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리콘 총 든 20대 청년 “내 꿈은 노가다 혁명가”
현장직 부친 따라 일 배운 지 7년차
늘 “노가다 말고 취업하지” 소리에
인식 바꾸고자 SNS 개설, 큰 호응
“안전하게, 자부심 갖고 일하고파”
회색 티셔츠, 국방색 얼룩무늬 바지에 군데군데 흰색 얼룩이 묻었다. 장갑을 낀 두 손은 실리콘 총을 다부지게 잡았다. 타일 틈새를 겨눈 총이 일직선으로 지나간 자리를 하얀 실리콘이 메웠다.
7년차 ‘실리콘 코킹’ 노동자 김동영씨(28)는 공사 현장에서 촬영한 영상과 사진을 2022년부터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 계정에 올려왔다. ‘틈을 메운다’는 뜻의 코킹은 유리창 틀(새시)에서 볼 수 있듯 자재의 이음새를 실리콘 등으로 채우는 일을 말한다.
김씨는 SNS에서 자신을 “노가다(막노동) 혁명가를 꿈꾸는 청년”이라고 소개했다. “20대 초반 얼떨결에 하게 된 현장직에서 가장 많이 들은 말은 ‘어린 친구가 노가다 말고 취업 준비하지’였다”며 “현장직 노동에 대해 좋지 않은 사회적 인식을 바꾸고 싶다”고 말했다. 김씨가 지난달 23일 유튜브 채널을 연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많은 응원이 쏟아졌다. ‘좋아요’가 5만6000여개, 댓글이 1979개(12일 오후 2시 기준) 붙었다. 현장직 종사자와 가족들의 응원글이 먼저 올라왔다. ‘강릉에서 타일 깔고 있는 26살 청년’이라고 밝힌 한 누리꾼은 “‘어린 나이에 기술을 배우려 하는 게 대단하다’는 응원과 격려를 받곤 한다”며 “불경기라 공사 현장이 많지 않고, 쉬는 날도 발로 뛰어야 하지만 후회한 적 없다”고 썼다. 동생이 타일 시공 일을 하려 한다는 다른 누리꾼은 “왜 어렵고 힘든 길을 가려는지 안타까운 마음이 들기도 했지만 우연히 글을 본 뒤 동생을 더 응원하고 있다”고 했다.
김씨는 기자와 통화하면서 “뜨거운 호응에 얼떨떨하다”고 말했다. 그는 “인식이 바뀌는 것은 멀었다고 생각했는데, 응원을 보며 마음이 따뜻해졌다”고 했다. 수많은 댓글 중에서도 60대 현장직 ‘선배’가 남긴 글이 마음에 남았다고 했다. 그는 “현장에서의 삶은 참 힘들지요. 그래도 그곳에 있다 보면 살아있다는 걸 느낍니다”라며 “항상 행복하십시오”라고 썼다.
김씨의 아버지도 현장직 노동자다. 고층 건물 앞을 지날 때 “아들아, 저거 내가 지었다”라는 아버지의 자부심 어린 말을 듣고 자란 김씨는 20대 초부터 아버지를 따라다니며 일을 배웠다. 2022년 12월부터 또래 친구 6명을 모아 실리콘 코킹 전문업체를 열었다. 오전 6시부터 오후 5시까지, 연중무휴다. 서울 외에 다른 지역에서 일이 잡히면 새벽부터 일과가 시작된다.
그는 여전히 편견 어린 시선을 맞닥뜨린다고 했다. 무슨 일을 하냐고 묻는 말에 “현장에서 코킹을 한다”고 하면 “아, 노가다?”라는 말이 돌아올 때가 있다. 단 네 글자의 반문에 담긴 무시와 편견은 좀처럼 익숙해지지 않는다. 식당이나 화장실에서 박대를 당하거나 수군거림의 대상이 되는 경우도 잦다고 했다. “옷을 털고 가도 깨끗해 보이진 않는다는 걸 이해하지만 ‘우리가 더럽나?’ 울컥하게 되더라고요.”
편견 못지않게 무서운 것은 현장의 위험이다. 또래의 죽음을 전해들을 때마다 마음이 내려앉는다. 2021년 9월 인천의 49층 아파트에서 외벽 청소를 하던 20대 노동자가 안전 로프가 끊어져 추락사했다. 김씨는 이 소식을 듣고 “말이 안 되는 일이 벌어졌다”고 생각했다. 김씨가 앞으로 SNS를 통해 ‘안전 문제’를 다뤄보려는 이유다. 그는 ‘안전모를 써라’에 그치지 말고 구체적인 위험의 가능성과 대처법이 공유·전수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김씨는 “베테랑조차도 구조물에서 떨어질 수 있는 곳이 현장”이라며 “제가 할 수 있는 안전에 대한 얘기를 하고 싶다”고 말했다.
“성공하고 싶어요.” 쉬는 날 없이 일하고 시간을 쪼개 영상을 기획하는 것은 더 바쁘게, 더 열심히 일하기 위해서라고 했다. 그는 자신의 노동이 “힘들고, 관절이 나가고, 버틸 수 없는 일”이 아니라 “낭만있고, 재미있고, 자부심 있게 할 수 있는 일”이라는 걸 알리고 싶다고 말했다.
전지현 기자 jhyu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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