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요일 아침에] 北 풍선 도발···나토식 자위권 검토할 때

민병권 논설위원 2024. 6. 12. 1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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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 무력 공격에 자위권 발동 인정
나토, 적대적 의도 표출시 무력 대응
北 ‘회색지대 도발’에 즉각 대처해야
무인기·레이저 등 수단 다양화 필요
지난 9일 수도권 곳곳서 발견된 북한의 오물 풍선. 사진은 왼쪽부터 서울 잠실대교 인근, 인천 앞바다, 파주 금촌동, 이천 인후리 밭에서 발견된 대남 풍선. 사진 제공=합참, 세븐스타호, 연합뉴스 독자
[서울경제]

지난해 1월 하순 미군의 북미방공사령부(NORAD)에는 비상이 걸렸다. 중국이 띄운 ‘고고도 비행 풍선(HAB)’이 태평양을 건너 1월 28일 알래스카 일대의 미국 영공을 침범했다. 풍선이 북미 내륙까지 휘젓고 다니며 정찰용 스파이 풍선과 같은 비행 양상을 보이자 같은 해 2월 4일 미 공군 전투기가 출격해 노스캐롤라이나주 앞바다에서 미사일로 격추했다. 미국 정부는 합법적 자위권 행사임을 강조했다.

유엔 헌장 51조는 총격과 같은 ‘무력 공격(armed attack)’이 발생한 경우에만 예외적으로 회원국의 자위권 발동을 인정하고 있다. 국가 간 우발적 충돌이 전쟁으로 확대되지 않도록 요건을 매우 수세적·보수적으로 규정한 것이다. 반면 미국은 자위권 발동의 요건을 보다 공세적·적극적으로 적용해 미군 교전규칙 등에 반영하고 있다. 특히 상대방이 아직 무력 공격을 단행하지는 않은 상태라고 해도 ‘적대적 의도 표출(demonstrated hostile intent)’을 했다면 아군이 이를 확인하는 즉시 무력 대응에 나설 수 있도록 했다.

미국의 사례는 우리 군의 대북 대비 태세에도 많은 시사점을 준다. 북한이 무력 공격인지 아닌지 애매한 비정규적 형태로 도발해 우리의 영토·주권 및 국민 안전을 위협하는 경우가 잦아졌기 때문이다. 김정은 정권이 최근 네 차례에 걸쳐 오물 등을 담은 풍선을 보내 우리 영공을 침범하고 전자기파로 GPS 교란을 시도한 것이 대표적 사례다. 이처럼 저급하고 비정형화된 도발은 통상적으로 국제법상 ‘무력 공격’으로 간주되지 않는다. 그런 만큼 우리 군이 기존의 교전규칙만으로는 자위권을 발동하기 쉽지 않다. 이 같은 국군의 대비 태세 허점을 떠보려는 차원에서 북한 도발이 이뤄졌을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1953년부터 우리 군과 유엔사령부가 협의해 만든 교전규칙은 주로 총격·포격을 비롯해 정형화된 재래식 무력 도발에 주안점을 둬 작성됐다. 그러다 보니 풍선처럼 무력 공격인지 아닌지 애매한 ‘회색지대(gray zone) 도발’에 대해서는 우리 군이 즉각 반격하기 어렵다. 이에 대해 국군 관계자는 “우리 군이 유엔사 교전규칙에만 얽매이는 것은 아니다”라며 “적이 아군을 공격하려는 의도를 분명하게 보이고, 무력 공격이 임박했다고 판단될 경우 (교전규칙과 관계없이) 아군이 자위권을 발동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그의 설명 역시 적의 무력 공격 임박 징후를 우리 군이 확인해야 하는 것을 전제 조건으로 깔고 있다. 만약 북한이 풍선에 생화학물질을 담아 날려 보냈다고 해도 우리 군의 전방 부대원들이 해당 풍선에 담긴 것이 무엇인지 예단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면 즉각 요격 및 응징 조치를 가하기 쉽지 않은 것이다.

김여정 북한 노동당 부부장은 오물 풍선 도발에 이어 이달 8일 ‘새로운 대응’을 공개적으로 언급했다. 추가적인 비정형 도발 가능성을 시사한 것이다. 이에 대해 기존 교전규칙이 실효성을 갖고 있는지 우리 군은 시급히 점검해 보완해야 한다. 특히 북한이 아직 공격을 실행하기 전이라도 우리 영토와 국민의 안전을 위협할 적대적 의도를 명확히 표출해 상황이 급박하다면 현장의 아군 부대 지휘관이 자위권 조치를 취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미 미국·독일·영국 등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의 주요 회원국들은 ‘무력 공격에 이르지 않은 적대적 행위’에 대해서도 자위권 차원에서 대응할 수 있도록 교전규칙을 개정했다. 한미동맹을 넘어 유럽과도 안보협력을 다지는 우리 군이라면 나토의 대응 방식을 적극 검토할 필요가 있다.

적의 비정형적 위협을 효과적으로 억제할 물리적 수단도 확보돼야 한다. 값싼 적의 풍선을 향해 고가의 미사일이나 재래식 총격·포격을 쏘는 것은 예산 낭비다. 아군 포탄이 자칫 민가에 떨어지면 인명 피해를 일으킬 우려도 있다. 따라서 낙탄 사고 우려가 없고 발사 비용이 저렴한 비(非)살상용 레이저 장비 등이 대안이 될 수 있다. 그물·로봇팔 등을 탑재한 무인기를 개발해 풍선 등 미확인 물체를 안전하게 나포하는 방안도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 국군과 경찰, 소방청, 민방위대 등이 새로운 형태의 북한 도발과 안보 위협에 유기적으로 대응할 수 있도록 모든 관련 기관의 협력 체계도 고도화해야 할 것이다.

민병권 논설위원
민병권 논설위원 newsroom@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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