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정인 "윤석열 정부, 국민 절망고문 중…전쟁 따른 국민 생명 피해 두려워 해야"
남한 민간단체의 대북 전단 살포에 북한이 오물 풍선으로 대응하자 윤석열 정부가 9.19 군사합의 효력을 정지하고 대북 확성기 방송을 재개하는 등 한반도 위기가 높아지는 가운데, 문정인 연세대학교 명예특임교수는 한반도 평화를 위한 대안이 보이지 않는다면서 윤석열 정부가 국민을 상대로 '절망고문'을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12일 조국혁신당 김준형 의원이 '한반도 분단 구조의 극복을 위하여'라는 주제로 국회의원회관에서 개최한 6.15 남북공동선언 24주년 기념토론회에 참석한 문정인 교수는 "문재인 정부 때 2018년 4월 판문점 정상회담하고 9월 평양 정상회담하고도 (이후에) 잘 안되니까 이런 희망고문이 어디있냐고 했는데, 지금 정부는 절망고문을 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문 교수는 "(현 상황을) 어떻게 빠져나갈지 대안이 잘 안보이는데 북한은 구조적 전환을 한 것 아니냐는 걱정이 든다"며 미국 미들베리국제연구소 로버트 칼린 연구원의 분석을 전했다.
그는 "칼린은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 3대가 가장 역점을 뒀던 외교 정책이 미국과 관계정상화였는데 2019년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 이후 북한이 여기에 관심이 없어졌고 새로운 대륙세력인 러시아와 중국을 찾았다고 분석했다"며 "탈냉전 이후 북한의 셈법이 바뀐 것인데 이게 걱정이며 김정은이 전쟁을 할 결심까지 했다는 주장도 있다"고 말했다.
문 교수는 "한반도 위기를 안정화 시킬 수 있는 매커니즘이 작동하지 않고 있다. 남북 간 통신선, 핫라인 등이 가동하지 않는 상황에서 확전 가능성은 높아지는데 막을 수 있는 장치가 없어지는 것이 현재 한반도 위기의 핵심 원인"이라고 진단했다.
이날 문 교수와 대담을 가진 김준형 의원은 "한미 정부가 '적대적 공생'을 활용하고 있는데, 그에 따른 결과를 통제할 수 있다는 오만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며 "한미 모두 전쟁을 바라지 않지만 정치적 필요 때문에 적대적 공생을 유지하는 것으로 보이는데, 정치적으로 이용만하고 전쟁은 막을 수 있다고 보는 것인가"라고 물었다.
김 의원은 "한반도에는 미군이 주둔하고 있어서 전쟁이 발생하면 미국이 자동으로 개입되기 때문에 합리적인 범위 내에서는 전쟁이 일어나지 않겠지만, (지금처럼) 우발적인 전쟁을 막을 수 있는 장치가 많이 없어진 상황에서 한번 (국지적 충돌이) 발생했을 때 위기가 고조되어 전쟁이 일어날 수 있다"며 "윤석열 정부가 전쟁은 원하지 않는다면서 (위기를 낮출) 브레이크는 다 없앤 상황"이라고 분석했다.
문 교수는 "미국은 휴전협정과 유엔군사령부가 있기 때문에 남북 간 충돌이 있더라도 확전을 막을 수 있다고 보고 있다"며 "그런데 윤석열 정부는 북한이 도발하면 상부에 보고 없이 바로 그 자리에서 보복하라는 이른바 '즉강끝'(즉각, 강력히, 끝까지) 응징을 이야기하고 있다. 이를 실제 행동에 옮기면 주한미군이나 유엔군사령부가 개입할 수 없게 된다"라며 미국의 통제가 있어도 윤석열 정부의 방침 때문에 확전을 막기 어려울 수 있다고 내다봤다.
그는 "정부가 대북 정책의 패러다임을 바꿔서 '예방전쟁'이 아니라 '예방외교'에 초점을 둬야 한다. 그러려면 긴장완화와 신뢰구축 조치를 취하는 것이 기본인데, 문재인 정부 때 판문점 선언, 평양선언, 남북 군사합의 때 교과서처럼 들어갔던 사항을 지금 정부에서 다 뒤집었다"며 "전쟁을 두려워해야 한다. 국민의 생명과 재산의 희생을 두려워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의원은 윤석열 정부 주요 구성원들의 세계관과 정치적 이익 측면을 고려했을 때 현재와 같이 "아군과 적, 친구와 적, 우방국과 적국"으로 세계를 바라보는 정부의 시각이 달라지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우려했다.
그는 "윤석열 정부는 처음부터 외교가 아니라 전쟁을 해왔다. 실리적 부분에서도 정치적 이익 측면에서 보자면 '적대적 공존'이 국내 정치에서 밀리고 있는 이 정부에 남아있는 마지막 자산"이라고 진단했다.
김 의원은 "세계관과 패러다임을 바꾸기 힘들다면 윤석열 정부를 빨리 종결하는 것이 해결의 방법 중 하나"라며 "정치적 공격을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평화나 미래를 위해서는 그 수가 가장 첩경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
문 교수 역시 윤석열 정부가 미국에만 의존하는 대외정책을 펼치고 있는 배경으로 "모든 것을 한미관계를 통해 보고 있다. 그런데 그 시각에서 보면 대안이 안나온다"라며 정부 구성원의 세계관에 문제가 있다고 꼬집었다.
그는 "우리가 전략적 자율성을 가질 때 중심을 잡을 수 있다. 우리가 해야 할 우선순위가 무엇인지, 동맹이 '목적'인지 '도구'인지 등에 대한 성찰이 필요하다"라며 "이런 것 없이 현 상황에 안주하다보니 동맹 없이는 우리의 존재 의미가 없는 것 같은 환상이 생긴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 의원은 "국제정치적으로 소위 미중 '신냉전'은 사실상 모든 세계를 양분했던 기존 냉전과 전혀 다르다. 중국도 여전히 세계와 연결돼있고 '글로벌 사우스'(Global South, 주로 남반구나 북반구 저위도에 위치한 신흥국 및 개발도상국)가 등장하는데 신냉전 구조에 '올인'하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라고 우려했다.
그는 "미국과 관계에서 '친미'적인 정책을 펼치면서도 자율성을 발휘하는 인도, 인도네시아, 사우디아라비아, 튀르키예 등의 국가도 있다"며 "우리가 미중 사이에서 홀로 제3지대를 형성 할 수는 없겠지만 그런 국가들이 존재하기 때문에 이들과 미중 시대를 함께 살아남아야 한다"고 주문했다.
한편 올해 11월로 예정된 미국 대통령선거와 관련,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당선될 경우 한반도에 미칠 영향에 대해 문 교수는 "트럼프 진영 내 우파적 시각에서는 주한미군을 철수시켜야 이들이 북한에 인질로 잡히지 않기 때문에 북한에 핵도 사용할 수 있고 군사행동 할 수 있다는 시각이 있다"고 소개했다.
그는 "반면 트럼프 지지자들 중에서는 해외에 있는 미군을 전부 철수시키자는 시각도 있고 강경파 중에서는 중국이 가장 큰 위협이라서 주한미군이 존재하는 이유는 중국 때문이고 한국과 일본이 핵무장 할 수 있도록 미국이 용인해줘야 이들이 미국 대신 중국과 싸울 수 있다는 주장도 있다"고 전했다.
문 교수는 "엘브리지 콜비 전 미국 국방부 전략·전력 개발 담당 부차관보가 트럼프와 가까운 인사인데 트럼프가 당선되든 바이든이 당선되든 한미일 3국 체제는 중국 겨냥한 것인지 북한을 겨냥한 것은 아니라고 했다"며 트럼프 당선으로 미국 대외정책의 큰 틀인 중국에 대한 견제가 변화하지는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그는 "우리만 정신차리면 된다. 미국이 주한미군 철수 또는 감축한다고 하면 그를 통해 북한과 새로운 돌파구를 만들 수도 있고, 미국 위상에 변화가 있다고 하면 지금까지는 한미동맹에 의존해왔지만 새로운 다자안보협력 체제를 만들 수도 있다"며 "미국이 없는 한반도나 동북아가 있을 수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두고 그에 따라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이재호 기자(jh1128@press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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