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용 "금리인하 너무 늦으면 내수 약화"… 조기인하론 '솔솔'

김정환 기자(flame@mk.co.kr), 한상헌 기자(aries@mk.co.kr) 2024. 6. 12. 18:03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한은 '피벗 시점' 촉각
"물가 확신 들 때까지 긴축"
겉으론 매파적 신호 보냈지만
"금리 빅스텝 풍랑 잦아들어"
인플레 정점 지났다 판단한듯
"천천히 서둘러라 원칙 따라
세심하고 균형있게 판단"
일각선 "美 앞서 8월 인하"

◆ 금리인하론 확산 ◆

물가 안정과 경기 회복 사이에서 금리 인하 시기를 놓고 한국은행이 고심하는 가운데 이창용 한은 총재가 통화정책 전환을 시사했다.

이 총재는 12일 한은 창립 74주년 기념사에서 "물가가 가파르게 상승하고 기준금리를 빅스텝(한 번에 기준금리 0.5%포인트 인상)으로 인상하던 때의 거친 풍랑은 이제 어느 정도 잦아든 듯하다"며 "지금은 수면 아래 곳곳의 보이지 않는 암초를 피해 항로를 더욱 미세하게 조정해 나가야 하는 또 다른 어려움을 마주한 시기"라고 강조했다. 세부 잠재 위험 요인이 여전하지만 물가 위기의 정점은 지났다는 뜻으로 읽힌다.

다만 이 총재는 물가가 목표 수준으로 내려갈 것이라는 확신이 들 때까지 현재의 통화긴축 기조를 충분히 유지하겠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이 총재는 "지금도 고물가·고금리로 인해 여러 경제 주체가 겪고 있는 고통이 크다는 것을 잘 알고 있지만 물가가 제대로 안정되지 않으면 실질소득 감소, 높은 생활물가 등으로 취약계층의 어려움이 가중될 것"이라고 했다. 다만 "섣부른 완화 기조로 선회한 이후 인플레이션이 재차 불안해져 다시 금리를 인상해야 하는 상황이 된다면 그때 감수해야 할 정책 비용은 훨씬 더 클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인플레이션과의 싸움에서 마지막 구간에 접어든 지금, 이런 상충 관계를 고려한 섬세하고 균형 있는 판단이 필요하다"면서 '천천히 서둘러라'란 아우구스투스 고대 로마 황제의 정책 결정 원칙을 소개했다.

이 총재가 금리 인하의 시발점으로 보고 있는 하반기 물가 경로는 2.3~2.4%다.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2~3월 3.1%를 연달아 찍고 4월에 2%대(2.9%)로 내려오더니 지난달 2.7%까지 낮아졌다. 정부에서는 올해 물가 정점을 이미 지났다는 평가가 나온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물가의 기조적인 흐름을 보여주는 근원물가(농산물·석유류 제외) 상승률이 올해 2.3%, 내년에는 2%까지 낮아질 것으로 봤다.

장민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최근 자영업자와 중소기업들이 고금리 부담을 토로하고 있는데, 이 총재가 이런 어려움을 이해하고 있다고 언급한 것은 어느 정도 금리 인하를 검토하고 있다는 메시지 성격이 있다"고 설명했다.

장 위원은 "올해 하반기로 시간이 흘러갈수록 미국에서 금리 인하 관련 메시지가 나올 것으로 예상되는데, 이때 한은이 움직일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실제 길어지는 고금리 상황이 고물가 충격보다 더 커지고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고금리가 당장 올해 내수 회복의 발목을 잡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KDI에 따르면 수출 회복세는 올해 소비를 0.3%포인트, 설비투자를 0.7%포인트 늘릴 것으로 추산됐지만 현행 고금리가 이어지면 올해 소비는 0.4%포인트, 설비투자는 1.4%포인트 줄어들 것으로 예측됐다.

고금리 충격이 서민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더 직접적이다. 한은에 따르면 자영업자 314만명의 대출 잔액은 1043조원인데, 대출금리가 1%포인트 오르면 이들의 이자 부담은 7조2000억원 늘어나는 것으로 추산됐다. 1인당 평균 이자 부담이 230만원 뛰어오르는 것이다.

안예하 키움증권 선임연구원도 이날 이 총재의 발언에 대해 "기존 톤을 유지했지만 연내 금리 인하 가능성을 열어둔 것 같다"며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9월에 기준금리를 내릴 경우 한은도 10월에 한 차례 금리를 인하할 수 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김명실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국내에서 내수 둔화에 대한 불만이 커지는 것을 고려할 때 6~7월 물가가 안정권으로 들어오면 충분히 금리를 내릴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김 연구원은 "최근 캐나다와 유럽중앙은행(ECB)이 기준금리를 내리며 글로벌 통화정책 차별화가 진행되고 있다"면서 "연준이 9월과 12월에 금리 인하에 나설 것으로 예상되는데, 한은은 8월을 전후해 인하를 단행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이날 이 총재가 금융통화위원회 위원들이 예상하는 향후 3개월 뒤 기준금리 전망치를 취합한 '한국형 점도표'를 강화하겠다는 방침을 밝힌 것도 유의미하다. 금리 인하 시점에 대한 시장 혼선이 커진 만큼 통화정책의 시야를 확보하겠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한은 안팎에서는 향후 예상 시점을 6개월 전후로 확대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이 총재는 "현재 금통위원의 향후 3개월 내 기준금리 전망에 대한 견해를 공개하고 있는데, 위원들과 함께 이런 방식의 효과 및 장단점 등에 대해 검토하고 개선 방안을 고민해볼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그는 통화정책에만 매달리지 않고 구조 개혁을 위해 한은의 싱크탱크로 거듭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이 총재는 "저출생·고령화, 지역 불균형과 수도권 집중, 연금 고갈과 노인 빈곤, 교육 문제, 소득·자산 불평등, 노동시장 이중 구조 등 여러 구조적 문제들 앞에서 우리의 연구 영역을 통화정책 테두리 안에만 묶어둘 수는 없다"며 "국가 경제의 발전을 위한 청사진을 제시한다는 책임감으로 구조 개혁 과제에 대해 제언하는 역할을 계속해 나가겠다"고 강조했다.

[김정환 기자 / 한상헌 기자]

Copyright © 매일경제 & mk.co.kr.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