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의 자유, 트럼프의 자유 [세상읽기]

한겨레 2024. 6. 12. 1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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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왼쪽)과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 대통령실 제공, 로이터 연합뉴스

김정희원 | 미국 애리조나주립대 교수

한국에서 정동(affect) 연구자로 알려져 있는 로런 벌랜트는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의 특징은 바로 “트럼프는 자유롭다”는 점이라고 한 적이 있다. 물론 좋은 뜻으로 말한 것은 결코 아니다. “파장도 결과도 무시한 채 자기 감정을 마음껏 행사할 자유”를 누리고 있다는 의미였다. 절차도 사회규범도 아랑곳하지 않고 자기 마음 가는 대로 한다는 점에서는 그렇다고 볼 수 있겠다.

이런 맥락에서는 윤석열 대통령도 트럼프 못지않다. 예컨대 그에게는 가혹 행위로 숨진 훈련병의 영결식이 있던 날 여당과 술자리를 갖고 활짝 웃으며 ‘어퍼컷’을 날릴 자유가 있다. 국민들의 분노와 심려가 가득한데 한가롭게 요리 퍼포먼스를 하는 것 역시 “자기 마음껏 행사할 자유”다. 대통령의 소통 부재에 대한 비판이 이어지는 가운데 그는 기자들 앞에서 계란말이를 만들고 김치찌개를 배식하는 것으로 소통을 대신했다. 그 ‘소통’의 결과로 대통령실이 배포한 자료는 “대통령의 김치찌개 레시피”였다. 지금 이게 중요한가? 레시피 따위 전혀 궁금하지 않은데 제멋대로 자기 하고 싶은 일만 하고 있다.

하지만 윤 대통령과 트럼프의 유사성은 딱 여기까지다. 그 둘 사이에는 결정적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로런 벌랜트가 트럼프의 “자유로움”에 주목했던 이유는 단순히 그가 제멋대로여서가 아니었다. 트럼프의 “자유로운” 말과 행동이 스스로 “억눌려 있다”고 믿었던 수많은 사람들에게 해방의 착각을 선사하고, 트럼프가 자신들에게 진정으로 자유로운 세상을 가져다줄 것이라는 기대감에 부풀게 만들었다는 점 때문이었다. 그들은 지금까지도 트럼프의 굳건한 지지세력으로 남아 있다.

여자에게 머리를 조아리지 않는 강한 남자, ‘정치적 올바름’에 전전긍긍하지 않고 시원하게 할 말을 하는 백인, 이민자에게 일자리를 빼앗기지 않고 당당하게 돈을 벌어오는 아버지로 다시 태어날 수 있는 세상을 꿈꾸는 이들에게 트럼프의 “자유”는 속 시원한 대리만족이자 삶의 이상 그 자체였다. 반민주적 자유주의 정권이 정당성을 획득하기 위해 활용하는 프로파간다의 결정적 속성이 바로 “국가와 함께 나도 자유로워지고 부강해지고 있다”는 착각을 주입하는 것이 아닌가. 트럼프의 추종자들은 자연스럽게 이런 믿음에 빠져 트럼프와 자신을 동일시해왔다.

하지만 윤 대통령의 “자유로움”은 트럼프와는 차원이 다르다. 그는 아무도 감화시키지 못한 채 그저 자기 홀로 자유롭기 때문이다. 앞치마까지 두르고 신나게 계란말이를 준비했지만 보수 언론조차 한탄할 정도로 이벤트 효과가 전혀 없었다. 윤 대통령의 프로파간다는 자연스럽거나 전략적이지 못하고, 오히려 대놓고 부자연스럽고 시대착오적이다. ‘빈말’이거나 ‘맞춤형 거짓말’이라는 점이 뻔히 들여다보이는데 혼자서 대단히 진지하게 힘주어 말하니 웃음거리가 될 수밖에 없지 않겠나.

지난주 국정 브리핑으로 촉발된 ‘산유국 소동’ 역시 그런 실패작들 중 하나다. 대통령이 ‘전격’ 발표한 국정 브리핑은 온통 호들갑으로 가득했다. 이렇게 발표하면 국민들이 우리도 산유국이 될 수 있다는 기쁨에 힘든 현실을 잊고 희망찬 미래를 그리게 될까? 천만에. 당연히 지지율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윤 대통령만 그걸 몰랐을 뿐이다. 이러니 그가 트럼프만도 못하다는 소리를 듣는 것이다.

윤 대통령은 대단한 착각 속에 살고 있다. 자신에게 감히 반론을 제기하지 않는 참모들만 곁에 두니 그의 언행을 제어할 사람도 없다. 시급한 현안이 산적한 이 시기에 멋대로 자유를 누릴 권리를 누가 그에게 주었나. 그는 내키는 대로 거부권을 행사하며 민주화 이후 역대 최다 거부권 신기록을 세우고, 자신의 가족을 수사하고 있는 검찰의 인사를 좌지우지하며, 취임 이전에 쓰던 ‘개인 폰’으로 마음껏 통화한다. 그러면서도 그는 부끄러움을 모르고, 법과 권력을 사유화한다는 비판에도 아무 반응이 없다. 왜 자신은 그래도 된다고 생각할까?

자유에는 책임이 따르고, 책임지지 않는 자유는 방종이다. 대통령은 지금이라도 정신을 차리고 지도자로서 책임 있는 자세를 보여야 한다. 권력을 마음대로 휘두르는 것은 리더십이 아니며, 자기중심적이고 무책임한 언행을 지켜보는 국민들의 인내심은 한계에 달했다. 지지율이 지금보다 낮아지면 심리적 탄핵이라고 하던데? 윤 대통령, 지금 나 홀로 자유로울 때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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