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간 2배 가까이 증가한 성조숙증...‘키 성장’ 치료 탓?

이정아 기자 2024. 6. 12. 1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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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장호르몬 주사 치료는 같은 기간 3.5배 늘어
심각한 성조숙증 아니면 약물치료 효과 없어
최근 성조숙증 치료가 필요하지 않은데도 치료받는 어린이가 늘었다는 지적이 나왔다. 사회가 큰 키를 선호하면서 질병 치료 외 목적으로도 약물 사용이 늘었다는 얘기다./픽사베이

최근 성조숙증 치료가 필요하지 않은데도 약물 주사를 맞는 어린이가 늘었다는 지적이 나왔다. 성조숙증은 사춘기 시기가 일찍 온 탓에 2차 성징이 조기에 나타나는 현상이다. 큰 키를 선호하는 사회 분위기 탓에 성조숙증이 아니라 키를 키우려고 약물을 사용하는 사례가 늘었다는 것이다.

박혜원 약학정보원 학술자문위원(전북대병원 약사)은 지난 4일 약학정보원 온라인 학술정보지 ‘팜리뷰’에서 “2022년 성장호르몬 주사 치료가 2018년 대비 3.5배 늘어 성조숙증 약물 치료에 주의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성조숙증은 8세 미만 여자 어린이가 가슴이 커지거나 음모가 나오고, 9세 미만 남자어린이가 음경이 커지거나 고환이 4mL 이상으로 커지는 등 이른 나이에 2차 성징이 나타나는 질환이다. 사춘기가 빨리 시작하면 성장판이 일찍 닫혀 성인이 됐을 때 키가 작을 수 있다. 이 때문에 아이들이 심각한 성조숙증이 아닌데도 키를 자라게 하기 위해 약물 치료를 받는다는 것이다.

◇한국 성조숙증 환자는 덴마크 10배

지난 4월 국민건강보험공단이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성조숙증 환자는 2018년 10만1273명에서 2022년 17만8585명으로 4년 동안 1.76배 늘었다. 2000년대 초반과 비교하면 그 수치는 더욱 차이 난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자료에 따르면 2008년부터 2020년까지 성조숙증 치료제 사용이 여아는 16배, 남아는 83배 증가했다. 95%가 여아였다.

하지만 박 위원은 이 중 성조숙증 치료가 필요하지 않고 단순히 키를 키우기 위해 치료 받는 경우도 많다고 주장했다. 박 위원은 “키 성장 목적으로 성조숙증 검사와 진단이 활발해지면서 약물 치료가 늘었다”며 “치료가 필요한 어린이에게만 적절한 용량을 정확한 용법으로 사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양승 한양대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도 성조숙증 치료 증가에 의문을 제기했다. 양 교수는 “예를 들어 덴마크에서 나온 성조숙증 관련 통계를 살펴보면 국내만 환자가 급증했음을 알 수 있다”고 말했다. 덴마크는 인구 10만명당 성조숙증 환자가 2008년 10~14명에서 2018년 14~15명으로 늘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심평원) 자료에 따르면 한국은 2020년 성조숙증 환자가 10만명당 170명으로 덴마크의 10배가 넘는다.

양 교수는 “덴마크도 1990년 후반부터 성조숙증이 늘긴 했는데, 한국처럼 많지는 않다”며 “같은 기간 한국에서만 성조숙증 환자가 급증한 원인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성조숙증 기준은 만 8세 미만인데) 만 9세가 다 돼서 성조숙증을 진단받는 여아가 많아졌다”고 의문을 제기했다. 다른 아이보다 2차 성징이 빨리 나타나는 것일 뿐, 질환으로써 치료해야 할 성조숙증은 아닐 수도 있다는 얘기다.

심평원에 따르면 만 8~9세에 성조숙증으로 진단 받은 여아는 2008년 10만명당 100명에서 2020년 1400명으로 10배 이상 늘었다. 만 9~10세 남아도 마찬가지다. 2008년 10만명당 1.2명에서 2020년 100명으로 80배 이상 늘었다.

양 교수는 “성조숙증이라고 해서 반드시 약물 치료를 받을 필요는 없다”며 “진행이 빠른 성조숙증과 달리 진행이 느린 성조숙증은 약물 치료를 해도 사춘기를 늦추는 데 큰 효과가 없는 것으로 학계에 알려졌다”고 말했다. 키 때문에 성조숙증 치료를 받는다고 해도 최종 키에는 지대한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얘기다. 그는 “성조숙증으로 진단 받은 아이들을 전부 약물 치료해야 하는지 의사들이 고민을 해야 할 시점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성조숙증 원인은 유전·환경 복합

성조숙증이 발생하는 원인은 아직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학계는 서구화한 식문화와 소아비만, 스트레스, 환경호르몬 등을 꼽는다. 최근 국내 연구진이 대기오염 역시 성조숙증을 유발할 수 있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밝혀냈다.

하은희 이화여대 환경의학교실 교수와 김혜순 이대서울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 공동 연구진은 2007~2009년생 국내 남녀 약 120만명을 대상으로 2013~2019년 국민건강보험 자료를 분석해 이 같은 사실을 알아냈다. 이 연구 결과는 지난 4월 16일 국제 학술지 ‘환경 연구’ 온라인판에 실렸다.

연구진은 아이들이 만 6세가 되는 시점부터 성조숙증 발생 여부와 대기오염 노출 여부를 확인했다. 분석 결과 오랫동안 초미세먼지(PM2.5)와 미세먼지(PM10), 이산화황(SO₂), 오존(O₃)에 노출된 아이들이 성조숙증이 나타날 위험이 컸다. 남아보다 여아에게 영향이 더 큰 것으로 나타났다.

김혜순 교수는 “단순히 한 가지 원인 때문에 성조숙증이 생기지는 않는다”며 “유전적 요인과 함께 비만이나 음식, 제품에 포함된 환경호르몬 같은 후천적인 요인이 복합적으로 영향을 미친 결과”라고 설명했다. 김 교수는 “이번 연구는 대기 중 미세먼지에 있는 환경호르몬이 폐를 통해 몸속으로 들어와 성조숙증을 일으키는 요인 중 하나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밝혀냈다는 데 의미가 크다”고 말했다.

참고 자료

Environmental Research(2024), DOI: https://doi.org/10.1016/j.envres.2024.118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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