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BS 죽이기로 본 언론 탄압의 신유형 [저널리즘책무실]
이종규 | 저널리즘책무실장
수도권 유일의 지역공영방송으로 기능해온 티비에스(TBS)가 존폐의 기로에 놓였다. 서울시의회가 티비에스 재정 지원의 근거가 됐던 조례를 폐지하면서 이달부터 돈줄이 막혔기 때문이다. 티비에스는 그동안 예산의 70%가량을 서울시 출연금으로 충당해왔다. 상업광고도 할 수 없는 티비에스에 서울시 출연금은 생명줄이나 다름없다. 티비에스 구성원들은 “폐국만은 막아달라”고 호소해왔지만, 국민의힘이 압도적 다수인 시의회는 ‘내 알 바 아니다’라는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
티비에스의 존립 위기는 2022년 지방선거와 함께 찾아왔다. 서울시의회 선거에서 112석 중 76석을 차지한 국민의힘이 개원 첫날 ‘서울시 미디어재단 티비에스 설립 및 운영에 관한 조례’를 폐지하는 내용의 조례를 발의했다. 이 조례는 그해 11월 시의회를 통과했고, 한차례 유예를 거쳐 지난 1일부터 시행됐다. 티비에스는 인원 감축과 무급휴가 등을 통해 그야말로 허리띠를 졸라매며 버티는 중이다.
‘티비에스 죽이기’의 빌미가 된 것은 윤석열 정부가 비판적인 언론을 옥죄는 데 ‘전가의 보도’처럼 꺼내 드는 공정성 시비였다. ‘김어준의 뉴스공장’ 등 일부 시사프로그램이 편파적이라는 것이다. 국민의힘 소속 이종배 시의원은 2022년 9월 열린 공청회에서 이렇게 말했다. “수많은 시민이 우리가 낸 세금으로 왜 불공정 편파 방송을 들어야 하느냐고 강하게 질책하고 있다.”
왠지 귀에 익지 않은가. 국민의힘이 티브이 수신료 분리징수의 필요성을 강변하면서 내놓은 논리가 딱 그랬다. “한국방송(KBS)이 공정하게 제 역할을 다한다고 생각하는 시청자들만 수신료를 내게 하는 ‘수신료 자율납부’를 포함해, 근본적인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2022년 7월, 국민의힘 미디어특별위원회)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여당 간사이던 박성중 의원은 더욱 노골적으로 속내를 드러냈다. “언론노조가 장악한 한국방송의 편파 방송 해결 방안으로 수신료 분리징수안을 강력히 추진하겠다.”(2022년 7월, 국민의힘 원내대책회의)
이 두 사례에서 엿볼 수 있는 현 여권의 언론관은 이렇다. ‘불공정한 언론은 돈줄을 죄어 길들여야 한다.’ 문제는 그들이 강조해 마지않는 ‘공정성’ 잣대 자체가 편파적이라는 점이다. 그간의 언론 장악 폭주 과정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났듯이, 여권은 윤석열 대통령 부부 등 권력자들이 불편해할 만한 보도에 죄다 ‘불공정’ 낙인을 찍어왔다. 자기편을 비판하면 불공정·편파 보도이고, 상대편을 공격하면 정당한 권력 감시라는 식이다.
사실 공정성은 그 개념이 모호해 자의적으로 해석될 여지가 크다. 그만큼 오남용되기 쉽다. 윤석열 정부 들어 ‘가짜뉴스’만큼이나 정치적으로 오염된 용어가 공정성이다. 권력에 장악된 한국방송이 ‘불공정’을 이유로 시사프로그램 진행자들을 내쫓더니, 공공연히 ‘윤석열 지킴이’를 자처해온 보수 유튜버 고성국씨를 진행자로 발탁한 것이 단적인 예다.
물론 ‘김어준의 뉴스공장’을 두고는 언론계에서도 편향성 논란이 있었던 게 사실이다. 그러나 편향성은 저널리즘 차원에서 성찰하고 교정할 문제다. 눈엣가시 같은 프로그램 하나 있다고 35년 역사의 공영방송을 벼랑 끝으로 몰고 가는 게 온당한가. 더욱이 티비에스는 경영진이 교체된 뒤 ‘반성문’까지 쓰고 공영성 강화를 위한 혁신안을 마련하는 등 생존을 위해 발버둥치는 중이다.
티비에스 사태에서 확인할 수 있는 윤석열식 언론 길들이기의 또 하나의 특징은 불가역적인 변화를 꾀한다는 점이다. 공적 소유구조를 지닌 방송사를 민간자본의 손에 넘기는 것이다. 공적 지원이 끊긴 티비에스는 외부 투자 유치, 곧 ‘민영화’로 활로를 모색하고 있다. 정치권력에 의해 강제된 ‘홀로서기’를 위한 고육책이다. 윤석열 정부는 27년간 ‘준공영’ 체제를 유지해온 와이티엔(YTN)을 지난 2월 건설자본에 팔아치웠다. 한국방송 2티브이와 문화방송(MBC)에 대해서도 여권에서 심심찮게 민영화가 거론되고 있다. 현 정부의 미디어정책을 두고 “공영방송을 복구가 불가능한 상태로 만드는 신유형의 언론 탄압”(정준희 한양대 교수)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방송이 공적 가치는 외면한 채 이윤만 좇는 민간자본 손에 넘어가면 공공성이 뿌리째 흔들릴 가능성이 크다. 공공성이 무너지면 공정성도 훼손되기 쉽다. 건설자본에 매각된 뒤 급속하게 ‘친정권 방송’으로 퇴행 중인 와이티엔이 그 증거다. 한번 망가진 방송 공공성은 회복하기가 대단히 어렵다.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간다. 윤석열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 문재인 정부를 겨냥해 “임기 5년이 뭐 대단하다고, 너무 겁이 없어요”라고 했다. 그 말을 고스란히 되돌려주고 싶다.
저널리즘책무실장·논설위원 jklee@hani.co.kr
Copyright © 한겨레신문사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 [단독] 채상병 사건 재이첩 때 ‘임성근 입건 필요’ 암시한 국방부 조사본부
- 김건희 뒤에선 디올백 받고, 앞에선 에코백…“국민 조롱하나”
- 죽음의 얼차려 50분, 쓰러지자 가해 중대장 “일어나, 너 때문에…”
- 채상병 특검법, 야당 단독 법사위 상정…민주 “7월 초까지 처리”
- “불닭볶음면 급성 중독 위험. 폐기하시오”…덴마크, K매운맛 리콜
- “바닥도 심장도 덜덜…김정은이가 미사일 쏴부렀는 줄” [현장]
- 미 5월 소비자물가지수 3.3%↑…전달 대비 0.1%P 하락
- [단독] 규정 없어 김건희 사건 종결했다는 권익위, 과거엔 “배우자 알선수재 가능”
- 채상병 어머니의 호소…“아들 1주기 전에 진실 꼭 밝혀달라”
- 드디어 공개된 푸바오 좀 보세요~ 양손에 죽순 들고 벌러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