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일 휴진" 빅5 동참, '무기한 휴진'까지 예고…의료 멈추나
다음 주 한국 의료가 멈출 것이란 위기감이 고조된다. 이른바 '빅5 병원' 중 세브란스병원도 마지막으로 휴진 대열에 합류했다. 대한의사협회(의협)는 오는 18일 총파업을 하겠다고 선언, 동네 병·의원이 휴업에 참여할 경우 우려대란이 불가피하다. 중증 질환자들은 넉 달째 접어든 의정 갈등이 해소되지 못하는 상황에 '무기한 휴진'까지 거론되는 것에 절망을 넘어 분노를 표출하고 있다.
12일 의료계에 따르면 의협은 정부의 의대 증원 정책 중단을 목표로 오는 18일 하루 개원의·봉직의 등 전 직역이 참여하는 전면 휴진에 돌입한다. 같은 날 오후 2시 서울 여의도공원에서 총궐기대회를 열어 세를 과시할 예정이다. 이에 앞서 서울대병원(서울대의대)은 비상대책위원회 주도로 오는 17일부터 응급실·중환자실 등 필수 의료 분야를 제외한 무기한 휴진을 시행할 예정이다.
현재까지 서울대병원과 서울아산병원(울산대의대), 세브란스병원(연세대의대), 삼성서울병원(성균관대의대), 서울성모병원(가톨릭대의대) 등 '빅5 병원' 전체가 휴진 참여 의사를 밝혔다. 고려대안암·구로병원(고려대의료원) 등 주요 대학병원도 의협 회원으로서 휴진에 가세한다. 의대 교수 단체인 전국의과대학교수협의회(전의교협)와 전국의과대학교수 비상대책위원회(전의비)도 의협 주도 휴진에 동참한다는 방침이다.
휴진이 단발성으로 끝나지 않을 수도 있다. 연세대의대 교수들은 이날 결의문을 내고 하루 휴진에 이어 정부가 의대생·전공의 복귀를 위해 가시적 조처를 하지 않을 경우 27일부터 필수 의료 분야를 제외한 무기한 휴진을 시행한다고 예고했다. 무기한 휴진을 공식화한 건 빅5 병원 중 서울대병원에 이어 두 번째다. 8개 산하 병원이 있는 가톨릭대의대 교수들도 의협 휴진에 참여한 후 정부의 대응에 따라 오는 20일 전체 교수회의를 열어 무기한 휴진 등 추가 행동을 논의하기로 했다. 울산대의대 교수들은 18일 휴진과 함께 추가 휴진을 진행할지를 묻는 설문조사를 진행하고 있는데 결과에 따라 역시 무기한 휴진에 나설 가능성도 있다.
의대 교수들은 중증·응급 환자 진료는 유지하되 경증·신규 환자를 받지 않고 정해진 수술을 연기하는 방식으로 휴진을 진행할 예정이다. 입원 중인 환자도 그대로 돌볼 것으로 전해진다. 각 대학병원의 휴진 참여율은 현재로서 가늠하긴 어렵다. 별도의 투표 없이 의협 결정에 따라 휴진에 나서는 대학병원도 있다. 다만 의협의 총파업 투표에 유효 투표자 11만1861명 중 63.3%인 7만800명이 참여했는데 이 중 의대 교수가 9645명으로 비중이 작지는 않았다. 이 투표에서는 전체의 73.5%가 6월 중 휴진을 포함한 단체행동에 참여하겠다고 응답했다.
지금까지 의대 교수 중심의 휴진과 달리 개원의, 봉직의 등 의사 전 직역이 총파업에 나선다는 점에서 의료대란 우려가 크다. 휴진이 특정 진료과에 집중될 경우, 한꺼번에 환자가 발생하면 '병원 뺑뺑이'를 돌며 제때 처치를 못 받을 가능성이 있다. 특히, 중증 환자는 대학병원에 가지 못하는 경우 규모가 있는 종합병원에서 처치를 받아야 하는데 이곳마저 총파업 참여율이 높으면 인력 부족으로 환자 수용에 제한이 따를 수 있다.
환자가 헛걸음하는 등 병원 내부의 혼란도 예상된다. 의협이 지난 9일 총파업을 결의하고 10일도 안 돼 실행에 나서는 만큼 예약 변경 등이 제대로 이뤄질지 미지수다. 병동 통폐합·무급휴가 등으로 피해를 본 간호사·직원들은 의사에 대한 적대감이 상당하다. 분당서울대병원 노조는 앞서 휴진 시 예약 변경에 나선 간호사·직원이 폭언·감정노동에 노출됐다며 이번엔 이 업무를 맡지 않을 계획이라고 밝혔다. 반면에 일각에서는 예약 변경이 어려운 환자가 다수일 경우 개원의, 의대 교수 등이 환자 불편 등을 이유로 휴진 참여를 재고할 수도 있다고 전망한다.
100일 넘게 이어진 의정 갈등에 환자들은 불안과 걱정을 넘어 분노를 표출하고 있다. 김태현 한국루게릭연맹 발행인은 12일 서울대병원 후문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생명을 담보로 한 의사 집단행동의 결과로 골든타임을 놓쳐 많은 환자가 죽음으로 내몰렸다"며 "소수의 기득권과 특권을 유지하기 위해 국가와 국민을 혼란 속에 빠뜨리고 무정부주의를 주장하는 의사 집단을 정부는 더 이상 용서해서는 안 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변인영 한국췌장암환우회장은 "조여오는 죽음의 두려움 앞에 목소리조차 내지 못하고 이 사태가 끝나기만을 기다렸지만 그 결과가 교수들의 전면 휴진이라고 한다"라며 "저희의 생명을 담보로 무엇을 얻으려고 하는 것이냐"고 반문했다. 김성주 한국중증질환연합회 회장은 "환자단체들은 중증질환자의 피해 사례가 아니라 사망 사례를 접수받을 처지에 놓였다. 중증질환자는 절망의 구렁텅이에 빠졌다"며 "집단 휴진으로 중증 환자를 죽음으로 몰아가선 안 된다"고 호소했다.
중증질환연합회는 이날 정부와 의료계, 정치권에 전공의 즉각 복귀와 이를 위한 협의체 구성, 환자단체의 의료정책 참여 확대, 환자 안전에 관한 법률 제정 등 7가지 요구사항을 제시했다. 이 중에는 사직 교수 사표 수리나 외국인 의사 도입의 적극 검토 등이 포함됐다. 김 회장은 "환자들은 불이익을 당할까 봐 제대로 항의조차 할 수 없었다"며 "한 번도 고소·고발을 생각해본 적이 없지만, 환자가 우리 단체에 (휴진 등으로 인한 피해를) 이야기하면 검토해볼 생각이 있다"고 법적 대응을 시사하기도 했다.
박정렬 기자 parkjr@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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