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산 강재 휘몰아치는 철강·조선업계…'윈윈' 위한 생존 방안은

최지훈 2024. 6. 12.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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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중국 후판 수입량, 집계 이후 최대 기록
경쟁력 키우고 기술 초격차 확보 방안 시급

조선·철강업계의 후판 가격 협상 줄다리기가 지속되는 가운데 조선업계의 수입 후판 사용이 늘어나면서 철강사들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후판은 두께 6㎜ 이상의 두꺼운 철판으로 주로 선박용으로 사용한다. 매년 상·하반기 두차례 가격 협상을 진행하는데 수익성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는 만큼 매번 협상 분위기가 치열하다. 

조선사의 외국산 강재 사용이 늘어나면 국내 철강사들의 생존을 위협하는 것은 물론 결국 조선업계에도 외국산 의존도가 높아지면서 부담을 줄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따라서 두 업계의 협력이 절실하다는 조언이다. 외국에서 생산한 후판 품질이 국내와 비슷한 수준으로 올라온 만큼 철강사는 기술 혁신에 따른 품질 경쟁 우위와 가격 합리화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그래픽=비즈워치.

외국산 후판 수입 지속 증가 우려

12일 한국철강협회에 따르면 지난달(5월) 중국산 후판 수입량은 15만 3000톤으로 10만 2000톤을 기록한 4월 보다 33%(5만 1000톤) 증가했다. 이는 한국철강협회가 집계를 내린 이후 월간 기준으로 역대 최고다.

누적 기준 5월 중국산 후판은 총 58만 9000톤이 수입됐다. 중국산 후판 수입량이 늘기 시작한 지난해 5월(52만 4000톤) 대비 10% 증가한 수준이다. 일본산 후판은 같은 기간 39만 톤에서 28만 7000톤으로 감소했으나, 엔저가 지속되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향후 수입이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

양질의 해외 후판이 유입되는 동안 대비책을 마련하지 못한 국내 철강사(포스코·현대제철 등)들은 올 4월까지 후판 내수 판매로 201만 7000톤을 기록했다. 지난해(221만 6000톤)보다 10% 감소한 수치다. 

2022년 이후 조선업계의 국산 후판 물량 축소는 철강업계의 물량 축소와 노조 파업 그리고 조업인력 부족으로 인한 생산 차질에서 비롯됐다. 조선업계는 국내 조달 불확실성에 대해 선제적인 대응에 나섰고 중국의 코로나 봉쇄에 따른 수출 제한 등으로 대규모 외국산 후판 거래가 불가피했다는 입장이다.

HD현대중공업이 후판을 이용해 도크에서 선박 건조에 매진하고 있다./사진=HD현대중공업 제공.

조선-철강 장기적 협력 절실

문제는 이런 상황이 지속될 경우 국내 철강사는 물론 외국산 의존도가 커지는 조선업계에도 장기적으로 부담이 될 수 있다는 부분이다. 철강과 조선 산업은 국내 주력산업인데다 해운업에도 영향을 미치는 만큼 두 산업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해 전략적 협력이 중요하다. 

이에 대해 한국산업연구원은 최근 발간한 보고서에서 철강·조선 산업이 거래에서 발생할 수 있는 갈등과 부가가치의 해외 유출을 막고 상호 이익을 증대시킬 수 있는 장단기 추진 방안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거래 갈등과 국부 유출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단기 수익보다는 장기적 관점에서 가격 협상과 후판 공급 안정화를 위한 전략을 수립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철강-조선 산업 상생을 위한 전략적 협력 방안 공동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공급자(철강사)와 수요자(조선사)가 제품 가격 선정에 필요한 지표를 설정하고 해당 지표별 중요도에 따라 비중을 조절해 가격을 도출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한다. 또 후판 공정 과정을 통해 생산되는 압연강판 중 하나인 박물재(두께 ~15mm)에 대한 생산 종류를 차별화하고 전문화해 외산과의 품질 경쟁에서 우위를 선점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기업과 정부가 합동으로 추진해야 할 부분은 더 많다. 민과 관이 손발이 맞아야만 제조업계가 무너지는 것을 막을 수 있다. 한국산업연구원은 먼저 국제적 저탄소 기조에 맞춰 신규 프로젝트를 발주하고 철강, 조선, 해운사가 실증 사업을 진행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해야 한다고 분석했다. 

아울러 물류 파트에서 스마트 팩토리를 추진해 원가에 반영되는 비용을 최소화하고 경제적 토대 위에 철강·조선사 협의체를 설치해 산업 간 협력 강화와 원가의 상대적 균등 배분을 이뤄내야만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이분법적 접근 아닌 철강·조선 경쟁력 동시에 키워야

조선·철강업계도 비슷한 시각을 견지하고 있다. 한 철강업계 관계자는 "철강 생산의 안정성을 기하기 위해 포트폴리오를 구성하는 데, 외산을 가격 대비 품질이 괜찮다는 이유만으로 비중을 높이다 보면 국내 철강 생태계가 위협을 받게 되고 심할 경우 무너질 가능성도 높다"며 "이는 국가적 차원에서 마이너스가 될 것"이라고 토로했다.

국내 제조업 생태계를 지키기 위해 조선사들이 어려웠던 시절 철강사가 원가의 일부를 부담한 것처럼 구매자인 조선사도 장기적인 사이클을 감안할 때 가격이 저렴한 외산 구입을 늘리기보다는 일정한 양을 구매 해줄 필요성이 있다 설명이다.

아울러 양 산업계가 국산이냐 외산이냐라는 이분법으로 접근하기 보다 두 산업의 경쟁력 제고와 기술 초격차를 뒷받침할 수 있는 효율적인 원자재 공급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판단이다. 

앞선 관계자는 "가격을 놓고 국내 안에서 다투는 것보다 서로 손을 잡고 원료나 수출처를 찾는데 함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철강·조선업 사정에 밝은 재계 관계자도 "후판과 조선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인 만큼, 양측이 윈윈 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면서 공생관계로 나아가야 한다"며 "철강사와 조선사가 고부가가치 특수 강종과 일반 후판의 밸류 창출 프로세스를 면밀하게 점검하고 분석해 장기적으로 수익창출에 도움이 되는 방향을 모색해야 한다"고 밝혔다.

최지훈 (jhchoi@bizwatch.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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