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대 성장 다신 못보나 4가지 '양날의 검'에 달렸다
◆ Big Picture ◆
코로나19로 한동안 멈춰 섰던 세계 경제 시계가 다시 움직였다. 팬데믹 시기에 수요는 정부의 재정 지원에 힘입어 급증하고, 생산은 중단되거나 위축된 상태에서 매우 더디게 회복하면서 수요·공급 원리에 따라 물가가 치솟았다. 게다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그리고 미·중 갈등 등에 따른 공급망 교란으로 세계 인플레이션이 심화됐다. 이를 제어하기 위해 선진국을 중심으로 금리를 크게 올려서 경기가 침체되더라도 물가를 진정시키려 했다. 그 결과 물가 상승 속도는 어느 정도 진정됐고 이제는 경기 침체가 심화될 우려가 더 높아 올해 하반기부터 선진국을 중심으로 금리를 인하해나갈 것으로 예상된다.
세계 경제는 팬데믹 이전 수준으로 활성화될까? 그럴 가능성은 매우 낮다. 팬데믹 이전 10년간은 평균 성장률이 3.3%였는데, 이는 금융위기(2008년) 이전 10년간 평균 성장률 4.0%를 하회한 수준이다. 그런데 최근 미국 콘퍼런스보드 연구소는 향후 10년간 평균 성장률을 2.5% 내외로 전망했다. 그 배경에는 무엇보다 노동 투입의 감소가 자리 잡는다. 오랫동안 세계 경제성장을 주도해온 북반구에서 고령화와 숙련 인력의 급속한 은퇴로 노동의 양적·질적 수준이 낮아졌다. 둘째로 자본 투입 기여도 감소다. 탄소 제로화에 따른 화석연료 개발 제한, 글로벌 무역의 서비스 중심화, 중국 경제의 성장 둔화와 내수 위주 성장전략 변화 등으로 자본 투자가 줄어들기 때문이다. 결국 생산성 향상이 유일한 해답인데, 단기간에 성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더욱이 현재의 고금리가 팬데믹 이전 수준으로 내려가기 힘들다. 앞서 언급한 지정학적 요인과 노동인력 감소 등 생산비용 상승 요인이 쉽게 수그러들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팬데믹 기간 동안 크게 늘어난 정부와 가계의 과잉 채무가 적절한 수준으로 축소되는 데 시간도 필요하다. 이에 따라 총수요 기반이 약해져 저성장과 고물가가 겹치는 어려운 경제 상황이 상당 기간 지속할 가능성마저 있다. 향후 세계 경제는 팬데믹 이전의 모습으로 회귀할 가능성이 매우 낮다. 일본이 대차대조표를 조정하며 겪었던 장기간 이어진 저성장과 3% 이상 고금리 유지라는 두 가지 특성을 띨 것으로 글로벌 기업들은 내다본다(맥킨지 설문조사).
향후 10년간 세계 경제를 교란할 굵직한 요인이 많다. 첫째로 기후변화와 에너지 전환이다. 지구온난화 등 기후변화는 각종 농수산물 생산 애로, 물 부족, 사막화, 산업 수요 변화 등을 수반해 기후변화 요인을 제어하려는 탄소중립 사회로의 이행을 촉구하고 있다. 유엔의 관련 기구(COP28)에서는 2030년까지 전 세계에 재생에너지 생산을 3배 확대하도록 요구하고 있다. 2050년까지 탄소중립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연평균 9조2000억달러가 투자돼야 하는데, 이는 2030년의 경우 세계총생산의 8.8%에 달한다. 에너지 전환은 재생에너지 사용 비용을 높이고 재래식 에너지 사용 생산물 수요를 하락하게 만든다. 에너지 자원을 효율적으로 이용해야 하고 저장 수단도 개발해야 한다. 게다가 전기자동차 등장 등 에너지 전환을 지탱할 구리 같은 광물자원에 대한 수요가 폭발해 혁신적인 기술이 출현하지 않는 한 자동차·철강·시멘트 등에서 생산비 상승은 불가피하다. 이처럼 탄소중립 사회로 이행하려면 너무 많은 비용이 수반된다. 주요국들이 대내 산업 변화보다 교역장벽 구축에 힘을 실을 가능성이 높고, 바이오 기술 개발 등을 통한 우회적 탄소 제어에 관심을 둘 것이다.
둘째로 세계 인구 지도의 변화다. 2050년까지 전 세계의 60세 이상 인구 비중은 현재 12%에서 22%로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국제경영개발원·IMD). 이로 인해 인도를 제외한 북반구는 인구 감소와 고령화가 심화돼 노동 공급·노동 생산성 약화, 연금제도 취약화, 공공보건 비용 증가 등에 따라 성장성이 둔화될 것으로 관측된다. 반면에 아프리카는 2030년 세계 청년 인구의 42%를 차지하게 돼 새로운 성장 가능 지역으로 주목받는다. 특히 주요 경제대국인 중국과 유럽연합(EU)은 향후 10년 내 생산가능인구가 4~5% 감소할 것이다(유엔). 이제는 광물자원이 풍부해 세계 석유 생산의 절반과 세계 인구의 절반을 차지하는 남반부의 경제적 역할이 커졌다. 에너지 전환과 세계 인구 지도 변화 등으로 세계 성장 견인역에 변화가 올 것으로 점쳐진다.
셋째로 세계 무역 구조 변화다. 세계 교역이 세계 경제 성장률을 하회하기 시작했다. 자본투자 흐름이 약해진 것과 미·중 갈등 등 지정학적 요인이 지속되는 것과도 연관된다. 그리고 세계무역기구(WTO) 등 범세계적 국제기구의 역할이 퇴조해 보편적 교역 질서도 후퇴했다. 다소 비용이 증가하더라도 물량 확보가 안전하게 보장되는 경제안보 개념이 가미된 교역 거래처 재편이 진행 중이고, 이 같은 공급망 안정화와 자유무역을 이어가기 위한 지역 단위 자유무역 협력은 강화됐다. 물론 기술집약산업이나 소수 공급국 제품의 교역 비중이 높아서 현재 공급망을 대체하는 데는 교역 조정 비용이 너무 크기 때문에 장기간이 소요되며, 간접교역도 활용하면 지정학적 갈등이 글로벌 교역량을 크게 줄이거나 분절화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한편 최종 제품 무역보다는 중간재 등을 수출하고 현지에서 조립하는 등 제조업 관련 서비스 무역(총교역의 20% 수준)이 더 활성화돼 교역 둔화 흐름을 완충했다. 인구 지도 변화와 자원 확보 어려움 등에 비춰 볼 때 향후 새로운 무역 강국으로 아세안이나 아프리카 이남 지역을 주목해야 한다. 이에 따라 수출 의존도가 높은 국가의 새로운 전략이 불가피해졌다.
끝으로 향후 10년 내 핵심 기술은 단연 인공지능(AI)과 관련된 것이다. AI 관련 신산업 성장과 친환경 전환에 따른 신규 투자 수요는 자본재를 중심으로 세계 교역 회복을 뒷받침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런데 기술 진보가 너무 빨라 기존 기술을 쉽게 무력화하고 그 방향성도 예단하기 어렵다. 과거의 경험에 의한 선형적인 사고가 통하지 않아 신기술 투자 실패 등 기업 성장에 오히려 부담이 될 수 있다. 기업은 신기술로 능률 향상, 자본 절약, 노동생산성 향상 등 혁신적 성장이 가능해지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시장 독점화 우려, 사이버 보안 취약, 후발주자의 추월 등 역풍도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더욱이 경쟁 격차가 심화돼 독점 등에 대한 정부의 시장 개입 강화도 불가피해 보인다. 특히 10년 이내 상용화될 양자컴퓨터의 등장은 컴퓨터 역량을 획기적으로 향상시킨다. 현재 슈퍼컴퓨터가 1만년이 걸려서 할 일을 양자컴퓨터는 200초 안에 해결한다. 게다가 인간 두뇌와 결합하는 방식 등 윤리적 문제도 크게 부각된다.
세계 경제를 교란시킬 요소들은 양날의 칼이다. 잘 이용하면 성장에 득이 되지만 그렇지 않으면 성장이 매우 어려워진다. 물론 에너지 전환 가속화, 디지털 기술 활성화, 기타 신기술 활용이나 세계 인구 지도와 무역 구조 변화 등은 새로운 비즈니스 요인이며 경제성장 계기로 활용할 수 있다. 하지만 그 길을 잘 찾아내고 제대로 적응해나가는 것은 매우 어려워 보인다. 최근 글로벌 기업 최고경영자의 절반 정도가 자기 기업이 현 추세대로 간다면 향후 10년 후 생존 확률이 매우 낮다고 판단한다(PwC)는 설문조사가 있었다. 향후 3년 내 발생할 기술 발전과 기후변화 등 메가 트렌드가 과거 5년간 겪었던 경험보다 더 큰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도 세계 경제의 큰 흐름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최근 한국은행이 펴낸 자료에 의하면 향후 30년 시계에서 볼 때 우리나라의 노동 투입은 줄어들고 자본 투입 증가세는 완만해질 것이다. 결국 생산성이 성장을 좌우할 텐데 중간 정도 생산성 증가율을 전제로 할 때 2021년부터 5년간 2.7%, 2026년부터 5년간은 1.9% 그리고 2031년부터 5년간은 1.1%로 꾸준히 성장률이 하락할 것으로 전망했다. 생산성 증가율이 더 높아지거나 낮아지면 성장률도 0.2~0.3% 정도 더 높아지거나 낮아진다.
세계 경제의 성장률 하락과 비교해보면 하락 강도가 다소 높다. 우리 경제의 약점이 개선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자원은 부족하고 내수시장은 협소하다. 바람·태양에너지 등 재생에너지 자원도 충분하지 않다. 그리고 중산층은 줄어들고 사회 통합 역량은 약해져 경제 규모 확대에만 경제정책의 무게를 둘 수 없다. 더욱이 정부, 기업 그리고 가계의 총부채가 국민총생산의 300%를 넘어섰고 중기적으로 더 확대될 것이다. 이에 따라 저성장 시대에 경제적 어려움이 심각해질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래도 사회 통합 기능이 회복되고 준법질서가 강화되며 각종 규제가 혁파되면 경제를 성장시키려는 에너지가 넘쳐 청년 세대가 우려하는 잃어버린 한국 경제가 현실화되지 않을 수 있다.
향후 10년을 대비하려면 인간 자본의 축적이 필수다. 어려운 여건을 뛰어넘는 방법을 찾아내고 혁신으로 실천해내려는 지적 자산을 축적해야 한다. 이를 사회적으로 가능하도록 동기를 부여하는 것이 우리가 사는 길이다. 한편 거시경제정책을 통한 수요 확대에 기대가 많지만 총생산성 증가와 산업 경쟁력 회복이 없으면 물가 상승 요인만 누적된다. 특히 글로벌 금융시장 등을 통해 주요국 거시정책의 영향을 받기 때문에 정책효과도 작다. 중국·미국 등 주요국이 앞다퉈 산업정책에 공을 들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제는 미시정책의 개발과 운용에 더 신경을 써야 하는 시대다. 이를 위해서는 경제 여건에 대한 심층 분석도 필수적이다. 기업 차원에서 시장 구조와 고객의 기호가 급변할 때는 '개념설계 역량'이 생존의 열쇠인 것처럼 국가 차원의 생존 전략도 장기적으로 치밀하게 개념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정순원 전 금융통화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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