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원 2주, 벌써 367개 법안 쏟아졌다…‘입법전쟁’의 명암

구민주 기자 2024. 6. 12. 1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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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12일 정오 기준, 133명이 1호+a 법안 발의…하루 26개 꼴
한병도, 13개로 가장 많아…‘조세특례제한’ 최다 복수 발의
21대 국회, 법안 최다 발의-최소 처리 기록…“가결률로 평가해야”

(시사저널=구민주 기자)

10일 국회 본회의장에 국민의힘 의원들의 자리가 비어있는 가운데 상임위원장 선거가 실시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5월30일 문을 연 22대 국회에선 하루도 빠짐없이 여야 간 극한의 대치 정국이 펼쳐지고 있다. 12일 기준 2주가 지나는 동안, 거대 야당은 '단독 개원' '단독 국회의장 선출' '단독 상임위 배정'을 강행했고 이에 여당은 최단 기간 내 국회 '보이콧'을 선언하며 유례없는 기록들을 남기고 있다. 21대 국회에 이어 '정쟁'을 넘어선 '전쟁'이 치러지고 있는 것이다.

국회에선 개원 후 조용하지만 치열한 또 하나의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입법 전쟁'. 300명의 여야 의원들은 개원 첫날부터 각종 법안들을 앞다퉈 발의하며 '일하는' 모습을 연출하고 있다.

발의된 법안들을 모두 볼 수 있는 국회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12일 정오 기준 22대 의원들이 발의한 법안의 수는 총 367개다(정부와 기관이 대표발의한 법안 7개 제외). 하루 평균 26.2개꼴로 새 법안이 발의되고 있는 셈이다. 의원 300명 중 133명이 1개 이상의 법안을 발의한 상태다,

개원 후 가장 먼저 국회 의안과에 접수된 법안은 서미화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대표발의한 '교통약자의 이동편의 증진법 개정안'이다. 서 의원은 개원 나흘 전부터 의안과 앞에서 밤샘 대기를 하며 '22대 국회 1호 발의 법안' 타이틀을 따냈다. 장애인 등 교통약자들도 헌법에 규정된 이동권을 동일하게 누릴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내용으로, 서 의원은 "하루속히 해결하고픈 절박한 마음이었다"고 발의 이유를 밝혔다.

서 의원의 법안을 포함해 국회엔 개원 첫날에만 47개의 법안이 쏟아져 발의됐다. 이날만 26명의 여야 의원들이 1개 이상의 법안을 발의한 가운데, 영화평론가 출신 민주당 비례대표 강유정 의원이 가장 많은 5개를 하루에 쏟아냈다. 5개의 법안의 내용의 경우 명칭은 조금씩 다르지만, 모두 'e-스포츠' '공연' '대중문화' 등 분야에 '표준계약서' 사용을 권장하는 내용이었다.

22대 국회 법안 발의 현황 ⓒ시사저널 양선영

경쟁적 발의에 '중복 내용' 다수…'정쟁' 법안 제출 기록적

2주 기간을 통틀어 가장 많은 법안을 발의한 의원은 3선의 민주당 한병도 의원이었다. 그는 영부인 등 고위공직자 배우자가 금품을 받을 경우 처벌을 하는 내용을 담은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포함해 지난 10~12일 사흘 동안만 총 13개의 법안을 대표발의했다.

그 다음으로는 4선의 민주당 한정애 의원이 11개로 많았다. 한 의원은 11일 저출생으로 인한 인구 감소 문제와 이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국가경쟁력 약화 및 존립 문제 등에 대응하기 위한 패키지 법안 9개를 한꺼번에 제출했다. 재선의 민주당 민형배 의원과 3선의 국민의힘 임이자 의원이 각각 9개로 뒤를 이었다.

복수의 의원들에 의해 가장 많이 발의된 법안은 각종 조세 감면, 세액 공제 등을 정하는 '조세특례제한법 개정안'이었다. 총 13개의 개정안이 발의된 가운데, 법안들 간 내용이 중복되는 모습을 보였다. 뒤이은 '남녀고용평등법 개정안'(11개 발의) 역시 여성의 출산 시 배우자의 충분한 휴가를 지원해야 한다는 내용이 다수 중복돼 있었다.

법안을 입안하는 단계에서 이미 제출된 다른 법안에 같은 내용이 있으면 제출하지 못하도록 국회 규칙에서 정하고 있지만 사실상 유명무실하다. 자구를 일부 수정하거나 간단한 수치를 변경해 발의하는 것까지 제한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개원과 동시에 특검 정국이 펼쳐진 만큼, '특검법안'만 이미 5개가 발의됐다. 최단 기간 복수의 특검법안이 쏟아진 건 기록적이다. 민주당에서 3개(박찬대 1개‧이성윤 2개), 국민의힘 1개(윤상현), 조국혁신당에서 1개(박은정)를 각각 발의했다. 대통령의 특검법안 거부권을 무력화하기 위해 기존의 '개별특검'이 아닌, 국회 본회의 의결 직후 발효되는 '상설특검'을 강화하는 법안도 민주당 의원들에 의해 발의돼 있는 상태다.

이에 맞서 국민의힘은 헌정사상 최단기로 '국회의장 사퇴 촉구 결의안'을 제출하는 또 다른 기록을 세운 상태다. 11일 추경호 원내대표 대표발의로, 의원 108명 전원이 해당 결의안에 이름을 올렸다.

1개 이상의 법안을 발의한 133명 의원 중엔 '1호 법안'으로 자신의 지역구에 공약했던 '지역 맞춤형' 법안을 낸 의원들이 상당수였다. 수도권 외의 지역구를 가진 여야 의원들의 발의 법안 중엔 '지역균형발전' '지역소멸방지' 등의 내용이 공통적으로 담겼으며, '재개발' '규제 폐지' 등 지역구 현안을 즉각 해결하기 위한 법안들도 다수 눈에 띄었다.

10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에서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를 비롯한 야당 의원들이 상임위원장 선출을 위한 투표를 하고 있다(왼쪽). 국민의힘 의원들은 같은 시각 국회의장실 앞에서 '우원식 국회의장 사퇴' 등의 문구가 적힌 손팻말을 들고 민주당의 상임위원장 선출 절차 강행 시도를 규탄하고 있다. ⓒ연합뉴스

"외국은 인당 10개도 발의 안 해…계량적 평가 바꿔야"

의원들의 활발한 입법 활동은 지향해야 하지만 법안 '발의' 자체에만 치중된 경쟁적 분위기에 대해선 그동안 꾸준히 지적이 제기돼 왔다. 본질은 '발의'가 아닌, 발의한 법안들의 최종 '처리' 정도라는 것이다.

일례로 지난 21대 국회에선 4년 동안 총 2만5857개의 법안이 발의돼 역대 최다 기록을 경신했다. 하지만 법안들의 최종 처리율은 36.6%를 기록(9479개)해 역대 최저치를 찍었다. 계류 상태에 있던 1만6378개 법안은 21대 국회가 막을 내리면서 자동 폐기됐다. 수년 간 국회에서 일해 온 한 의원실 보좌관은 이날 통화에서 "여야 협치가 점점 더 안 되다 보니, 이전이었으면 통과될 법한 법안들도 막혀버리는 분위기가 분명히 있다"면서도 "여전히 의원들의 의정을 평가할 때 법안 발의 '수'를 중심으로 보다 보니, 발의 경쟁이 붙을 수밖에 없는 것도 현실"이라고 전했다.

따라서 법안 발의를 '계량적'으로 평가하기보다 발의 대비 가결 비율을 중점적으로 보고 의정을 평가해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이준한 인천대 교수는 통화에서 "지금은 좋은 평가를 받기 위해, 글자만 몇 개 바꾸고 법안을 반짝 발의를 하는 경우가 많다"며 "그러다보니 발의된 법안들 중 쪼개기나 중복 현상이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고, 법안 수가 많아지니까 가결률도 갈수록 떨어지고 있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미국‧영국 등 다른 나라 의원들을 보면 임기 중에 법안을 총 10개도 발의하지 않는 경우가 상당하다. 발의의 양으로 평가하지도 않을뿐더러 기존의 법을 새롭게 바꾼다고 다 좋은 일도 아니기 때문"이라며 "법안을 발의할 때 의원들의 마인드를 변화시키려면 의정 평가 기준부터 손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편 발의된 법안들을 심사해야 할 상임위원회를 둘러싸고 여야는 극한 갈등을 벌이고 있다. 민주당이 18개 상임위 독식을 예고한 가운데, 국민의힘 의원들은 민주당에 의해 임의로 배정된 상임위에 전원 사임계를 제출, 향후 모든 상임위 활동의 보이콧을 선언한 상태다. 나날이 쌓여가는 법안들의 처리 전망은 캄캄한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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