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에는 눈, 이에는 이…접경 군민들은 떨고 있다 [왜냐면]
이호형 | 중앙대 전자전기공학부 1학년
지난 5월28일 밤 11시, 경기도 파주에 계시는 어머니가 재난 문자를 받고 깜짝 놀라 서울에 있는 대학 기숙사에서 쉬고 있던 나에게 재난 문자를 그대로 전달했다. ‘북한 대남전단 추정 미상 물체 식별. 야외활동 자제 및 식별 시 군부대 신고’. 그 뒤에 잇따라 온 ‘Air raid’는 ‘공습’이라는 뜻을 가진 단어였기에 대한민국이 ‘종전’이 아닌 ‘휴전’ 상태의 국가임을 나에게 다시 한번 알려주는 듯했다.
이후 대학생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해당 재난 문자에 대한 학생들의 반응이 갈렸다. 학생들은 “설마 서울까지 오겠어?” “그전에 격추시키면 된다”와 같은 반응부터 “다음엔 더 위험한 거 넣으려고 실험해 본 것 같다” “언제 머리 위에서 떨어질지 몰라 산책도 못 나간다” 등 걱정과 우려의 반응도 적지 않게 보였다. 나는 접경 지역에 본가가 있는지라 최악의 가능성을 상상하며 불안에 떨었다.
나는 이번 오물 풍선이 북한이 단순히 도발 목적으로 보낸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5월28일 1차 살포에 이어 6월1, 2일 2차 살포, 6월8일 3차 살포, 이처럼 북한은 여러 차례 남한으로 오물 풍선을 살포했다. 그 비행 물체는 손쉽게 남한으로 내려왔다. 화학적 테러를 위해 어디까지 공중 물체가 날아갈 수 있는지 시험하고 있을 가능성도 염두에 둬야 한다. 북한은 남한의 사람들이 “또 더러운 오물을 담은 것을 보냈네”와 같은 생각을 하기를, 다시 말해 방심하기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다.
이에 대해 국내에서는 어떤 움직임이 있었을까. 언론 보도를 보면, 탈북민 단체 자유북한운동연합은 현충일인 6일 새벽 경기 포천에서 10개의 대형 애드벌룬을 통해 대북 전단 20만장을 북한으로 보냈다고 한다. 여기에는 케이(K)팝 음악, 드라마 등을 담은 이동식저장장치(USB) 5000여개, 1달러 지폐 2000장 등이 포함된 것으로 전해졌다. 오물 풍선에 대북 전단으로 맞불 대응하는 것이 과연 시민을 위한 것일까. 난 아니라고 생각한다. 대북 전단 살포로 시민 사이에서는 불안감이 커질 수밖에 없다. 대북 전단 살포에 자극받은 북한이 군사적 보복 조치를 취할 가능성을 커지기 때문이다. 또한 민간단체의 전단 살포는 정부와 군의 통제 밖에서 이루어져 정부의 공식적 대응과는 별개로 추가적 불안을 야기할 수 있다. 접경 지역에서는 북한과의 긴장 상태가 지역 주민의 생계와 관련한 경제 활동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전단 살포는 접경 지역에 거주하는 사람들, 서울보다 북한의 개성이 더 가까운 지역민들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행동이었다.
북한이 오물 풍선을 살포한 날, 경기도 파주 최전방을 지휘하는 육군 1사단장은 술판을 벌였다. 육군 본부가 음주 회식을 한 제1보병사단장에 대해 직무 배제 조처를 내렸다고 밝혔지만 별 의미 없는 조치일 뿐이었다. 우리 군의 지휘관이라는 사람이 전시 상황에 어떻게 대비하고 있는지 그 실상이 온 천하에 적나라하게 노출되었다. 바로 코앞에 적이 미확인 비행 물체를 날리고 있는 상황에서조차 말이다. 대한민국 군인의 이러한 모습은 군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떨어뜨렸다.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국민에게 버팀목이 되어야 했던 그 나무는 국민 앞에서 껍질이 다 벗겨진 채 쓰러졌다.
휴전 상태에서 오물 풍선을 날린 북한,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식으로 대북 전단을 날린 남한의 탈북자단체, 그 상황 속에서 술판을 벌인 지휘관, 대북 확성기 방송 재개한 정부까지 혼란스러운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이로 인해 북방한계선과 잇닿아 있는 지역들을 불안하게 만들고, 아무 관계도 없는 힘 없는 사람들만 피해를 보고 있다. 오물 풍선과 대북 전단이 하늘을 날아다니는 비상 상황에, 완전 무장을 하고 땡볕에 오물 풍선의 잔해를 확인하고 있는 병사들을 한 번이라도 생각해 줬으면 좋겠다.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지듯 두려움에 벌벌 떨고 있을 서민들과 경기 김포, 파주, 연천, 강원 철원의 군민들이 현재 느끼고 있는 그 감정들을 어루만져줄 무언가가 필요하다. 그 사람들이 마음 편히 기댈 수 있는, 품격 있는 국가가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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