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보카도와 인류세 [크리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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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입 과일이다 보니 별식으로 즐겼던 아보카도 이야기다.
동시에 인류세 문제이기도 하다.
4월까지 트리엔날레가 열렸던 오스트레일리아 빅토리아 국립미술관에서 문제의 작품을 본 그날 아침 메뉴도 아보카도 샌드위치였다.
멕시코 미초아칸주는 제왕나비가 가장 좋아하는 소나무 군락지인 동시에 아보카도 세계 최대 생산지로, 자연 생태와 인간의 이해가 충돌하는 지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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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혜승 | 미술사학자·상명대 초빙교수
수입 과일이다 보니 별식으로 즐겼던 아보카도 이야기다. 동시에 인류세 문제이기도 하다. 4월까지 트리엔날레가 열렸던 오스트레일리아 빅토리아 국립미술관에서 문제의 작품을 본 그날 아침 메뉴도 아보카도 샌드위치였다. 멜버른을 여행하며 감자 먹듯 아보카도를 실컷 먹던 와중에 그 작품은 사사로운 소비 또한 인류가 지구에 남긴 파괴적 흔적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고민을 안겼다.
인류세는 미술계에서도 꾸준히 관심 쏟는 화두다. 인간의 이기적인 행동으로 지구가 몸살을 겪고 있는 시대를 가리키는 인류세는 지질학 용어지만 오만한 인간을 반성하는 인문학적 개념으로도 통용된다. 오존층 파괴 원인을 밝혀 노벨화학상을 받은 대기화학자 파울 크뤼천(1933~2021)이 새로운 지질시대로 인류세를 제안했고, 이후 인류의 첫 핵 실험과 함께 지구환경에 급속한 변화가 시작됐다는 과학계의 중지가 모였다.
15년간의 공론화 작업 끝에 국제지질학연합은 지난 3월 인류세 도입안을 표결로 거부했다. 수십만~수십억 년 단위의 지질시대에서 100년 남짓을 공식 학명으로 지정하기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비록 불발됐지만, 인류세 도입 논의는 지구 생물들이 당면한 최대 위협이 다름 아닌 인간 존재에서 비롯됐다는 인류의 자기 확인을 가능하게 했다. 인류세의 가장 큰 특징은 인간 활동이 초래한 기후·환경 변화인데, 그 탓에 생물종 절반이 멸종될 수 있다는 경고도 나온다.
제왕나비는 그런 멸종위기종이다. 주로 캐나다에서 서식하다 가을이 되면 떼를 지어 멕시코까지 이동한다. 문제는 제왕나비가 겨울을 보낼 소나무 숲이 빠른 속도로 사라지는 데 있다. 제왕나비종의 생존을 위협하는 가해자는 물론 인간이다. 멕시코 미초아칸주는 제왕나비가 가장 좋아하는 소나무 군락지인 동시에 아보카도 세계 최대 생산지로, 자연 생태와 인간의 이해가 충돌하는 지역이다. 수익성 높은 아보카도 농장을 늘리려 인간은 나비보호구역까지 무차별로 나무를 베고 불을 질러 산림을 훼손하는 중이다.
멕시코의 디자이너 페르난도 라포스는 멜버른의 트리엔날레에서 아보카도 과육과 씨로 직물을 염색해 만든 40m 길이의 타피스트리와 껍질을 가공한 가죽 수납장 등을 선보였다. 숲속의 버터로 인기 높은 소비 이면의 참상을 고발하는 ‘아보카도 분쟁’ 프로젝트였다. 전시장 3개 벽면에 걸린 직물 작품에서는 생산량을 늘리기 위한 생태 파괴는 물론 무역 이권을 둘러싸고 벌이는 정치 세력 간 폭력 사태까지 수놓았다. 제왕나비 지킴이로 활동하다 2020년 숨진 채 발견된 오마르 고메즈 곤잘레스를 추도하는 비디오 영상도 상영됐다.
지구환경을 파괴한 책임을 묻는 인류세라는 용어가 낯설지라도 인간의 욕심으로 화를 입은 제왕나비의 떼죽음 앞에서 그 책임을 외면하기는 어렵다. 학계의 공식 승인과 별개로 인간이 만든 위기의 시대라는 명칭에도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아보카도로 염색해 만든 라포스의 카우치형 소파 ‘쉼터’는 인간도 함께 살아갈 생태를 지키려다 이해를 앞세운 인간의 폭력 앞에 목숨을 잃은 환경운동가들을 추모한다. 함께 애도한 그날 이후 아보카도를 선뜻 장바구니에 담기 어려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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