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성훈칼럼] 이창용 총재 앞에 놓인 두갈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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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천천히 서두름(Festina Lente)'의 원칙을 되새겨볼 때라고 12일 말했다.
지난 6일 단행된 유럽중앙은행 금리 인하로 논쟁이 뜨겁다.
폴 크루그먼 교수는 아예 대놓고 유럽중앙은행 결정이 옳고, 미국 연준은 틀렸다고 단언했다.
유럽의 길과 미국의 길, 아니면 한국만의 길을 갈지는 온전히 한은의 선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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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Fed 기다릴지 선택해야
내수침체 심각해 늦지말아야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천천히 서두름(Festina Lente)'의 원칙을 되새겨볼 때라고 12일 말했다. 한은 창립 74주년 기념사에서다. 금리정책을 놓고 고민하는 이 총재의 속내가 그럴 거 같다.
유럽중앙은행(ECB)이 먼저 치고 나왔다. 과거 유럽이 미국에 앞서 금리를 내린 적이 있었나 싶어서 그래프를 쭉 돌려봤다. 통화정책 전환을 의미하는 피벗 국면에서 유럽이 선제적으로 움직인 건 처음이다.
지난 6일 단행된 유럽중앙은행 금리 인하로 논쟁이 뜨겁다. 유럽은 미국의 80% 정도 되는 경제권이고 각종 거시지표 흐름도 비슷하다. 미국과 유럽이 다를 게 없지 않냐는 것이다. 미국의 월스트리트저널은 곧바로 날을 세웠다. 사설을 통해 물가 상승률이 목표치에 다가섰다고 확신하기 힘들고, 1분기 성장률도 견조한데 금리를 내리면 환율만 불안해질 수 있다는 우려다. 경기를 진작하려면 제조업체들 목을 죄고 있는 독일의 친환경에너지 정책, 한계기업 구조조정을 막고 있는 이탈리아의 파산법, 기업가정신을 질식시키는 프랑스의 세금부터 폐기하거나 뜯어고치는 게 낫다고 지적했다.
반면 영국의 파이낸셜타임스는 같은 날 정반대의 사설을 내놨다. 금리를 너무 오래, 너무 높게 붙잡아뒀다간 물가가 급락하면서 성장률까지 크게 끌어내릴 수 있다고 진단했다. 경제지표가 낙관적으로 보이지만 대출 여건이나 고용시장 상황이 악화되고 있기 때문에 목표 물가 상승률(2%)까지 떨어지길 기다리다가는 너무 늦을 수 있다는 지적이다.
폴 크루그먼 교수는 아예 대놓고 유럽중앙은행 결정이 옳고, 미국 연준은 틀렸다고 단언했다. 고용시장에서 경기 둔화 조짐이 뚜렷해지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1년 뒤에나 반영되는 집값 변수를 제외하고 물가를 다시 계산해보면 이미 물가 상승률은 목표 수준인 2%에 근접했다고 분석했다.
경제학계에서는 물가 상승률 목표를 기존 2%가 아닌 4%로 올려야 한다는 주장도 다시 거론되기 시작했다. 그래야 선제적인 인하가 가능해 중앙은행 금리정책 운용 폭을 좀 더 넓힐 수 있어서다. 올리비에 블랑샤르 MIT 교수를 비롯한 경제학자들 논리다.
금리를 동결한 이유가 100가지라면 금리를 내려야 하는 논리도 100가지를 내세울 수 있다.
그래서 금리는 메시지다. 돈의 흐름을 실질적으로 틀어 부를 재분배해서다. 한국 거시경제지표는 전체적으로 경기 회복세를 보여주지만 통계 숫자 뒷면을 보면 아슬아슬하다. 대기업 중심의 수출 호조에 힘입어 경기는 완연한 회복 추세다. 다만 그 온기가 내수로 이어지지 못하고 있다. 회복은커녕 오히려 더 악화되는 상황이다. 당장 중소기업과 자영업자들 연체율이 비상이다. 사실상 부도 상태에 놓인 중소기업들이 코로나19 때보다 더 많을 정도다.
금리 메시지의 방향은 분명하다. 내수기업과 중소·자영업자들의 금리 고통을 덜어줘 전체적인 거시경제의 균형을 잡아야 한다. 최근 집값과 물가 급등에서 금리 외적인 요인이 더 크다는 점은 이미 확인하지 않았나.
이창용 총재도 이제 인플레이션과의 싸움 막판이라고 밝혔다. 과거 한은은 금리를 올려도 찔끔, 내려도 찔끔이었다. 코로나19 이후 한국이 0.5%에서 3.5%로 올리는 동안 미국은 0.25%에서 5.5%까지 인상했다. 글로벌 금융위기 때도 미국은 5%포인트가량 인하했지만 한국은 3%포인트 내리는 데 그쳤다. 복지부동식 금리정책보다 이제는 선제적인 대응이 필요하다. 물론 금리 인하는 일시적인 경기 진작일 뿐 근본적인 해법은 아니다. 유럽의 길과 미국의 길, 아니면 한국만의 길을 갈지는 온전히 한은의 선택이다. 다만 메시지는 분명해야 한다.
[송성훈 경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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