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는 냉장고가 아니다 [뉴스룸에서]

이정훈 기자 2024. 6. 12. 1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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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시내 한 산후조리원 신생아실에서 간호사 등 관계자들이 신생아들을 돌보고 있다. 연합뉴스

이정훈 | 사회정책부장

‘아기는 냉장고다.’

1992년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게리 베커 미국 시카고대 교수의 이론이 그렇다. 그는 경제학의 외연을 결혼, 출산, 범죄 등 사회현상까지 확대했다. 법을 어겼을 때 얻는 이익이 체포, 형벌 등의 비용보다 큰 상황이라면 범죄는 합리적인 경제적 선택의 결과라고 했다. 출산도 투자와 수익률을 따져 내린 판단으로 본다. 냉장고를 고르고 사는 행위와 아이를 낳고 기르는 일이 별반 차이가 없다는 얘기다. ‘국가 비상 사태’(윤석열 대통령)인 저출생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선 비용 대비 편익을 높이면 된다는 뜻이기도 하다.

최근엔 출산에 도움이 된다며 생물학적 편익을 높이자는 대책이나 제안도 나온다. 서울시는 추가경정예산안에 정관·난관 복원수술 비용 지원을 포함했다. 국민의힘 소속 한 서울시의원은 괄약근을 조이는 케겔 운동을 제안하기도 했다. 국책연구기관인 조세재정연구원의 한 연구위원은 여성의 1년 조기 입학이 “향후 적령기 남녀가 서로 매력을 더 느낄 수 있도록 하는 데 기여”할 수 있다는 주장을 내놨다. 남녀가 만나 사귀고 결혼하면 자연스럽게 아이를 낳을 것이란 전제에서 나온 대책으로, 실소와 비판만 불렀을 뿐이다.

정부는 그동안 경제적 편익을 확대하기 위한 출산 정책을 써왔다. 한국이 인구가 늘지도 줄지도 않는 대체출산율 2.1명에 도달한 것은 1983년이었다. 전두환 정부 때로, 인구 감소 국면에 들어섰음을 의미했지만 당시엔 가족계획 사업의 성공을 자축하느라 바빴다. 이런 정책은 1990년대까지 이어졌다. 정부 차원의 저출생 대책은 2006년에야 나왔고, 이후 20년 가까이 대부분의 정책은 출산·육아 비용을 줄이는 데 집중했다. 올해도 정부는 부모급여를 월 70만원에서 100만원으로 확대(0살 기준)하고, 육아휴직급여 상한액을 450만원으로 올리는 등의 대책을 내놓았다.

그러나 출산율 제고에 큰 도움이 되지는 않을 듯하다. 경북도가 지난 10년간 출산지원금과 합계출산율 현황을 조사한 결과, 뚜렷한 상관관계를 찾지 못했다. 출산지원금을 늘려도 출산율 상승엔 별 효과가 없었다. 22개 시·군에서 출산지원금은 늘었지만 출산율은 계속해서 떨어졌고, 포항·구미시는 되레 반비례 관계를 나타내기도 했다.

한국의 ‘출산파업’은 우리 삶이 반영된 결과다. 육아휴직급여는 계속 늘어났지만, 사용은 대기업(2022년 기준 남성 70%·여성 60%, 300인 이상 기업 재직)에 쏠린다. 대기업에 다녀도 경력단절을 피할 순 없다. 혼자인 아이가 안쓰러워 둘째를 생각해도, 재차 육아휴직을 쓰는 데 눈치가 보인다. 가정 안에선 여성이 ‘독박육아’를 해야만 한다.

이뿐만이 아니다. 서울에서 대출 없이 내 집을 사려면 월급 한푼 안 쓰고 모아도 15년(2022년 주거실태조사)이 걸린다. 그 기간은 해마다 늘어나고 있다. 정부가 돌봄을 돕는다며 ‘늘봄교육’을 내놓았지만, 아이가 ‘빈곤층’으로 인식될까 보내지 않는 상황이다. 경쟁에서 뒤처질까 쓰는 사교육비도 월평균 55만3천원(2023년 기준)이 든다. 아이가 둘 이상인 집은 100만원을 훌쩍 넘어선다. 노동 시간(1874시간·2023년 기준)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보다 15일 많고, 임금도 여성이 남성보다 31.2% 정도 적어 회원국 가운데 가장 큰 격차를 보인다.

돈으로 아이를 살 수는 없다. 그동안 출산율 제고 정책은 베커 교수가 정립한 인간의 노동력을 자본화한 ‘인적 자본 이론’과 연관이 깊다. 생산가능인구가 줄면 생산과 혁신을 도모할 사람이 감소해 성장이 저하될까 우려해 인적 자본을 늘리는 출산 정책에 집중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저출생 문제는 출산에, 인적 자본 확대에 초점을 맞출수록 해결하기 어렵다. 사회적 구조와 문화적 배경 등도 함께 바꿔야 한다. 단거리 달리기가 아닌 마라톤과 같고, 대책 역시 단품이 아닌 종합선물세트여야 한다.

2019년 노벨 경제학상을 공동 수상한 미 매사추세츠공대(MIT) 에스테르 뒤플로, 아비지트 바네르지 교수는 성장에 대한 집착을 버릴 것을 조언한다. 더 성장하는 것이 아닌 삶의 질을 높이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 조만간 정부가 저출생 종합대책을 내놓는다. 윤석열 정부 출범 3년차에야 나온다. 늦었지만, 이제라도 인식의 전환이 있길 기대한다.

ljh9242@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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