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이 망해? 좋아해서 그냥 하는 언니들 얘기 좀 들어봐

양선아 기자 2024. 6. 12. 1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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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는 합쳐 270살, 책 만든 지 150년
나이·경력 비슷한 ‘출판하는 언니들’
일 계속하기 위해 생존 체력 기르고
서울국제도서전도 공동참가하기로
‘출판하는 언니들’이라는 이름으로 새로운 시도를 모색하는 1인 출판사 대표 5명이 10일 오전 서울 종로구 명륜동에 모여 자신들의 이야기를 담은 소책자를 들고 사진을 찍고 있다. 앞줄 왼쪽부터 박숙희 메멘토 대표, 최지영 에디토리얼 대표, 뒷줄 왼쪽부터 박희선 가지 대표, 이현화 혜화 1117대표, 전은정 목수책방 대표.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출판이 망한다고요? 저희 다섯 나이 합치면 270살이고 책 만든 세월 합치면 150년입니다. 1인 출판사 차려 모두들 6~10년 버텼어요. 커피값 빵값 걱정 없이 쓰고요. 지금까지 즐겁게 일해왔고, 앞으로도 이 일 어떻게 계속할까 궁리중입니다. 중요한 건 좋아하는 일을 ‘계속하는 힘’ 아닐까요?”(이현화 혜화1117 대표)

출판 산업이 저물고 있다는 침체된 분위기 속에서도 “출판은 너무 매력적이고 즐거운 일”이라고 왁자지껄 떠들고, 오는 6월 말 열리는 국내 최대 책축제 ‘서울국제도서전’에서 재밌는 ‘판’을 벌여보겠다는 이들이 있다. 1970년대생, 1990년대 출판계 입문, 1인 출판사 운영하는 여성 대표라는 공통점을 바탕으로 모인 ‘출판하는 언니들’이다.

‘출판하는 언니들’은 생태·여행·라이프스타일 관련 책을 만들어온 ‘가지’의 박희선 대표, 청소년 책부터 인문사회 교양서를 두루 펴내온 ‘메멘토’의 박숙희 대표, 식물·정원·환경 분야 책에 주력해온 ‘목수책방’의 전은정 대표, 과학·인문학·에스에프(SF)를 아우르는 ‘에디토리얼’의 최지영 대표, 인문교양·문화예술 분야의 독창적인 책을 내온 ‘혜화 1117’의 이현화 대표가 뭉쳐 만든, 일종의 공동 브랜드다. 지난 10일 서울 종로구 혜화동에 자리잡은 한옥 출판사 혜화1117에서 이들을 만나 30년여 동안 자신의 일을 사랑하며 지내온 이들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출판하는 언니들’이라는 이름으로 새로운 시도를 모색하는 1인 출판사 대표 5명이 10일 오전 서울 종로구 명륜동에 모여 사진을 찍고 있다. 앞줄 왼쪽부터 박숙희 메멘토 대표, 최지영 에디토리얼 대표, 뒷줄 왼쪽부터 박희선 가지 대표, 이현화 혜화 1117대표, 전은정 목수책방 대표.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출판은 제게 여행하는 느낌과 비슷해요. 지금은 여행보다는 산책자 같은 느낌? 사무실을 두지 않고 카페에서, 여행지에서 노트북으로 일을 합니다. 회사를 가방에 넣고 다니는 셈이지요. 일과 삶이 분리되지 않아요. 책 만들다 산책하고 또 다시 일하고…. 그런 자유로움이 이 일의 매력이지요.”

박희선 가지 대표는 자신만의 이야기로 삶의 형식을 만들어내는 사람을 존경한다. 그런 이야기를 발견할 때마다 세상에 알리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올해 창업 10년차인 그는 “거창한 목표가 없어 지금까지 버틸 수 있다”고 말한다. 매출 목표조차 세우지 않고, 그저 적당한 대출을 유지하면서 만들고 싶은 책을 만드니 어느새 지금 자리에 서 있다.

박 대표의 말에 전은정 목수책방 대표는 “이 나이까지 살아보니 인생 목표대로 된 게 하나도 없다. 이젠 오늘 해야할 일 무사히 잘 끝내자 하고 일한다”고 말했다. 대학에서 사회학을 전공한 전 대표는 책을 만들면서 자연과학 분야 공부까지 했다. 숲해설사 자격증도 따고 방송통신대에서 농학도 공부했다. “출판사를 차리고 5년은 ‘멘붕’이었다”는 그는 이 일을 계속할 수 있는 원동력은 ‘딴짓’이라고 귀띔했다. 책을 만들면서 그가 끝까지 미루는 일은 보도자료 쓰기다. 최대한 일을 미루고 좋아하는 배우가 출연하는 드라마나 영화를 검색해 빠져든다. 그렇게 재밌는 것에 몰입하는 시간을 갖고 나면 비로소 해야할 노동도 즐겁게 해낸다.

자신의 일을 어떻게 정의하느냐는 일에 대한 태도도 결정한다. 모임에서 저돌적이라고 평가받는 이현화 혜화1117 대표는 “출판은 내게 창조자의 맛을 느끼게 해준다”고 웃으며 말했다. 저자들에게 각종 요구가 많기로 소문이 난 그는 “책 한 권이 끝나면 완성된 하나의 세계를 만드는 것 같다”고 말한다. 독자를 위한 책도 중요하지만 “저자를 위한 책을 만들려고 한다”는 그는 자신이 만든 책이 저자가 속한 분야에서 디딤돌이 되어주길 바란다.

‘출판하는 언니들’이라는 이름으로 새로운 시도를 모색하는 1인 출판사 대표 5명이 10일 오전 서울 종로구 명륜동에 모여 사진을 찍고 있다. 앞줄 왼쪽부터 박희선 가지 대표, 박숙희 메멘토 대표, 최지영 에디토리얼 대표, 뒷줄 위는 전은정 목수책방 대표, 아래는 이현화 혜화1117 대표.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지적인 호기심이 많은 박숙희 메멘토 대표는 “출판은 내게 끝끝내 숙련되지 않은 일”이라 “계속하고 있다”고 말한다. 연구서와 대중서의 중간 다리를 놓는 책을 펴내는 그는 “한권 한권 새로운 분야의 책을 만들때마다 그 어려움 때문에 더 일을 잘하고 싶다는 욕심이 생기고 지루해하지 않고 달려왔다”고 말한다. 마찬가지로 지적 호기심이 많다는 최지영 에디토리얼 대표는 “출판은 내게 배움으로 나가는 동력을 제공해주는 길벗”이라고 말한다. 최 대표는 “여기에 모인 벗들을 만나 이 일의 가치를 함께 나눌 수 있었다”며 “소중한 벗들 덕분에 활력을 느끼고 함께 버틴다”고 말했다.

함께 오래 이 일을 하기 위해 이들은 매달 한번 만나 낙산, 남산, 한양도성길 등 곳곳을 함께 걸으며 ‘생존 체력’을 키운다. 4~5시간 걷고 수다를 떨다 “재밌는 일 벌여보자”는 얘기가 나와 시도한 것이 서울국제도서전 공동참가다. “망하지 않으면 다행인 세상, 무조건 즐겁기로 했다”는 이들의 부스 번호는 ‘아이(I) 18’이다. 번호를 배정받고 이들은 “재밌다”고 꺄르르 함께 웃었다. 구매 독자에겐 자신들의 이야기를 담은 소책자 ‘언니들의 계속하는 힘’을 주고, 다섯 출판사의 책으로 만든 ‘블라인드북’ 같은 다양한 즐길거리도 제공한다. 온라인 서점에서 연합 이벤트도 준비중이다.

“출판은 어렵다, 힘들다 그렇게 단정하는 것도 싫고, 숫자로만 따져 출판계가 망했다고 획일적인 시선으로 보는 것도 싫습니다. 저희들이 일한 30년 동안 출판계가 힘들지 않은 적은 없어요. 그래도 저희는 인생을 걸고 이 일 해요. 힘들지만 재밌어요. 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마음이 아니라 꺾였어도 그냥 하는 마음이예요. 좋아하는 일을 계속하는 힘! 중.꺾.그.마!”

양선아 기자 anmada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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