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후 해결사처럼 떠들더니”...예금 비슷한 ‘퇴직연금 디폴트옵션’ 차라리 없애라 [김명수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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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증권업계는 2년전 숙원사업 중 하나인 퇴직연금 디폴트옵션(사전지정 운용제도)를 해결한다.
적립금이 매년 40조원 씩 늘어나는 퇴직연금 시장에서 자금 흐름을 증권업계로 돌릴 수 있는 획기적 제도 개편이었다.
그리고 디폴트옵션에서 원리금보장형 상품을 제외하는 작업에 착수해야 한다.
DC형은 가입자가 운용사업자는 물론 상품 유형도 고를 수 있고, 디폴트옵션도 활용할 수 있는 퇴직연금제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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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폴트옵션 도입 1년 됐지만
원리금보장 상품에만 ‘몰빵’
금융계열사 몰아주기도 여전
근로자 재산권 행사 자유 제한
퇴직연금 선택권 늘려줘야
그러나 그간 1년 성과는 이 제도 도입 의도와는 정반대로 흘러간다. 먼저 디폴트옵션을 통해 들어온 자금중 대부분이 원리금보장형 상품에 쏠린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제도 도입후 전체 자금중 89%가 은행 예금이나 보험사 이율보증보험계약(GIC) 같이 원리금 보장 상품에 몰린 것. 나머지 10%정도 자금만 펀드상품처럼 원금 손실 가능성은 있더라도 수익성이 큰 실적배당형 상품에 들어온다. 증권업계 실망이 클 수 밖에 없다.
그러나 더 큰 실망은 퇴직연금 가입자인 근로자들 몫이다. 수익률을 보자. 노동부의 최근 디폴트옵션 상품별 비교공시 자료를 찾아보니 지난 1년간 손실을 본 실적배당 상품은 없었다. 실적배당형 상품의 최근 1년 수익률은 대개 10% 이상. 최고 22%까지 수익을 냈다. 하지만 원리금 보장상품의 1년 수익률은 정기예금금리와 비슷한 3%대에 그친다. 결국 디폴트옵션의 도입취지인 근로자 노후 소득 증대엔 턱없이 부족한 성과를 낸 것이다.
왜 이런 결과가 나온 것일까. 디폴트옵션이란 제도 설계 자체의 큰 결함 탓이다. 선진국들은 디폴트옵션에 원리금보장 상품을 제외한다. 일본만 예외지만 대부분 선진국이 그렇다. 미국 퇴직연금제도인 401K가 대표적이다. 미국 근로자들의 퇴직연금은 이 제도를 통해 자본시장으로 흘러가고 그 자금이 미국 증시를 떠받치는 원동력 역할을 해왔다. 그 결과 근로자들은 퇴직 후에도 많은 연금소득으로 노후를 즐길 수 있었다. 그 근본 배경은 바로 디폴트옵션이었다. 퇴직연금이 실적배당형 상품위주로 운영된 덕분이었다.
하지만 우리는 디폴트옵션에 원리금보장 상품이 포함되다 보니 투자경험이 없는 대다수 근로자들은 원리금 보장 상품을 선호할 수 밖에 없다. 사실상 근로자들의 재산 증식 기회를 박탈한 것이다. 근로자들의 실적배당형 상품에 대한 인식 부족도 문제일 수 있지만 선진국과 다르게 짜여진 제도 탓에 근로자들은 노후 걱정을 크게 덜지 못하게 된 것이다.
당국은 근로자들의 퇴직연금 재산권이 침해되지 않도록 현실을 직시하는 게 중요하다. 먼저 기존 디폴트옵션의 ‘파산’을 선고하라. 그리고 디폴트옵션에서 원리금보장형 상품을 제외하는 작업에 착수해야 한다. 그 이후 개인 재산권 행사의 자유를 넓혀주는 확정기여(DC)형 퇴직연금 비중을 늘리는 작업에도 나서야 할 것이다.
DC형은 가입자가 운용사업자는 물론 상품 유형도 고를 수 있고, 디폴트옵션도 활용할 수 있는 퇴직연금제도다. DC형 퇴직연금의 지난해 말 기준 적립금은 101조원. 가입자 입장에선 일반 퇴직금이나 마찬가지인 확정급여형(DB)은 205조원에 달한다. DC형의 2배를 넘는다. DB형이 더 많은 이유는 DC형과 달리 사실상 기업이 연금운용 사업자를 선정하기 때문이다. 그만큼 근로자들은 안정적으로 퇴직금을 보전할 수 있지만 재산 증식 기회를 잃을 수 있다. 또 기업은 손실 가능성 보다는 안정적 운용을 원한다. DB형 자금중 95.3%를 원리금보장형 상품에 몰빵하는 이유이다.
근로자들의 재산 증식 기회를 빼앗은 조치중 하나는 그룹들의 금융 계열사 몰아주기다. 퇴직연금 운영사업자를 고를 때 자사 금융계열사가 선택받을 수 있도록 경쟁 금융사에게 문턱을 높인다는 게 공공연한 사실이다. 근로자에게 형식적으로 사업자 선정 선택권을 준다고 하지만 근로자들은 사업자 선정이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사내 안팎에서 ‘애사심’이나 ‘충성심’이 공공연한 인사 척도가 된다면 근로자들은 적립금 운용사업자를 선택할 때 계열사를 택할 수 밖에 없다.
금융감독원과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A생명보험의 퇴직연금 적립금 총액중 계열사 비중은 57.4%에 달한다. 경쟁사인 B생명보험은 18.6%에 불과(?)하다. 근로자들의 애사심이나 계열 금융사에 대한 신뢰도 차이가 컸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설명하기는 어렵다. 한 금융 전업 증권사의 경우 계열사 비중이 1%에도 못미치지만, 대기업 계열의 다른 증권사의 경우 계열사 비중이 86%를 넘는 경우도 있다. 근로자들의 재산 증식 자유를 제한하는 한 단면이다.
퇴직연금 운용 사업자나 퇴직연금 운용상품 유형 선정에서도 근로자들과 합의한다고 하지만 현실에선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다. 자신의 퇴직연금이 어디서 운용되었는지를 아는 시점이 퇴직할 때인 경우도 적지 않다.
이제 DB형 위주 대신 DC형도 근로자들의 선택지에 넣어주는 정책적 고민이 더 많아져야 한다. 동시에 개인이 운용 사업자를 선정할 때 더 다양한 사업자를 고를 수 있도록 기업내 문화를 바꿔줘야 한다. 그래야 근로자들의 은퇴후 ‘경제적 자유’도 확대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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