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상] 종교 흥행

김태훈 논설위원 2024. 6. 12.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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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이철원

해마다 부처님오신날이 오면 조계사 앞에서 연등회 축제가 열린다. 올해 행사는 예년과 사뭇 달랐다. ‘엄숙한 축하’ 대신 댄스 음악회가 펼쳐졌다. 단상에 오른 개그맨 윤성호씨는 차림부터 남달랐다. 승복 입고 짧게 깎은 머리에 나이트클럽 디제이들처럼 헤드셋을 했다. 이어지는 장면은 힙합 공연을 방불케 했다. 대형 스피커에선 EDM이라는 전자음에 불경을 리믹스한 곡 ‘부처 핸섬’이 흘러나왔다. 연단 아래 모여 있던 청년들이 제자리에서 펄쩍펄쩍 뛰며 환호했다.

▶이날의 파격은 지난해 윤씨가 연등회 사회를 맡아 선보인 디제이 퍼포먼스가 계기였다. 행사 동영상이 소셜미디어에서 ‘1000만 조회’를 기록하자 조계종이 반색했다. 그에게 영어 ‘뉴’(NEW)와 한자 ‘진’(進)을 합쳐 ‘뉴진’이란 법명을 지어 주었고, 조계종 총무원장 진우 스님은 “디제이 할 때 쓰라”며 헤드셋을 선물했다. 행사장마다 선보이는 ‘뉴진 스님’의 공연은 인기 K팝 걸그룹 ‘뉴진스’를 연상케 했다.

▶파격의 이면엔 지속적인 신도 감소에 따른 종교계의 고심이 담겨 있다. 20년 전 한 해 500명 넘던 남녀 승려 입문자가 지난해 80명대로 줄었다. 해인사는 출가자 모집 광고까지 냈다. 천주교와 개신교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올 초 발간된 ‘천주교 통계 2023′에 따르면 지난해 세례를 받은 이는 5만1307명으로 2019년 세례자 수의 63%로 줄었다. 급감하고 있다는 표현이 과하지 않다. 개신교계도 신학대 학생 모집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2017년을 기점으로 국내에서 종교를 갖지 않은 이의 수가 종교인 수를 앞질렀다는 통계도 있다.

▶뉴진 스님이 말레이시아와 싱가포르에서 ‘디제이’로 나섰다가 현지 불교계의 반발을 샀다고 한다. 중생 구제를 목표로 현실 사회에 적극적으로 간여하는 한국 대승불교와 달리, 동남아에선 개인의 수행과 해탈을 강조하는 소승불교를 믿는다. 그러니 세상 변화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포용하는 한국 불교 전통에 공감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요즘 불교 행사장에서 팔리는 티셔츠엔 ‘중생구제’와 ‘백팔번뇌’ 대신 ‘중생아 사랑해’ ‘번뇌 멈춰’처럼 현대적 어휘가 적힌 것이 인기다. 천주교와 성공회에선 반려동물 축복식이 확산한다. 국민 1500만명이 반려동물을 키우고 개와 고양이를 가족으로 여기는 현실이 사목에도 변화를 불렀다. 유럽에선 성당과 교회가 신도 감소를 못 버티고 나이트클럽과 빵집으로 바뀌고 있다. 세상 변화를 수용할 수밖에 없는 것은 종교라고 다르지 않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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