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감독 900승 이끈 바리아, 한화 선발진의 새로운 시작
김경문 한화 감독의 기념비적인 KBO 감독 통산 900승, 그 발판을 만든 건 외국인 선발 하이메 바리아(28)였다. 바리아는 11일 잠실 두산전 선발로 등판해 6이닝 1실점으로 호투하며, KBO 두 번째 선발 등판에서 첫 승을 거뒀다. 김 감독이 “그 친구가 승리의 발판이었다. 고맙다”고 했고, 바리아는 “감독님의 900승 역사에 기여할 수 있어서 너무나 기쁘다”고 화답했다.
편안한 조건은 아니었다. 5월 최고의 피칭으로 월간 MVP에 선정된 곽빈이 상대 선발로 나왔는데, 바리아는 80구 제한이라는 ‘핸디캡’을 안고 마운드에 올랐다. 팀 홈런 2위(71개) 두산 타선도 껄끄러웠다. 하지만 바리아는 크게 힘들이지 않고 상대 타선을 잡아냈다. 최고 구속 153㎞의 빠른공에 두 가지 버전의 슬라이더를 고루 섞어 던졌다. 3안타만 맞았고, 이상적인 발사각에 타구 속도도 빠른 이른바 ‘배럴’ 타구는 하나도 없었다. 볼넷 1개만 내줄 만큼 안정적인 제구도 선보였다. 단 79구로 아웃 카운트 18개를 잡아냈다.
바리아는 바로 지난해까지 메이저리그(MLB)에서 풀타임 시즌을 치른 투수다. LA 에인절스에서 6차례 선발 등판을 포함해 34경기에 나와 빅리그에서 82.1이닝을 소화했다. 데뷔 시즌인 2018년에는 선발로만 26경기를 던지며 129.1이닝 동안 평균자책점 3.41로 주목을 받았다. 한풀 꺾인 기량으로 한국에 들어와 빅리그 시절 명성과 한참 거리가 먼 성적만 남겼던 과거의 사례들과 비교해도 조건이 다르다. 1996년생으로 이제 한참 전성기를 향해 달려가는 나이다. 지난 시즌 NC 에릭 페디(31)가 그랬던 것처럼 MLB 재도전 가능성도 충분하다. 동기부여는 확실하고, KBO리그에서 잘해야 할 이유 또한 분명하다.
올 시즌을 앞두고 많은 이들이 한화를 ‘돌풍의 팀’으로 꼽았다. 탄탄한 선발진이 특히 높은 점수를 받았다. 검증된 외국인 원투펀치에 류현진이 복귀했고, 한 뼘 더 성장한 문동주에 김민우까지 버티는 한화 선발진은 KBO 리그 다른 어느 팀과 비교해도 밀리지 않는다는 평가였다.
그러나 이런 전망은 시즌 초반부터 어그러졌다. 류현진과 문동주가 예상외로 고전했고, 김민우는 팔꿈치 수술로 시즌 아웃이 됐다. 외국인 좌완 리카르도 산체스가 선방했지만, 지난달 중순 경기 중 부상으로 한동안 1군에서 자리를 비웠다.
외국인 1선발 펠릭스 페냐의 부진은 특히 타격이 컸다. 지난 두 시즌 동안 3점대 중반의 평균자책점으로 꾸준히 선발 마운드를 지켜줬던 에이스가 올 시즌은 시작부터 고전했다. 늘 부진했던 4월을 지나 ‘약속의 5월’에도 살아나지 못했다. 한화는 감독 경질과 함께 외국인 에이스 조기 교체라는 강수를 던질 수밖에 없었다.
한화 선발진은 이제 조금씩 회복 중이다. 류현진이 제 기량을 선보이기 시작했고, 문동주도 1군 복귀 후 꾸준히 로테이션을 돌고 있다. 1순위 신인 황준서 또한 기대치를 채우는 중이다. 부상 회복한 산체스도 조금씩 투구 수를 늘려갈 예정이다.
이날 바리아는 KBO리그 첫 승 소감으로 “내가 누구인지를 보여주고 싶었다”고 했다. 바리아가 명성 그대로 실력을 보여준다면 시즌 전 리그 최고로 평가받았지만, 실망만 남겼던 한화 선발진도 새로운 평가를 받을 수 있다.
심진용 기자 s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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