룰에서도 판에서도, 총선 참패 반성 찾아볼 수 없는 국힘 전당대회
국민의힘이 단일지도체제를 유지하고 당대표 선출시 당원투표 대 여론조사 비중을 8대2나 7대3으로 하기로 했다. 당내엔 지난 총선을 이끌었던 한동훈 전 비상대책위원장이 출마해 새 당대표에 오를 것이란 전망이 많다. 전당대회 룰에서도, 판세에서도 국민의힘이 총선 참패를 반성하고 혁신하겠다는 의지가 보이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온다.
여상규 국민의힘 당헌당규개정특별위원장은 12일 여의도 당사에서 마지막 회의를 마친 후 기자들과 만나 “지도체제는 개정안을 내지 않기로 했다”고 밝혔다. 전당대회에서 당대표와 최고위원 선거를 따로 치르고, 당대표 선거 1위가 대표에 오르는 현재의 단일지도체제를 유지하기로 한 것이다. 그는 “단일지도체제, 부대표를 두는 복수지도체제, 집단지도체제 등을 논의했지만 짧은 기간 활동하는 특위에서 결정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민주당에서 개정 논란이 일고 있는 당권·대권 분리 규정도 현행대로 유지하기로 했다.
현행 당원투표 100%인 지도부 선출 방식은 당원투표 비율을 낮추고, 여론조사를 30%나 20% 반영하기로 했다. 위원 7명 중 3명이 30%, 3명이 20%, 1명이 중립이어서 하나의 안으로 좁히지 못하고 두 개의 안을 모두 지도부에 넘겼다.
국민의힘엔 총선 참패 후 차기 전당대회를 혁신적으로 치러야 한다는 주장이 많았다. 쇄신파 모임인 ‘첫목회’에선 지도체제를 집단지도체제로 바꿔 ‘드림팀’처럼 당내 유력 인사들이 지도부를 함께 구성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집단지도체제는 하나의 선거에서 1위가 대표를 맡고, 차점자들이 최고위원을 맡는 방식이다. 민심을 더 반영하기 위해 여론조사 비율을 50%로 해야 한다고도 했다.
이같은 주장은 개정안에 반영되지 않았다. 결과를 떠나 당헌·당규 개정 과정에서 ‘혁신’을 화두로 한 논쟁이 확산하지 못한 것 자체가 문제로 지적된다. 집단지도체제는 당이 ‘봉숭아학당’처럼 혼란스러워진다는 이유로 초반부터 논의에서 밀려났다. 황우여 비상대책위원장이 제시한 승계형 단일지도체제(부대표를 두는 복수지도체제)도 잠재적 당권주자와 당내 주요세력이 반대해 제대로 논의되지 못했다.
여론조사 반영 비율도 전향적이지 않다. 여론조사 30%는 당원투표 100%로 바꾸기 전으로 돌아가는 수준이다. 여론조사 20%는 더불어민주당(25%)보다 낮은 수치다. 여론조사의 역선택 조항도 유지된다. 민주당 지지자의 역선택을 막기 위해 국민의힘을 지지한다는 응답자의 의견만 반영하는 것이다. 당원과 국민의힘 지지층의 지지를 받는 대표를 뽑는 시스템을 유지한 셈이다.
당내에선 혁신을 보여주기에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이재영 첫목회 간사는 이날 기자와 통화하면서 “한심하다는 생각이 든다”며 “이대로면 변화를 보여주자는 의미는 많이 퇴색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다른 첫목회 인사도 통화에서 “그냥 김기현 전 대표 당선 이전으로 돌아간 것으로는 아무도 ‘당이 쇄신했다, 변했다’고 느낄 수 없다”고 비판했다.
안철수 의원은 이날 기자들과 만나 “민주당보다 낮은 비율로 당의 반성이나 변화 의지를 보여주기엔 부족하다”며 “30%나 50%안이라도 받아서 민심을 제대로 받들겠다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한 분이 벅찰 때 다른 분들이 힘을 보태는 게 건강한 당정 관계를 만든다”며 집단지도체제를 선호하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전당대회의 관심은 한 전 위원장 출마 여부에 쏠리고 있다. 어떤 규칙으로 해도 한 전 위원장이 출마하면 당선이 유력한 분위기다. 한 전 위원장은 최근 ‘지구당 부활’을 띄워 원외 당협위원장들 지지세를 다진 뒤, 자신이 공천장을 준 초선 의원들로 접점을 넓히고 있다. 임기 시작할 때 초선 의원들에게 축하 메시지를 보냈고, 최근 김상욱·정성국 의원 등과 식사를 했다. 한 전 위원장과 자주 소통하는 한 의원은 통화에서 “한 전 위원장이 아직 결정은 못했다고 했지만 내 생각엔 출마 의지가 강해지고 있다”며 “다음주 정도면 (출마) 뜻을 밝힐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친윤석열계는 사석에서 한 전 위원장 출마를 비판하지만 공개 발언으로 맞서지는 못하는 모습이다.
한 전 위원장은 최근 연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글을 올리며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향한 공세에도 적극 나서고 있다. 연임이 확실시되는 이 대표의 맞상대로 자신을 매김하는 것으로 해석됐다. 총선 때 ‘이조(이재명·조국)심판론’으로 민심에서 멀어졌다는 평가를 받았는데, 다시 ‘이재명 때리기’를 들고 나왔다는 비판도 당내에서 나온다.
조미덥 기자 zorro@kyunghyang.com, 문광호 기자 moonlit@kyunghyang.com, 민서영 기자 min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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