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정자의 ‘오랑캐’ 허풍 비판한 다산 사상 여전히 중요”

원낙연 기자 2024. 6. 12. 1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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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짬] 20주년 맞아 다산연구소의 시즌2 구상하는 김태희 신임 대표
다산초당은 다산 정약용 선생이 전남 강진에 유배와서 18년 동안 살았던 곳이다. 6월10일 김태희 대표가 다산초당을 둘러보고 있다. 최원일 사진작가 제공

30만명 구독하는 칼럼 등으로
다산의 삶과 사상 공유하며
전문 연구와 시민의 가교 역할

지난 2004년 6월17일 사단법인 다산연구소가 문을 열었다. 다산 정약용(1762∼1836) 연구자들이 참여한 다산연구소는 20년 동안 다산의 콘텐츠를 시민과 공유해왔다.

가장 먼저 한 사업이 다산의 삶과 사상을 메일로 전하는 일이었다. 그해 6월 ‘풀어쓰는 다산 이야기’, 8월엔 ‘다산 포럼’의 메일링 서비스를 시작했다. 특히 박석무 이사장의 ‘풀어쓰는 다산 이야기’는 어느새 1220회를 넘어섰고, 지금도 약 30만명이 칼럼을 구독하고 있다.

지난 3월 다산연구소는 새 대표로 김태희 전 실학박물관 관장을 선임했다. 20주년을 맞은 다산연구소의 시즌2를 고민하는 김태희 대표와 지난 7일 전화로 인터뷰했다.

서울대 국사학과를 졸업하고,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김 대표는 조선 시대 후기 정치사와 정치사상사를 연구하는 실학 전문가다. 다산연구소가 창립한 다음 해부터 기획실장으로 일했고, 2015년에는 연구소장을 맡았다. 중간중간 다산연구소를 벗어나 다른 기관에서 일한 적도 있지만, 올해 대표를 맡으며 14년 동안 몸담았던 다산연구소로 다시 돌아왔다.

“한국학 연구자 입장에서 다산 정약용은 피해갈 수 없는 연구 주제입니다. 일반 시민에게도 비교적 잘 알려져 있지만, 정작 다산의 삶과 사상을 잘 아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입니다. 전문 연구 분야의 성과와 일반 시민의 인식 사이에는 상당한 거리가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가교 역할을 하는 단체가 필요했고, 이를 지난 20년 동안 다산연구소가 해왔습니다.”

다산연구소는 다산을 기념할 만한 날이면 시민과 함께하려고 했다. 다산 서거일인 4월7일에는 매년 다산 묘소에서 시민들과 참배행사를 갖는다. 다산 탄생 250주년이었던 2012년에는 학술행사와 함께 다양한 문화예술행사를 열었다. 다산이 대표적 저서인 ‘경세유표’와 ‘목민심서’를 저술한 지 200년이 된 2017년과 2018년에는 학계와 시민이 함께하는 학술행사를 열었고, 2017년에는 한국 시민뿐 아니라 일본 시민에게 다산을 쉽게 설명하기 위해 ‘조선의 개혁사상가 정약용’ 일본어판도 출간했다.

다산의 유적지와 사상의 근원을 찾아가는 ‘실학기행’, ‘대학생 실학캠프’, ‘중국인문기행’ 등도 매년 열었다. 2018년에는 전남 강진에서 경기 남양주까지 200년 전 옛길을 따라 걸으며 다산의 삶과 정신을 새겨보는 ‘해배길 걷기 행사-강진에서 한강까지, 다산과 함께 길을 걷다’도 진행했다.

김 대표는 지난 20년 동안 다산연구소가 성공적으로 운영한 이유로 콘텐츠와 미디어라는 강점을 가지고 전문 연구 영역과 일반 대중 영역의 가교 역할을 했던 점을 들었다. 그는 “메일링 서비스 사업이 지속성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은 기본적으로 콘텐츠가 가진 힘에서 비롯한 것”이라며 “이러한 활동과 과정을 통해 다산연구소가 미디어 역량을 확보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다산초당은 다산 정약용 선생이 전남 강진에 유배와서 18년 동안 살았던 곳이다. 6월10일 김태희 대표가 다산초당을 둘러보고 있다. 최원일 사진작가 제공

미디어 변화 맞춰 유튜브 채널 개설
기존 네트워크 활용 ‘활동가 거점’화
협업 기반한 사업으로 ‘시즌2’ 구상
“파당적 현실 ‘실사구시’ 여전히 중요”

다산연구소 시즌2는 20년 동안 확보한 역량을 새로운 미디어 환경에서 펼쳐 보이는 것으로 시작할 계획이다. 먼저 유튜브 채널을 새롭게 운영할 계획이다. 다산의 글을 함께 음미하는 내용을 시작으로, 인문기행·실학기행 등 여행과 인물 인터뷰 등으로 확대할 생각이다.

“온라인 공간의 새로운 변화를 적극 반영해야겠다는 생각이기도 하고, 조직의 저비용과 고효율을 지향하기 위한 방법이기도 합니다. 사실 메일링 서비스 사업도 당시 등장한 미디어 수단을 잘 활용한 것입니다. 이제는 유튜브처럼 접근이 용이한 미디어 수단도 적극 활용할 계획입니다.”

근무 방식도 온라인 수단을 활용해 유연하게 하고, 연구소 성격에서 여러 활동가의 거점으로 바꾸는 것도 장기적인 목표다. 지금까지는 박석무 이사장의 개인적 노력에 다산학에 권위 있는 교수들이 동참했다. 또한 기업 출신 기획자와 언론인이 그때그때 힘을 더했고, 기업인들이 재정적으로 도왔다. 이처럼 여러 사람의 힘이 더해져 그동안의 다산연구소가 가능했다.

“시즌2에는 네트워크와 협업에 기반을 둔 사업을 많이 하려는 것이 제 나름의 전략입니다. 다산연구소는 여러 유관단체와 협력관계가 잘 이뤄져 있습니다. 그동안 활동의 성과이기도 합니다. 앞으로 기존 네트워크 활용도를 더욱 높이고, 네트워크도 더욱 확장하려 합니다.”

다산의 사상이 왜 지금도 중요한지 묻자, 김 대표는 이렇게 답했다.

“조선 후기 위정자들은 멸망한 명을 숭배하면서 현실의 청을 ‘오랑캐’라 부르고 북벌을 주장했습니다. 그것은 말뿐인 허구였고, 국내적으로 파당적 권력과 이익을 유지하기 위한 수단일 뿐이었습니다. 이런 허위의식과 허풍을 비판하면서 태도 전환과 국가제도적 개혁안을 제시한 것이 실학이었고, 다산 사상도 그 하나였습니다. 지금은 어떻습니까? 미국 중심의 국제질서에 안주해 이를 벗어난 어떤 생각도 배제하고 있잖아요. 온당한 비판이나 생산적인 논의도 이념이나 진영논리로 낙인찍어 거부하잖아요. 이런 현실에서 ‘실사구시’의 의미는 여전히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원낙연 선임기자 yann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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