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이드 스토리]서학개미 피해 증권사가 나 몰라라?…사실 따져보니
주문 제한하는 '투자자 보호 장치' 없어 피해 생겼다는 지적
주문 특징 인지못한 투자자 실수지만 증권사 피해보전 결정
최근 뉴욕증권거래소(NYSE)에서 일부 종목의 주가가 낮게 표시되는 오류가 발생하면서 일부 국내 투자자들이 대규모 미수금을 떠안게 됐습니다. 잘못 표시된 주가가 아니라 정상 주가에 거래가 체결된 탓입니다.
당황한 투자자들은 거래한 증권사에 피해에 대한 책임을 져달라고 요구했습니다. 미수 거래가 발생하지 않는 계좌인데도 불구하고 미수금이 생겼다는 점에서입니다. 일각에서는 시장가 주문을 제한하는 투자자 보호장치를 마련하지 않아 피해를 키웠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그렇다면 미수금은 대체 왜 발생했는지, 증권사들은 시장가 주문을 왜 제한하지 않았는지 이유를 확인해 보겠습니다.
'시장가 주문' 투자자, 대규모 미수금 발생
지난 3일 오전 9시 30분에서 11시 45분 사이(뉴욕 현지 시각) NYSE의 실시간 주식 시세 제공에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약 40개 종목의 주가가 99%가량 낮은 가격으로 표기된 것인데요.
일순간에 버크셔해서웨이A의 주가는 전 거래일보다 99.97% 하락한 185.1달러, 바릭골드는 98.5% 하락한 0.25달러, 뉴스케일파워는 98.5% 낮은 0.13달러로 표시된 겁니다.
국내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NYSE가 제공하는 데이터를 받는 국내 증권사의 주문 화면에서도 잘못된 시세가 그대로 표시됐습니다.
주가가 99% 저렴한 가격으로 보이는 상황에서 일부 투자자들은 매수에 나섰습니다. 그러나 폭탄 세일 기회를 잡을 수 있었던 투자자는 없었습니다. 문제를 인지하고 있던 NYSE가 정상적이지 않은 가격으로 들어온 주문을 모두 취소했기 때문입니다.
다만 NYSE가 가격을 별도로 지정하지 않는 시장가 주문 방식으로 접근한 투자자의 거래는 정상적으로 처리하면서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투자자가 기대한 99% 하락한 가격이 아닌 정상 주가에 매수를 체결해 준 겁니다. 이에 국내 증권사 계좌에 있는 금액만으로는 이 주문량을 감당하기 어려웠고 고액의 미수금이 생겼습니다.
쉽게 설명하자면 해외주식 계좌에 1300달러를 보유한 투자자 A씨가 있었습니다. A씨는 뉴스케일파워 주식이 0.13달러로 하락한 상황에서 1만주를 시장가로 매수했습니다. 일차적으로 주문이 가능한지 증거금을 확인해야 할 국내 증권사 시스템에서는 NYSE 오류로 0.13달러로 인식됐기에 주문이 진행됐습니다.
주문을 전달받은 NYSE는 투자자가 가격을 지정하지 않고 시장가격으로 매수하겠다고 했으므로 잘못 표시된 가격(0.13달러)이 아닌 정상가격인 8달러로 거래를 체결해 줬습니다.
즉 A씨는 8만달러(8달러×1만주)가 필요한 거래에 1300달러만을 보유한 채 거래를 진행한 셈이 됐고, 7만8700달러의 미수금이 발생하게 된 겁니다. 더구나 주가가 하락했기에 받은 주식을 다시 팔아서 미수금을 메꿀 수도 없었습니다.
투자자들은 미수거래를 신청하지 않았는데도 미수금이 발생했다며 항의했습니다. 증권사가 투자자 피해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는다면서 언론에 제보하기도 했죠.
그렇다면 문제를 일으킨 시장가 주문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면서 정말 증권사가 책임을 져야 하는지, 미수금은 대체 왜 발생한 것인지 확인해 보겠습니다.'시장가 주문' 제한하지 않아 피해 커졌다?
투자자들은 해외주식 시장가 주문을 '제한 없이' 제공하고 있다는 점에서 키움증권과 미래에셋증권이 투자자 보호에 서툴렀고, 피해를 키웠다고 지적합니다.
다른 증권사가 현재 가격의 ±5~7% 수준에서 시장가 주문이 가능하도록 제한하거나, 시장가 주문 자체를 못 하도록 한 것에 비해 투자자 보호장치를 마련하지 않았다는 것이죠.
그러나 시장가 주문의 개념을 정확히 이해한다면 '제한'하는 방식이 옳다고 하기엔 무리가 있습니다. 특정 상황에서는 오히려 투자자의 피해를 더 키울 수도 있습니다.
시장가 주문은 매매할 주식 수량만 정하고 가격은 별도로 지정하지 않는 방식입니다. 현재 시장에서 거래중인 호가 그대로 체결되기에 투자자가 의도한 가격보다 불리한 가격으로 체결될 위험성이 있지만 주문을 빠르게 체결할 수 있는 장점도 있습니다.
투자자가 유리한 매매 호가를 선택하는 것보다는 빠른 체결이 필요한 상황에서 선택할 수 있는 방식인 셈이죠.
예를 들어 부진한 실적발표, 제품의 중대한 하자 발생 등 주가를 급락시키는 요인이 발생했을 때 주식을 빠르게 팔아치우고 싶을 겁니다. 이때 지정한 가격보다 주가가 계속해서 하락한다면 지정가 주문이 잘 체결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시장가 주문으로 빠른 체결을 노려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주문 범위가 제한돼 있다면 급락에도 전혀 대응할 수 없게 됩니다.
한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시장가 주문은 빠른 체결을 위한 가장 강력한 주문 방식"이라며 "일정한 범위 안에서 주문이 가능하도록 설정해 놓은 것은 진정한 의미에서 시장가 주문이 아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증권사가 안전장치 마련 안 해 피해 커졌다?
즉 엄밀히 말해 시장가 주문은 가격 상관없으니 빠르게 시장가 그대로 체결하겠다는 의미입니다. 이처럼 시장가 거래의 특성을 확인하면 미수금이 왜 발생했는지도 알 수 있습니다.
정확한 가격을 지정하지 않고 계속해서 변화는 시장가 그대로 거래되기에 보유 자금을 넘어서는 가격에도 거래가 체결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보유 금액보다 더 큰 비용이 필요해 미수금이 발생할 수밖에 없는 것이죠.
미국 주식이 아닌 국내 주식에서도 이론적으로 똑같은 일이 나타날 수 있습니다. 다만 가격 변동폭을 ±30%로 제한한 국내 증시에서는 갑작스러운 주가 변동에도 미수금이 발생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상·하한가가 없는 미국 증시는 시장가 주문시 가격이 들쑥날쑥할 수 있는 문제가 있기에 최소한의 안전장치를 증권사별로 마련하고 있습니다.
키움증권과 미래에셋증권도 시장가 주문으로 발생할 수 있는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안전장치를 마련해 놨습니다. 시장가 주문시 현재 가격의 130%에 해당하는 매수증거금을 확인하고 부족하다면 주문이 나가지 않도록 했습니다. 현재 가격이 100달러인 주식에 시장가 주문을 낼 때 계좌에 100달러만 있다면 안되고 130달러가 있어야 주문이 가능하다는 뜻이죠.
일반적으로 미국 주식을 거래할 때는 지정가 주문을 주로 활용합니다. 앞서 설명한 것처럼 불리한 가격에 거래가 체결될 수 있는 위험성이 크기 때문이죠. 안전장치를 마련한 것도 이러한 이유이기도 하고요. 따라서 증권사 차원에서도 시장가 주문에 대한 유의사항을 투자자에게 알리고 있습니다.
키움증권은 투자자가 시장가 주문 버튼을 누르면 유의사항을 즉시 안내하도록 설정했습니다. 미래에셋증권도 유의사항을 확인할 수 있도록 안내하고 있습니다.
이번 사례는 급격하게 주가가 하락한 상황에서 투자자가 이를 인지하고 저렴한 가격으로 주식을 빠르게 사들이기 위해 시장가 주문을 냈으나 그 위험성에 대해서는 완전히 파악하지 못해서 발생했던 문제로 보입니다.
애초 이러한 상황이 발생한 원인은 애초 NYSE가 시세를 제대로 제공하지 못해서 발생했습니다. 즉 책임을 질 주체는 NYSE입니다. 국내뿐 아니라 해외 증권사에서도 이번 전산오류로 인한 시장가 주문 미수금 사태가 발생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다만 개인투자자가 NYSE를 상대로 보상을 받기는 어려운 일입니다. 앞서 지난해 발생한 전산오류 사태에도 NYSE는 보상을 해주지 않았습니다.
이에 증권사는 고객관리 차원에서 이번 사례로 인한 피해에 대해 보전해 주기로 결정했습니다. 키움증권은 고객의 피해액을 보전하고 있으며 미래에셋증권은 피해 보전을 긍정적으로 검토하고 있다고 알렸습니다.
키움증권 관계자는 "NYSE에서 오류가 발생했을 때 피해를 보상받는 것이 현실적으로 힘들기에 고객의 손실을 먼저 보전해 드리기로 했다"고 설명했습니다.
최성준 (csj@bizwatch.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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