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탁상공론하지 말고, 아프리카 광물현장으로 떠나라 [왜냐면]

한겨레 2024. 6. 12. 1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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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4일 열린 ‘2024 한-아프리카 정상회의’에서 이동하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이별빛달빛 | 지구세계연구소장

삼라만상은 우리가 예상조차 못 한 방식으로 연결되어 있다. 한·아프리카 정상회담, 대통령의 석유가스 탐사시추 계획 발표, 그리고 ‘9·19 군사합의’ 효력의 정지. 이 세 사건이 어떻게 동시다발적으로 이삼일 사이에 발생했는지를 성찰할 필요가 있다.

54개 아프리카 나라 중에서 48개 나라의 지도자가 참석하는 정상회담을 준비하면서 북한의 저항을 예측하지 못했다면, 통치 능력을 의심받을 수밖에 없다. 북한은 지난 60여년간 적어도 아프리카 외교에서는 한국보다도 앞섰다고 주장해왔다. 하지만 우간다, 앙골라, 세네갈 등에서 대사관을 철수하면서 아프리카에서의 북한 입지는 점점 위축하고 있다. 또한 자신의 오랜 동맹인 쿠바가 한국과 외교 관계를 수립한 상황에서, 한국이 아프리카 정상들을 초청하는 상황을 그냥 두고 볼 수 없었던 북한은 오물 투척이라는 비열한 방법을 선택했다. 현 정부는 지난 정권이 상당한 공을 들였던 9·19 군사합의를 무효화시켰다. 한·아프리카 정상회담은 한국의 안보 상황을 더욱 긴장 국면으로 몰고 가는 결과로 나타났다.

광물이 세계사의 운명을 어떻게 바꿀 수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역사가 있다. 제2차 세계대전 때, 벨기에는 지배하고 있던 콩고민주공화국에서 엄청나게 매장된 양질의 우라늄을 발견했다. 히틀러도 이 사실을 알았다. 전쟁이 치열하게 전개되면서, 미국과 독일 사이에 우라늄을 먼저 차지하려는 암투가 벌어졌다. 아인슈타인은 루스벨트 대통령에게 이런 위험을 알렸다. 결국 벨기에 광업회사가 이 광물을 미국으로 넘겼다. 만일 히틀러가 미국보다도 먼저 우라늄을 차지했다면, 세상은 어떻게 바뀌었을까. 아니, 한국은 어떤 방식으로 독립할 수 있었을까.

마오쩌둥과 저우언라이가 이런 역사에 주목하면서, 중국은 아프리카 개발에 나섰고 올해 8월에 아프리카 정상회담을 할 예정이다. 중국은 한국이 핵심 광물을 마음대로 차지하도록 구경만 하지 않을 것이다. 일본도 30년 전부터 ‘도쿄-아프리카 개발회의’를 정기적으로 열면서 아프리카와의 외교통상 관계를 강화하고 있다. 아프리카 지도자들은 경쟁적으로 핵심 광물 개발에 매달리는 한국, 중국, 일본 중에서 돈을 더 많이 주는 나라에 광물을 공급할 것이다.

우리는 54개 아프리카를 모두 지원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음을 인정해야 한다. 아프리카는 미국, 중국, 유럽을 모두 합쳐도 더 광활한 대륙이다. 한국이 고도의 압축성장을 앞세워 우쭐거릴 수 있는 대륙이 아니다. 한국의 지난 60여년간 아프리카 외교의 대차대조표는 지난 엑스포 유치 과정에서 감비아의 한 표만 얻었다는 사실에 나와 있다. 이런 상황에서 현 정부는 아프리카의 핵심 광물을 개발하려면, 정상들이 한국에 체류하는 기간에 그들에게 뭔가를 보여주려고 했을 것이다. 그것이 바로 석유 시추계획의 발표로 나타났다고 생각한다.

한국의 갈 길은 이미 나와 있다. 전략적 선택이다. 첫째, 탄자니아와 같이 정치적으로 안정된 나라와의 외교통상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아프리카 민주주의는 여전히 위협을 받고 있기 때문에 그렇다. 핵심 광물이라는 코앞의 달콤한 유혹에 휘둘리지 않고, 아프리카와의 관계는 장기적인 대책을 세워야 한다. 둘째, 한국은 핵심 광물의 가치를 실증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준비가 되어 있는지를 돌아봐야 한다. 광물자원의 주무 기관인 광해광업공단, 한국국제협력단, 한국지질자원연구원, 대외경제정책연구원 등 관련 기관과 연구소의 긴밀한 협력체계가 갖추지 않은 상태에서, 대통령이 깃발만 든다고 해서 모든 일이 술술 풀리지 않는다. 셋째, 국제협력의 기본은 문화와 역사에 대한 상호 존중에서 출발해야 한다. 핵심 광물의 기치만을 내세운다면, 아프리카 시민들은 영락없이 ‘광물의 저주’라는 근현대사의 뼈아픈 역사적 트라우마를 떠올릴 것이다. 한국마저 단물만 빼먹는 나라로 간주하기를 원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아프리카 역사와 문화부터 공부해야 한다.

조선 초에 제작된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는 아프리카가 포함된 세계 최초의 지도이다. 19세기 사상가 최한기는 한국 최초의 세계지리서 ‘지구전요’에서 아프리카의 광물들을 설명했다. 핵심 광물 개발은 한국의 선각자들이 아프리카를 위해 무엇을 했는지를 탐구하는 것에서 시작해야 한다. 대통령은 아프리카를 한번도 찾아가지 않고 엑스포에서 표를 받을 생각을 했던가. 한국에서 탁상공론하지 말고, 핵심 광물 현장으로 가보라. 하루 1달러라도 벌기 위해 이곳에서 일하는 어린이들이 광물의 저주로 얼마나 큰 고통을 겪는지 깨닫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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