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복현까지 가세한 상법 개정안, 핵심 쟁점은?

김남석 2024. 6. 12. 1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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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복현 금융감독원 원장이 12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금융투자협회에서 열린 '자본시장 선진화를 위한 기업지배구조 세미나'에서 축사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사가 '회사를 위하여' 직무를 충실히 해야 하는지, '주주의 비례적 이익과 회사를 위하여' 충실히 직무를 수행해야 하는지를 두고 논란이 커지고 있다.

정부는 자본시장의 '밸류업'을 위해 상법 개정을 추진하겠다 공언했고, 다수여당 역시 소액주주 보호를 위해 상법 개정을 약속했다. 이미 정준호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이 해당 법안을 발의하기도 했다. 하지만 상장사를 중심으로 한 기업들은 이사의 충실의무가 확대될 경우 경영 여건이 과도하게 위축될 수 있다며 우려를 표하고 있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12일 '자본시장 선진화를 위한 기업지배구조 세미나'에서 "상법상 이사의 충실의무를 '회사 및 주주의 이익 보호'로 확대하는 방안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 됐다"고 밝혔다.

앞서 지난달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같은 내용의 상법 개정을 검토하겠다고 밝힌 뒤 금융당국의 수장까지 상법 개정 필요성을 강조하고 나선 것이다.

이사의 충실의무는 현행 상법 382조의3에 '이사는 법령과 정관의 규정에 따라 회사를 위하여 그 직무를 충실하게 수행하여야 한다'고 명시돼 있다. 이번 개정안은 '회사를 위하여'라는 기존 문장을 '주주의 비례적 이익과 회사를 위하여'로 바꾸는 것이다. 다른 내용은 포함되지 않았다.

목적은 주주보호 강화다. 이사회에서 '쪼개기 상장'과 같이 회사나 특정 대주주에게만 이익이 돌아가는 행위를 결정해도, 현행법상 이사가 회사에 해를 끼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처벌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나현승 고려대 교수는 "지배주주가 계열사 지분을 활용해 절대적 지배권을 행사하고 사익을 편취하는 행위가 코리아디스카운트의 원인"이라며 "이사의 주주 충실 의무와 함께 감사위원 전원 분리선임, 내부거래 주주통제 강화 등을 도입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정부가 개정 논의를 본격화하면서 기업들의 반발도 거세지고 있다. 대한상공회의소는 이날 각 기업들의 상황을 고려하지 않은 상황에서 법이 개정될 경우 경영 환경이 위축될 수 있다는 우려를 밝혔다.

대한상의가 국내 상장기업 153곳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상법상 이사의 충실의무가 확대되면 인수·합병 계획을 재검토하거나 철회하겠다는 기업이 절반 이상(52.9%)을 차지했다는 것이다.

또 개정 이후 이사의 책임이 가중되면서 주주와의 소송이 늘어나고, 배임죄 처벌 등도 확대될 것으로 우려했다. 현재도 형법상 배임죄 등의 기준이 모호한 상황에서 이사의 책임까지 가중될 경우 장기적 관점의 모험투자를 꺼릴 수밖에 없어 자본시장 밸류업에도 악영향을 미칠 것으로 봤다.

전문가들은 법에서 정하는 충실의무가 추상적인 만큼 과거 선관주의 해석과 같이 개정 이후 무분별한 소송이 늘어날 수 있는 만큼, 기업이 납득할 수 있는 구체적인 경영판단원칙 등을 제시할 필요는 있다고 조언했다.

이날 이 원장이 '한국적 특수성'을 고려해 합리적인 경영판단에 대한 면책 조항이 필요하다고 말한 것도 이와 같은 맥락으로 해석된다.

정은정 금감원 법무실 국장은 "(이번 개정이)판례, 입법 등으로 주주이익 보호를 인정하고 있는 OECD 기업지배구조원칙 등 글로벌 스탠다드에도 부합할 것으로 기대한다"며 "기업활동 위축 우려에 대해서는 경영판단원칙 법제화를 통해 예측가능성 제고 및 남소 가능성 방지 등이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주주보호의 요구 정도, 이사 주의의무의 차이 등을 감안해 양자의 적용요건을 달리 설정하는 방법도 고려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다만 외국 입법 사례에 대해서는 기업과 정부의 의견이 갈리고 있다. 금감원은 이날 미국 델라웨어주 회사법, 영국 회사법 등을 예로 들며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에 주주의 이익이 포함돼 있다고 설명했다. 반면 한국경제인협회는 미국의 모범회사법, 영국 회사법, 독일 주식법 등에서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을 회사로 한정하고 있다고 해석했다.

대한상의 관계자는 "주주 중에는 지배주주도 포함되고, 비지배주주간에도 서로 의견이 다를 수 있는데 이런 문제들을 어떻게 정리할지 의문"이라며 "면밀한 검토 없이 도입하면 M&A나 신규투자는 위축시키고 경영의 불확실성만 가중하는 결과가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김남석기자 kns@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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