체 단백질이 없는 쥐는 음식을 게걸스럽게 먹고 쉽게 심각한 비만에 이른다.
누구나 알듯이 몸에 필요한 양보다 자주 많이 먹으면 살이 찐다. 하지만 우리 몸은 쉽게 살이 찌지는 않는다. 먹는 양이 늘수록 기초대사율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미국의 죄수를 대상으로 매일 먹는 양을 2배로 늘린 실험에서 얻은 결과다. 기초대사량은 아무 일도 하지 않을 때조차 우리 몸이 기본적으로 쓰는 에너지양을 뜻한다. 심장을 움직이고 열을 내는 데 쓰이는 것이 그것이다. 그와 반대로 굶주리면 기초대사율이 크게 떨어져 심장박동수도 줄고 체온도 내려간다. 그래서 밤낮으로 맛난 음식을 상상한다.
기초대사율은 생각보다 높아서 현대인이 하루 소비하는 에너지양의 7할에 육박한다. 에너지 소비량 3분의 2 이상이 의식으로 조절되지 않는다는 뜻이다. 대신 눈 뒤 완두콩 크기의 시상하부가 신진대사와 식욕을 제어한다. 더 정확히 말하면 시상하부 신경세포의 소기관인 섬모가 굶주림과 대사 스위치를 켜고 끈다.
남는 영양소를 저장하는 지방세포는 6배까지 부피를 늘려가며 지방을 저장할 수 있다. 대단한 세포라 아니할 수 없다. 그러면서 렙틴(leptin)이라는 포만 신호를 뇌로 보낸다. 지방조직이 클수록 렙틴 분비량은 늘어난다. 그러면 뇌는 나가는 에너지를 늘리고 먹는 일을 그만두라고 지시한다. 그렇지만 가끔 이 렙틴 포만 신호가 말을 듣지 않을 때가 있다. 뇌가 기근에 시달렸던 과거를 기억해낼 때다. 이를테면 임신 중에 음식을 제대로 섭취하지 못했던 엄마를 둔 신생아가 자랐을 때가 그런 경우다.
아산병원 김민선 박사 연구팀은 포만 신호인 이 렙틴이 시상하부 신경세포의 섬모 형성을 돕는다는 취지의 논문을 썼다. 그러므로 문제는 섬모의 크기와 기능을 유지하는 렙틴의 기능이 망가졌을 때 불거진다. 빈번히 공장식 초가공식품이 식단에 들어오는 데다 특별히 기초대사율이 낮은 유전적 인자를 가진 사람들에게서 자주 볼 수 있듯 렙틴이 말을 듣지 않으면 우선 섬모 길이가 짧아진다. 그러면 렙틴 수용체가 들어설 여지가 덩달아 줄어들며 섭식 조절이 제대로 되지 않는다.
사실 섬모는 우리 감각을 책임지는 중요한 세포 소기관이다. 밝기와 색을 감지하고 소리를 듣거나 쓴맛을 느끼는 일은 모두 눈과 귀, 그리고 혀 세포 표면에 닻을 내린 섬모에서 벌어진다. 굶으면 감각 기능이 현저히 좋아진다고 하는데 바로 섬모가 길어지기 때문이다. 게다가 섬모는 우리 몸을 구성하는 거의 모든 세포에 존재한다. 지방 전구세포도 마찬가지다. 지방세포는 부피가 커지기도 하지만 숫자가 늘어나기도 한다. 지방산이 거침없이 세포 안으로 들어올 때 벌어지는 일이다. 형광단백질을 써서 수컷 생쥐 지방세포의 운명을 추적한 연구 결과를 보면 내장 지방세포는 비대해질 뿐만 아니라 숫자도 늘어나는 반면 허벅지에 분포하는 지방세포는 대부분 크기만 커진다.
이렇듯 지방이라고 해서 다 같지는 않다. 어디에서 지방세포가 커지는지, 아니면 숫자가 늘어나는지는 호르몬 신호나 유전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뜻이다. 어떤 연유든 내장에 지방이 쌓이는 일은 바람직하지 않다. 인슐린이 있어도 신호가 전달되지 않는 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시상하부에서 인슐린 신호가 전달되는 곳은 공교롭게도 렙틴 신호가 도달하는 세포와 같다. 두 호르몬 신호가 한꺼번에 망가질 수 있다는 뜻이다. 지방 전구세포가 정상적으로 분화할 때는 섬모가 필요하다. 그러나 왕성하게 분열하는 지방세포는 섬모가 없거나 기능이 망가진 상태이며, 비만을 유도하기 쉬운 형질로 변한다. 그러므로 뇌의 신경세포 섬모든 지방 전구세포 섬모든 그 기능을 오롯이 간직하는 것이 건강을 지키기 위해서는 꼭 필요하다. 이처럼 나이가 들면 생물학적으로 시상하부 섬모가 짧아지고 복부 지방이 쌓일 수 있다. 6월이다. 6·25를 떠올리며 하루 굶어보자.
김홍표 아주대 약학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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