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촬영물 지난해만 24만건 지웠다.. 청소년 노린 그놈들

최오현 2024. 6. 12. 1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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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성범죄피해자지원 센, 지난 11일 첫 언론 공개
‘DNA기술’로 온라인 유포 영상 삭제 시연
청소년 피해자 증가 추세…“예산 확보 및 법안 개정 필수”

[이데일리 최오현 기자] A양은 호기심에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용돈이 필요하다’는 내용의 글을 올렸다. 글을 올림과 동시에 용돈을 줄테니 만나자는 600건에 가까운 다이렉트 메시지(DM)을 받았다.

불법 촬영물 영상이 유포돼 고통 속에서 생활하던 B씨는 모르는 사람들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영상을 잘봤다며 자신과 관계를 맺지 않으면 영상물을 다시 유포할 것이란 내용이었다. 불법 촬영 피해에 더해 익명의 다수가 연락처까지 알아내 협박하는 탓에 일상 생활이 불가해졌다.

지난 11일 서울 중구 디지털성범죄피해자지원센터에서 디지털성범죄피해자지원센터 관계자들이 디지털성범죄 피해자 지원 현황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사진=한국여성인권진흥원)
영상물 유포를 중심으로 하는 디지털성범죄가 꾸준히 증가하고 있지만 피해자를 지원할 공공 인적·물적 자원이 여전히 부족한 상태다. 특히 성범죄 피해자 중 청소년 비중이 더욱 증가하고 그 연령도 어려지고 있어 우리 사회의 각별한 관심이 요구된다.

국내에선 디지털성범죄피해자지원센터(센터)가 A양, B씨와 같은 피해자 회복 지원을 돕고 있다. 상담·의료지원 및 수사기관 연계 등의 업무도 하고 있지만 센터 업무 중 약 90%는 온라인 상에 유포된 영상을 찾아 삭제하는 일이다. 지난해에만 24만 5416건을 삭제했으며 피해자 8983명을 지원했다.

2018년 개소 후 처음 언론에 공개된 센터를 지난 11일 찾았다. 이날 언론 공개는 디지털성범죄 피해자 대부분이 유포에 대한 공포를 갖고 있는 만큼 철저한 보안 서약 아래 진행됐다. 피해자를 특정할 수 없도록 이미지를 필터링한 뒤 센터에서 유포 영상을 삭제하는 방식도 처음으로 시연했다.

고도화 자동 기술로 추적…DNA 기술로 변형된 영상도 찾아내

센터는 유포 영상 삭제에 국내 민간업체와 협력해 개발한 ‘DNA 검색’ 기술을 활용하고 있다. 현재 다수의 국가에서 해시(HASH)기술을 이용하는 반면, 한국은 영상을 편집해도 유사성을 판독해 동일한 것으로 추정되는 영상을 찾아낸다.

해시는 필터를 입히거나 좌우를 반전하는 등 영상을 조작하면 영상을 찾기 어렵지만 DNA 기술은 변형이 일어나도 90% 이상 높은 정확도를 보인다. 변형이 불가능한 인간의 유전자와 같다해서 ‘DNA 기술’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센터 신고 접수부터 사후 처리까지 전 과정에는 고도화된 자동화 기술이 탑재돼 있다. 등록된 310여개의 불법성인사이트와 포털, 온라인 플랫폼 등에 올라오는 촬영물들을 24시간 자동으로 검색하고 모니터링한다. 신고 접수된 영상이 발견되면 영상이 삭제되더라도 법적 대응에 문제가 없도록 URL과 스크린샷이 자동으로 생성돼 보관된다.

또 해외에 서버를 두고 도메인을 계속 변화하는 수법으로 범죄가 진화하는 것에 대응해 도메인 변화를 지속적으로 추적하고 기록하도록 설정돼 있다. 사이트 운영자가 요청에 응하지 않을 경우 호스팅 사업자에게 서버 삭제를 요청하고 이에 불응한다면 해외 피해지원 및 수사기관과 공조에 나서기도 한다. 이 경우 빠르면 하루 만에 게시물이 삭제되기도 하지만 길게는 1년이 소요되는 경우도 있다. 긴급 유포 방지 지원기간인 ‘접수 후 3개월’ 이후에도 센터는 3년간 지속적인 모니터링으로 재발을 방지한다. 또 피해자가 요청할 경우 횟수 제한 없이 지원 기간을 연장할 수 있어 사실상 무기한으로 영상 삭제를 지원하고 있다.

지난 6년간 센터가 삭제한 건수가 100만 4159건에 이르지만 이를 실제 처리하는 인력은 15~20명 내외에 불과하다. 이마저도 기간제 인력이 많아 업무가 익혀질쯤 기관을 떠나는 경우도 허다하다. 매일 촬영물을 시청 해야 하기 때문에 생기는 심리적인 트라우마도 적지 않다. 이렇다보니 정규 인력 충원이 필수적인 상황이다.

박성혜 삭제지원팀장은 “삭제지원 관련 교육도 사실상 저희 기관이 최초이다보니 서로가 서로의 멘토를 하며 배워가는 상황”이라며 “3개월 이상은 가르치며 업무를 해야 되는데 인력이 들쑥날쑥 채용되다보니 더 어려움이 있다”고 설명했다.

청소년 피해 증가에 선제 대응…“시스템 고도화 위한 예산 필수”

피해자 중 청소년 비중이 늘어나고 있단 것도 또 다른 문제다. 2023년 센터에 도움을 요청한 8983명 중 10대는 25%에 달했다. 지난해 대비 7~8% 늘어난 수치다.

김효정 청소년보호팀장은 “10대 피해자 중 14~16살 아이들이 가장 많다”며 “오히려 고등학생이 되면 피해가 줄어드는데, 요즘엔 나이대가 더 어려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 “기존에는 가출 청소년 등이 가해자의 표적이 되는 고위험군에 속했다면 요즘엔 대중이 없다”며 “평범한 아이들도 범죄 표적이 되기도 한다”고 덧붙였다. 온라인에서 접촉한 인물이 그루밍을 통해 아이들이 정보를 캐내고 이를 이용해 점차적으로 심리적인 지배를 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센터는 삭제 지원같은 사후 처리뿐만 아니라 위험 청소년을 발굴해 피해를 막는 ‘선제 지원’으로 사업을 확대하고 있다. 300여개의 플랫폼 모니터링을 통해 고위험군 아동 청소년의 찾아내고 이들이 상담 채널로 유입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 아이들이 자발적으로 게시물을 내리도록 유도하고 지역 내 상담센터와 연계하기도 한다.

센터는 이와 더불어 딥페이크를 활용한 범죄도 늘고 있어 얼굴 인식 및 검색 기술과 크롤링 자동화 통지 시스템을 준비 중이다. 다만 점차 센터를 찾는 피해자는 늘고 있지만 관련 인적·물적 자원 확보는 제자리 걸음이다. 신보라 한국여성인권증진원장은 “자동화 시스템 구축과 정규직 인력 증원을 위해선 예산 확보와 법안 개정이 필수적인 상황”이라고 강조했다.

최오현 (ohyo@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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